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몇분 만에 수만㎞ 떨어진 이방인 친구 만들어보세요”

입력 : 2021-06-07 00:00 수정 : 2021-06-08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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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본부 무전실에서 햄(HAM·아마추어 무선) 동호회원 이종원씨(마이크에 말하는 사람)가 다른 회원에게 무전 교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세계와 소통하는 아마추어무선연맹 회원들

누굴 만날지 기대되는 우연의 쾌감이 매력

국내 1만6000여명 설비 갖추고 취미 활동 

재난 발생 땐 통신망 파괴돼 무선사로 봉사

 

“단 몇분 만에 수만㎞ 떨어져 있는 이방인과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오늘은 어떤 세계의 사람과 이야기할지 기대되는 ‘우연의 쾌감’에 무선통신을 하는 거죠.”

1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윤민식씨(60)는 ‘햄(HAM·아마추어 무선)’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지만 윤씨처럼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햄을 취미로 삼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무선을 이용하려면 1∼4급 ‘아마추어무선기사’ 자격증이 필요한데 국내 자격증 소지자는 26만명가량 된다. 이 가운데 무선설비를 갖추고 활동하는 이들은 1만6000명 정도.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각 지부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도 매해 700여명에 이른다.

햄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미국에서는 1914년 아마추어무선연맹이 설립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후 주한미군이 들어오면서 아마추어 무선사의 활동이 시작됐고, 1955년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이 결성됐다.

스마트폰 시대에 왜 아직도 불편한 무선통신에 열광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스마트폰은 주로 아는 사람과 특정한 목적을 갖고 소통할 때 쓰잖아요. 반면 햄은 무선설비를 가진 사람이 접속해 있으면 전세계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여기에다 전파가 개방돼 있기 때문에 일대일이 아닌 여러명이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그냥 듣기만 할 수도 있어요. 아! 사용료가 공짜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겠네요.”

스마트폰은 통신회사가 세운 기지국을 통해 이용한다면 햄의 세계에서는 무선설비와 이를 조작하는 무선사가 하나의 무선국이 된다. 할아버지와 어린아이가 통신하더라도 국장끼리의 대화이므로 존칭을 써야 한다.

본부 사무실의 무전실에는 과거에 쓰던 장비와, 현재 이용할 수 있는 무선기기가 빼곡히 진열돼 있다. 남자 주인공이 과거 시대의 여자와 교신하다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 <동감>에 등장한 무선 송수신기도 있다. 또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모스 송신기가 눈에 띈다. 모스를 ‘무선의 정수’라고 생각해 기호로만 소통하는 사람이 300여명이나 된다니 햄의 세계는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무전실에 함께 있던 백원일씨(65)가 통신 시연을 하겠다며 나섰다. 휴대용 무전기를 켠 후 자신의 호출부호와 함께 누구든지 응답하라는 뜻의 ‘CQ’를 외치자 금세 부산의 한 남성이 회신했다. 백씨가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지역의 날씨 상황 등을 알려줬다. 호출부호는 무선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 백씨의 호출부호는 DS2HQQ인데 DS는 대한민국, 2는 경기도를 뜻한다. HQQ은 무선국 개설 때 무작위로 부여받는 영문자 조합이다.

무선통신을 하면서 얻은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이승현씨(23, 6K2IOZ)는 가족이 모두 아마추어 무선사로 취미를 공유하면서 가족애가 돈독해졌다고 한다. 양승덕씨(62, 6K2HIH)는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경남 창원에서 차를 타고 가다 길을 헤맸는데 인근 무선사의 도움으로 방향을 찾고 밥까지 얻어먹은 사연을 전했다. 이종원씨(56, DS1BKV)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가 무전으로 그날의 참상을 알렸다.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어 입문한 김남하씨(51, 6K2AKM)에게 햄은 인류애를 실천하는 한 방법이다.

“햄은 인류 최후의 통신수단이에요. 재난이나 전쟁으로 기간통신망이 파괴되면 스마트폰마저 무용지물이 되죠. 그래서 사명감 하나로 무선사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물난리나 화재가 발생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무선사들이 현장에서 사태 수습을 돕습니다. 혹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교감하고 싶으신가요? 그럼 주저 말고 햄의 세계에 빠져보세요.”

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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