[시골 다방열전] 농사일로 지친 몸과 맘 달래는 동네 ‘휴게실’

입력 : 2018-06-13 00:00
경북 성주군 가천면 창천리에 위치한 가야산다방. 현관문의 ‘휴게실’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시골 다방열전 (16)경북 성주 가야산다방

2000년대 초반보다 손님 수 많이 줄었지만

이른 아침 “물 좀 주이소~” 동네 농민 목소리 늘 반가워

단골손님들과 나누는 이야기, 서로의 위안…좋은 휴식처 돼줘
 


“시원한 얼음물 좀 주이소.”

경북 성주군 가천면 창천리를 가로지르는 이차선 도로가에 자리 잡은 가야산다방이 아침을 맞이하는 소리다. 혹자는 ‘이른 아침부터 다방에 와서 커피가 아니라 웬 얼음물 타령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야산다방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다방에서 얼음물을 찾는 이들은 다름 아닌 동네의 농민들과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일터로 나가기 전에 다방에서 얼음물 한잔 받아 마시려는 게 아니라 페트병에 얼린 물을 받아간다. 요즘 말로 ‘테이크 아웃(Take Out)’이다. 당연히 돈은 받지 않는다. 파는 생수도 아닌데 물값을 받는 시골 인심이 우리나라 어디에 있겠는가.

“농번기면 아침마다 일하러 나가면서 가게에 들러 냉수 한병씩 얻으려는 주민 분들이 종종 있어요. 오늘도 두분이 가져가셨어요. 시골에 같이 살면서 물 한병 달라는데 안 줄 수가 없죠.”

다방 주인 제말순씨(57)는 넉넉한 이런 시골 인심을 ‘장사치의 서비스’로 바꿔 말했다. 한일월드컵 이듬해인 2003년부터 이곳에서 다방일을 시작해 토박이가 다 된 그녀지만, 영업 마인드는 어디 가질 않았다. 그래서 얼음물은 공짜로 내어줄지언정, 아이스커피는 따뜻한 커피보다 1000원 올려 받는다.

“일반 커피는 한잔에 2000원인데 아이스커피는 3000원을 받아요. 가격이 비싸지만 의외로 손님들이 아이스커피도 많이 찾아요. 예전보다 손님이 부쩍 줄어든 탓에 가게 살림이 팍팍한데, 그나마 아이스커피가 도움이 되는 셈이죠.”

 

가야산다방의 상징과도 같은 갈색 가죽소파는 손님들에게 안락함을 제공한다.

제씨가 처음 다방을 운영할 때만 해도 근방에는 그녀의 가게를 포함해 다방이 17곳이나 있었다. 그 시절 가야산다방은 그야말로 불야성이나 다름없었다. 아침 7시에 문을 열면 자정까지 손님이 이어졌다. 주방일을 담당하는 아주머니를 포함해서 종업원도 4~5명이나 일했다. 하지만 이곳도 시대의 흐름을 비껴가지 못했고, 지금은 제씨 혼자 다방을 지키고 있다. 영업시간도 밤 10시까지로 당겨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다방 안이 항상 시끌벅적했었죠. 하지만 이 동네도 여느 곳처럼 쇠락하면서 손님도 다방도 많이 줄었어요. 지금은 인근에 다방이 6곳밖에 안 남았지만 커피전문점이 없는 게 어디에요.”

그나마 커피전문점이 없다는 걸 위안 삼는 제씨는 종종 개인적인 볼일로 가게를 비우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냥 다방을 열어둔 채 나선다.

“한동네 살면서 커피값으로 서로 얼굴 붉힐 일이 뭐 있겠어요. 제 회장 없으면 그냥 손님들끼리 종이컵에 커피 따라 마시고 떠들다가 가는 거죠.”

10년도 넘은 단골이라는 심인배씨(69)는 마을 부녀회장인 제씨를 ‘제 회장’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혼자 커피를 마실 줄 아는 단골 가운데 한명이다. 다방 단골 10년이면 그 정도는 거뜬하지 않겠는가.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제씨는 심씨 같은 단골손님에게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갖고 있다. 비단 단골손님뿐 아니라 그동안 다방을 찾은 수많은 손님들에게, 그리고 다방일 자체에도 고마움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제씨다. 10여년 전 하나뿐인 아들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낸 제씨였다. 다방일을 하면서 그 슬픔을 많이 다스렸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손님들과 밤낮으로 왁자지껄 웃고 떠들면서 마음의 병을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제씨가 아침마다 손님에게 내주는 얼음물은 어쩌면 서비스가 아니라 고마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준 손님들의 마른 목을 적셔주고 싶다는….

성주=김동욱 기자 jk815@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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