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구멍가게]과자도 라면도 더이상 팔지 않지만…“오늘도 영업 중”

입력 : 2017-09-13 00:00 수정 : 2017-11-07 13:59

추억의 구멍가게(3)전북 정읍시 ‘삼거리슈퍼’

1993년 개업…힘든 줄 모르고 장사 읍내 큰 마트 들어서면서 손님 줄어

주인 할아버지 쓰러진 뒤 거의 정리

“그래도 아예 닫아버릴 수는 없었어 찾는 이들 위해 음료수 몇가지 팔아”
 

옛날 같으면 주막 자리였다. 윗녘에서, 옆 동네에서, 아랫마을에서, 각기 다른 방향에서 시작된 길들이 흐르다 맺힌 곳, 삼거리니 말이다. 세갈래 길 모두 마을에 걸쳐 있어 오가는 사람도, 차들도 많은 곳이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비어 있다면 아쉬울 뻔했을,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내석길의 이 삼거리 모퉁이를 지키고 있는 것은 구멍가게다. 다른 이름일 수 없는, 삼거리슈퍼다.

스물네해 전 어느 날, 삼거리 모퉁이 집에 살던 주인장 부부가 가만히 생각했다. 오가는 사람도 많고 모퉁이 앞에 공터도 널찍한 것이 여기가 딱 ‘슈퍼’ 자리 아닌가. 살림집 옆구리에 지붕을 달고 벽을 내서 슈퍼를 연 것이 1993년이었다.

“과자도 팔고 라면도 팔고 소주도 팔고 그랬어. 사람 많았지. 하루에 10만원 넘게 벌기도 했으니까.”

이제 70대 뒷줄에 접어든 주인 할머니의 회상이다. 그때는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새벽 댓바람부터 밤늦게까지 장사를 했었다. 남편은 농사를 짓고 슈퍼는 아내가 보고 그랬다. 열심히 몸을 놀리기만 한다면, 꾀 내느라 게으름을 피우지만 않는다면 내내 좋을 것 같았다.

“한 10년 전일 거야. 읍내에 큰 마트가 들어서면서부터 손님이 줄더라고. 몇년 전에는 삼거리 위를 지나는 고가철로가 생기면서 더 줄었지. 삼거리 공터에 고가를 받치는 다리가 생겼거든. 차 댈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까 차가 안 서는 거지.”

설상가상 할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진 것이 지난해 일이다. 서울 큰 병원을 오가느라 슈퍼 문을 닫는 일이 잦아지자 고생하는 부모가 안쓰러웠던 자식들은 슈퍼를 정리하기로 했다.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던 과자며 빵을 다 치워내고 줄지어 서 있던 선반도 들어냈다. 온갖 것들로 꽉 차 있던 슈퍼는 금세 텅 비어버렸다. 유리문에 붙은 ‘라면’이라는 글자는 여전히 선명한데 더이상 라면을 살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슈퍼가 돼버린 것이다.

“그래도 아예 닫아버릴 수는 없었어. 슈퍼 문을 다 닫아놓으면 집 안이 답답해. 아침마다 문을 활짝 열어놨더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간혹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고. 물도 찾고 길도 물어보고, 동네 사람들도 오고. 그래서 지금도 냉장고에 음료수 몇가지는 넣어놓고 팔아.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줄 건 있어야지.”

더이상 과자도 사탕도 초콜릿도 살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오가고 마음이 오가는 삼거리슈퍼는 오늘도 ‘영업 중’이다.

정읍=이상희 기자, 그림=이미경<화가,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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