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토성마을 골목정원, 자그만 화분 모이고 모여 꽃길 되었네

입력 : 2018-04-16 00:00 수정 : 2018-04-16 13:48
대구시 서구 비산동 날뫼골 달성토성마을 골목에는 구석구석 주민들이 직접 만든 골목정원이 있다. 3년 전 만들기 시작한 골목정원 덕분에 마을 분위기가 환해진 것은 물론 주민들의 관계도 좋아졌다.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빈집 늘고 분위기 흉흉해져

꽃 화분 키우던 서경숙씨 솔선수범해 골목에 내어놓자 다른 주민들도 십시일반 동참

벽화 등 장식 늘어 명소로 자리잡아 주민들 대화 늘어나고 정도 돈독해져
 


골목을 온도로 표현한다면 36.5℃일 게다. 차가운 콘크리트로 사방을 막아버린 도심 빌딩이나 아파트와는 달리 담벼락 하나를 나눠 가진 사람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서는 오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을 지나다니느라 어깨를 맞대며 살아온 사람들, 날 좋을 때면 반찬 한가지씩 들고나와 골목에 앉아 밥을 나눠 먹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낙후된 지역으로 ‘찍혀’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사람의 온기로 되살아나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그곳. 그 안으로 들어가 골목과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형님, 꽃 심으러 나왔으까? 나는 어제 하루 종일 심었구만.”

“나도 다 심었어. 화분마다 꽃 이름 붙여주라고 해서 이름표 붙이고 있어.”

철모르는 추위가 한껏 심술을 부리고 지나간 뒤 오랜만에 내리쬐는 햇볕이 따갑기까지 했던 봄날 오후. 대구 중구 달성공원 아래 한 골목 어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집집마다 골목 담벼락 아래 내놓은 화분에 꽃 심고 물 주는 이들은 서구 비산 2·3동으로 구성된 날뫼골 달성토성마을 주민들이다. 날뫼골은 그물처럼 이어진 골목 곳곳을 주민들이 내어놓은 꽃과 나무로 장식해 만든 ‘골목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날뫼골은 대구에서도 손꼽히는 낙후지역이었다.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대구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 시내 곳곳에서는 재개발이 이뤄졌다. 낡고 작은 집들, 좁고 비루한 골목들을 다 쓸어버리고 높고 반짝거리는 빌딩들을 세웠다. 하지만 날뫼골은 예외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야 했다. 젊은이들은 변하지 않는 마을을 등졌고 떠나지 못하는,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골목에 남았다. 빈집이 늘었고 인적 드문 골목 안쪽에는 쓰레기가 쌓여갔다. “해 지면 돌아다니지 말라”는 소리가 주민들 입에서 나올 만큼 마을 분위기도 흉흉해졌다.

골목이 변한 때는 3년 전부터. 몇몇 주민들이 집 안에서 키우던 꽃이며 나무들을 골목에 꺼내놓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저희 집에 꽃 화분이 많았거든요. 그 당시 동장님이던 분이 그걸 보고 ‘골목에 내놓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골목이 밝아지고 예뻐지지 않겠냐고요.”

날뫼골 ‘1호 골목정원 주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서경숙씨(64)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골목에 내놨다가 혹여 도둑맞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 끝에 마을 위하는 일이니 해보자고 결심한 뒤 집 안 가득 있던 화분을 골목에 다 내놨다. 그렇게 네집이 골목정원을 시작했다.

일단 시작하자, 번지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오가며 쳐다만 보던 주민들이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고 1년 사이에 골목정원 만드는 일에 참여한 집이 60가구가 넘었다. 골목에는 수선화·튤립·맨드라미·산수국·메리골드 등 주인의 취향을 닮은 각양각색의 꽃들이 넘쳐났다. 해바라기정원·인동초정원·터널정원·비밀의정원 등 주인이나 정원의 성격에 따라 제각각 이름도 붙였다. 굽이굽이 골목이 꺾이는 곳마다 새로운 모습의 정원이 나타나니 골목을 걷는 재미도 생겼다. 중간중간 골목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그려넣고 항아리며 바람개비로 장식도 했다. 이렇게 꽃과 나무로 가득찬 골목은 더이상 옛날의 ‘비루한’ 골목이 아니었다. 꽃 덕분이었다. 꽃을 심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주민협의체 총무를 맡고 있는 이갑연씨(64)는 “이 모든 것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라고 말했다.

“골목정원 덕에 주민들끼리 관계도 좋아졌어요. 꽃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으니 전보다 대화도 많아졌고요. 예쁜 꽃이 있으면 서로 나누고, 남의 집 꽃이라도 아픈 놈이 있으면 돌봐주면서 살아가니 정이 돈독해질밖에요.”

골목정원은 이제 명소가 됐다. 골목을 즐기는 이는 이제 주민들만이 아니다. 인근 지역 곳곳에서, 때로는 멀리 서울에서까지 골목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골목을 꽃으로 채웠더니 꽃향기에 실려온 사람 냄새, 사람 온기가 골목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대구=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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