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다방열전] 고려다방 커피잔보다 국그릇이 많은 동네 사랑방

입력 : 2018-05-16 00:00
전남 영광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고려다방의 외부 전경.

시골 다방열전 (15) 전남 영광

2008년 다방 시작하고부터 만 10년 어르신들 무료 점심 대접 영광군으로부터 표창도 받아

따뜻하고 넉넉한 주인장 인심에 경로당·복지관보다 인기
 

 


“오셨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오늘은 소고깃국에 밥 한그릇 하세요.”

 

전남 영광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고려다방.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손님들의 발길이 하나둘 이어진다. 그러더니 어느새 열댓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탁자를 붙여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머리에 중절모를 얹은 노신사, 야구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 지팡이를 손에 든 백발의 어르신 등 손님들은 하나같이 나이 지긋한 노년의 남성이다. 계산대를 겸한 주방에서는 주인 양금님씨(60)와 종업원 한명이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한명은 날랜 손놀림으로 밥과 국을 푸고, 다른 한명은 둘러앉은 손님들 사이로 음식을 나른다. 금세 탁자 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공깃밥과 뜨끈한 고깃국이 놓인다. 언뜻 봐서는 여기가 다방인지 식당인지 분간이 안 가는 광경이다. 양씨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르신들이 점심식사 후 다방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점심 후식으로 내놓은 식혜.



“다방일을 시작한 2008년부터 만 10년 동안 동네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대접하고 있어요. 어르신들께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 밥값은 한푼도 받지 않아요. 대신 오후에 1000원짜리 커피 한잔씩 팔아달라고 조르긴 하죠.”

커피잔보다 국그릇이 더 많아 보이지만 이곳은 다방이다. 그래서 커피값은 꼬박꼬박 받는다. 10년 넘게 한잔에 1000원인 커피는 저렴한 가격 덕분에 손님들이 가장 즐겨 찾는다. 메뉴판에는 인삼차·더덕차 등 3000원짜리 메뉴도 더러 보인다. 커피와 비교하면 고가에 속하는 음료들이다. 하지만 단골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찾는 이는 많이 없단다.

식사가 끝나자 어르신들은 알아서 척척 빈 그릇들을 주방으로 가져다 놓는다. 식사를 무료제공하는 대신 빈 그릇은 꼭 주방으로 갖다달라는 주인의 말이 규율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식사자리가 얼추 정리되자 어르신들은 탁자 위에 담요를 깔고 화투패를 꺼낸다.

“농사일 그만둔 노인네들끼리 모여 화투패 맞추고 놀면서 시간 때우는 거죠. 이 동네 사람들은 경로당이나 복지관 대신 여기 와서 밥 한끼 얻어먹고 커피 마시고 놀다보면 하루가 훌쩍이에요.”

10년을 매일같이 다방으로 출근한다는 최정국씨(76)가 전하는 일상이다. 이어서 고려다방 칭찬을 한보따리 늘어놓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여름엔 국수와 미숫가루를, 복날엔 보신탕·추어탕을 내어주고, 김장철엔 집에 가서 먹으라고 김치도 따로 챙겨준다. 명절엔 차례상과 함께 떡국도 대접한다. 그래서 영광군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은 다방이다.

그의 칭찬에 양씨는 손사래를 치며 그냥 봉사라고 얘기했다. 27세 되던 해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5남매를 건사한 그녀는 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점심 대접을 시작했다. 손님을 잘 대접해 복을 쌓으면 그 복이 자식들에게 돌아가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일이란다.

그런 그녀도 어느덧 60대에 접어들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는 점심 대접이 힘에 부칠 나이다. 게다가 지난해 교통사고로 다리도 불편해졌다.

“처음 다방을 열 때 딱 10년만 식사 대접하자고 마음먹었는데 벌써 10년이 다 됐네요. 앞으로도 다방일은 계속할 생각이지만 식사 대접은 그때까지만 할까 싶어요. 자식들도 말리는 터라 더는 못할 거 같아요.”

그녀의 말대로라면 고려다방의 점심 한끼는 곧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고생했다고, 정말로 고마웠다고 돌아가며 주인에게 커피 한잔씩 대접하지 않을까.

영광=김동욱 기자 jk815@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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