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다방열전]윷놀이·고스톱 함께 즐기던 추억의 ‘사랑방’

입력 : 2017-08-09 00:00 수정 : 2017-08-10 09:15

시골 다방열전(4)하동 ‘청죽다방’

면장·파출소장도 드나들며 주민들과 기분좋게 차 한잔

“사장님~” 불러주는 레지엔 커피 사주며 인심 보이기도
 


청죽다방이 문을 연 때는 1986년. 그 무렵 텔레비전은 거의 다방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일전 축구경기라도 열리는 날엔 다방이 손님들로 바글바글댔고 한숨과 환호성으로 떠들썩했다. 그뿐이랴. 사람들이 모이면 다방 옆 공터에 멍석이 깔리며 윷놀이판이 펼쳐졌다. 장기나 바둑도 뒀다. 특히 고스톱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한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을 치면 판돈은 고작 2만~3만원. 주민들에게는 노름이 아닌 놀이였던 셈. 하지만 누가 신고했는지 파출소 경찰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평소 친하게 지냈건만 그 순간만큼은 안면몰수였다. 가깝다고 봐주기란 없었다. 꼼짝없이 벌금을 내야 했다.

“그 시절에 다방은 주민들의 놀이터이자 쉼터였지요. 매일 20~30명가량 왔으니 꽤 손님이 많았지요. 그러면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라든지 주민들에 대한 소식을 알게 되지요. 사랑방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다방 주인 홍성찬씨(67)의 말마따나 그런 소식이 모이고 그 소식이 퍼져나가는 거점이 바로 다방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워 나와서 앉아 있던 곳이 다방이었다.

어쨌든 그 시절에는 ‘정겨운 다방문화’가 있었다. 다방에 앉아 있는데 지인이 들어오면 레지한테 커피 한잔을 더 주문했다.

“동생, 왔나? 커피 한잔 해라. 마셨다고? 그래도 더 해라.”

누군가를 만나 ‘차 한잔 하자’고 인사말처럼 건네고, 기분 좋게 차 한잔씩 돌리며 느끼는 사람 만나는 재미. 그 또한 다방 아니면 느낄 수가 없었다.

예전보다 못하지만 청죽다방은 여전히 주민들의 쉼터이자 휴게소 역할을 하고 있다.


공무원들도 다방을 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방 손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주민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인물이 자신들이기 때문. 즉 그 평판이 다방을 통해 다른 주민들에게 퍼져나갔다. 좋은 소리 들으려면 면장이나 파출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좀 억울한 경우도 있긴 했다. 술을 마시면 ‘면장이 대낮부터 술 마시고 다닌다’고 핀잔, 술을 안 마시면 ‘면장이 주민들과 술 한잔도 안한다’고 핀잔이었으니….

“다방 아가씨가 우리 보고 ‘사장님, 사장님’하고 불렀어요. 논에서 일하다 온 우리 같은 농부가 누구한테서 ‘사장님’ 소리를 듣겠어요? 그럼 ‘이리 와, 한잔해’ 하면서 같이 커피를 마셨죠.”

오랜 청죽다방 단골인 김희곤씨(63)가 떠올린 예전의 풍경이었다.

여럿이 와도 마찬가지였다. “가와(‘가져와’의 경남 사투리), 한잔해.” 레지가 붙임성 있고 친근하게 대해주면 대부분의 손님은 “한잔해”라며 커피를 샀다. 그것이 다방 매상 올려주기였다.

다방 매상에 레지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얼굴이 예쁘거나 손님을 잘 다루는 경력 있는 레지 몸값은 한달에 200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1980년대 당시 자장면 한그릇이 500원이었으니 그 월급이 얼마나 높았겠는가. 더구나 인기 있는 레지에게는 손님이 따라다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니 한잔 묵어라, 내 한잔 묵을 게’라며 다방에 죽치고 앉았다. 나가서 술 한잔 걸치고 다시 들어와 레지 보며 커피 마시고…. 그래도 손님에게는 그 하루가 짧았으리라. 지금은 다 사라진 추억이지만.

경남 하동군 고전면에 자리 잡은 청죽다방. 면사무소 바로 건너편이라 요즘은 면사무소 행사 때나 면사무소에 일보러 왔다가 버스 기다리는 사이에 들르는 손님들이 가끔 있단다.

주민에게 파는 커피 값이 1000원에다 손님도 예전같지 않아 수익 자체가 나올 리 없다.

“장사가 아니에요. 쭉 해와서 그냥 문을 열고 있죠. 요즘 시골에서 주민들이 쉴 데가 여기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홍씨가 다방 문을 닫을 때가 있다. 벼농사를 짓고 있어 모내기철과 수확철 같은 바쁜 영농철에는 문을 잠근다. 어차피 손님인 농민들도 바빠 다방에 들를 시간이 없으니까.

하동=강영식 기자, 사진=김도웅 기자


면 소재지나 읍내 변두리 등 농촌지역에서 사랑방 역할을 하는 다방을 찾습니다. 추천해주신 다방이 ‘시골 다방열전’ 소재로 채택되면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문의 ☎ 02-3703-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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