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 ‘남도’ 가보니…봄, 어느새 내 곁에

입력 : 2018-03-12 00:00 수정 : 2018-03-12 10:07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 지쳐 온기 찾아 남쪽으로 발걸음

꽃섬이라 불리는 ‘하화도’ 겨우내 추위에 지친 꽃봉오리들 움츠린 채로 기척도 없어

변산바람꽃 유명한 ‘돌산도’서 여기도 때 아닌가 돌아설 찰나

아, 양지바른 민가 마당에 핀 연분홍 봄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 끝자락에 봄 냄새가 살짝 걸렸다. 지긋지긋한 겨울이 드디어 끝을 향하고 있나보다. 반가운 마음에 코를 벌름거려보지만 봄 냄새는 꿈인 듯 흔적도 없다.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렸나 보다. 하지만 한모금 봄 향기에 이미 취해버린 심장은 콩닥콩닥 아우성이다. 어서 봄을 내어놓으라고. 그렇다면 가주마. 봄 잡으러. 꽃도 보고 봄나물도 맛보러 남녘 끝으로.

 

향일암 동백꽃.

바람이 실어나른 봄꽃 소식을 쫓아가니 남녘 끝 바다 건너 섬이다. 봄이란 놈의 운명은 남에서 시작해 북으로 향하는 것이니,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 남도의 섬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이름조차 꽃인 하화도(下花島)로 향했다. 전남 여수시 화정면에 속한 하화도는 여수에서 뱃길로 한시간가량 걸리는 곳이다.

동백꽃과 진달래가 많아 화도, 꽃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봄이 깊어지면 노란색 유채꽃도 지천이라고 했다. 면적이 1㎢가 채 안되는 작은 섬 구석구석에는 야생화도 흔하다고 했다.

그런데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찾아간 꽃섬에는 꽃이 없었다. 예년 같으면 섬 곳곳이 꽃 잔치였을 텐데, 지난겨울이 너무 추웠던지라 봄꽃이 아직 기척도 없다고 섬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섬 둘레로 조성된 꽃섬길을 따라 걸었다. 얼음을 뚫고 나오는 봄꽃도 있다던데, 작은 꽃 한송이라도 피어 있지 않을까. 샅샅이 훑었지만 추위를 뚫고 피어난 동백꽃만 간간히 보일 뿐 봄을 품은 꽃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

큰개불알꽃


기어이 봄을, 봄꽃을 만나고야 말리라 다짐하며 좀더 남쪽으로 향했다. 연륙교가 생겨 이제 섬 아닌 섬이 된 돌산도다. 돌산도의 남쪽 끝에 있는 금오산은 대표적인 봄꽃인 변산바람꽃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금오산 능선에 올라앉은 향일암에서 시작해 정상인 금오봉까지 걸었다. 산에는 진달래며 철쭉나무가 지천이었다. 물이 오르기 시작한 줄기는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고 가지 끝마다 몽글몽글 꽃눈을 매달고 있었지만 꽃을 피워낸 나무는 아직 없었다. 흔하다는 변산바람꽃도 볼 수 없었다.

바람에 실려왔던 봄 냄새는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만들어낸 거짓이었던 것일까. 겨울에 펴서 봄이면 진다는 동백꽃은 벌써 떨어져 땅을 꽃 마당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봄꽃은 대체 언제 피려고 하는 것인지. 동백꽃이 다 가기 전에 오기는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아직 때가 아닌 것이리라. 철없이 콩닥대던 심장에 속은 것이리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던 마음을 다잡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연분홍빛 꽃 무리가 꿈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섬 한쪽, 양지바른 마을의 어느 민가 마당에 서 있는 매화나무였다. 50년은 족히 살아온 토종 매화나무라고, 사나흘이면 만개해 절경을 만들 것이라고 주인장이 일러줬다.

하화도에 움튼 쑥.

아, 이곳이 바로 봄이 시작된 곳이구나. 기어이 봄을 잡고야 말았구나. 한껏 양양해진 마음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지나온 섬 곳곳에서도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한 꽃들이 보였다. 포슬포슬한 땅바닥에는 봄을 알리는 야생화며 쑥·달래 같은 봄나물이 지천이었다. 드디어 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걸음이 느리다고 타박하며 돌아선 순간에도 봄은 천천히, 그렇지만 쉬지 않고 오고 있었나보다. 봄을 잡은 줄 알았더니 봄에게 잡혀버렸다. 

여수=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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