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취미 열풍] 다시 만난 ‘필카’...기자의 체험기

입력 : 2021-06-07 00:00 수정 : 2021-06-08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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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필름.

19년 만에 필카 조리개·셔터·초점 모두 수동 조작

36컷 한정된 자원 사물에 더욱 집중

필름 맡긴 후 기다림 디지털엔 없는 애틋함

 

바야흐로 디지털의 시대다.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은 실체가 없다. 사진도 마찬가지. 예전엔 필름이나 종이 형태의 실물로 앨범 속에서 만져졌지만 지금의 사진은 하나의 ‘파일’로 PC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어 화면으로 ‘확인’할 뿐이다.

이런 디지털 시대에 다시 아날로그 필름카메라를 찾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필름카메라 대여점 ‘연남필름’의 류성주 대표는 “필름을 한번도 써본 적 없는 2000년대 전후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올리기와 맞물려 새로운 느낌을 원하는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다시, 기자가 세월을 되돌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기자가 필름카메라를 디지털카메라로 바꾼 해가 캐논에서 첫 보급형 디지털카메라 D60이 출시된 2002년이었으니 무려 19년 만에 다시 필름카메라를 잡아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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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연남필름 벽면에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필름과 함께 전시돼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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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필름에 종류별로 전시된 수동카메라.

연남필름에서 예전에 사용하던 모델인 니콘 FM2를 빌리고 즐겨 썼던 후지필름 C200, 감도(ISO) 200에 36컷 필름을 샀다. 얼마 만에 만져보는 필름인가. 니콘 FM2는 100% 수동카메라다. 노출계가 달려 있지만 참고사항일 뿐, 노출은 스스로 축적된 데이터에 의존해 정해야 한다. 빛의 양을 판단하고 거기에 맞는 조리개값과 셔터속도를 직접 선택해야 하며, 초점도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옛 기억을 더듬어 필름 되감기 장치를 들어 올리고 뒤덮개를 열었다. 필름을 넣고 필름통에서 삐져나온 필름을 끌어당겨 필름 스폴 틈에 끼워 넣는다. 뒤덮개를 덮은 후 이미 빛에 노출된 필름을 버리기 위해 셔터를 돌려 세컷을 그냥 누른다. 디지털에서는 생략된 과정이다. 카메라에 표시된 촬영 컷수는 0. 이제 촬영 준비가 끝났다.

카메라를 들고 연남동 거리에 나섰다. 화려한 색감의 건물들 틈에 오래된 건물 하나가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뜯어낸 나무벽들이 트럭 위에 층층이 쌓여 있고 기술자들이 마당에서 공사하고 있었다.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필름카메라에 담고 싶은데, 찍어도 될까요?” 조심스레 물었더니 찍으라며 아예 포즈를 잡아준다. 이처럼 원하는 한컷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도의 카메라 기술이 아니라 ‘소통’이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이 ‘고도의 기술’이 디지털 시대에는 사라진 것이 아닐까.

나름의 감으로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수동으로 맞춰놓고 카메라를 피사체 앞에 들이댄다. 핀을 피사체의 눈에 대고 조심스레 링을 돌려 초점을 맞춘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이제 일하는 사람의 표정과 느낌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나, 둘, 찰칵! 아. 필름카메라의 경쾌한 셔터 소리. 첫번째 컷이 완성됐다. 노출은 맞는지, 표정은 어땠는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도리가 없다. 디지털이면 화면으로 보며 연속으로 수십장 찍어 가장 잘 나온 컷을 골랐겠지만 36컷으로 한정된 필름카메라에서는 사치다. 고작 2컷을 찍고는 인사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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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웅 기자가 필름카메라로 직접 찍은 사진들. 폐지 손수레와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 ‘진입금지’라고 적힌 도로로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이 기자의 눈에 포착됐다.

연남동 골목길을 두시간가량 돌며 꽃과 사람, 상점 등을 찍었다. 36컷이라는 한정된 자원에 맞춰 촬영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함부로 찍을 수 없으니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면 사물의 의미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진입금지’라고 적힌 도로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 커다란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 놓인 할머니의 폐지 손수레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촬영을 마친 뒤 대여점으로 돌아와 필름을 맡기고 한시간 반가량 기다려 인화된 사진과 필름을 받았다. ‘Kodak’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오렌지색 사진 봉투를 건네 받았을 때는 마치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두시간여의 열정이 담긴 사진. 금방 찍어 화면으로 확인하는 것과는 애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필름을 맡기고 찾기까지는 설렘의 시간이다. 그 설렘을 ‘기다림’이라 쓰고 ‘아날로그’라 읽는다. LP(Long Playing Record·바이닐)를 찾아 턴테이블에 올려놓기까지의 시간이 그렇고, 손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답장을 기다리는 며칠이 그렇다. 바로 찍어 바로 보고, 클릭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에도 메일을 보내는 시대에 불편함과 느린 시간은 경험하지 못한 애틋함을 준다.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지나간 시절은 아날로그로 명명되었고 불편한 과거의 것으로 치부됐지만 또다시 그 불편함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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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웅 기자가 19년 만에 다시 든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희철 기자


글·사진=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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