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차례] 오도 말고 가도 말고…한가위, 마음으로만 같아라

입력 : 2020-09-28 00:00 수정 : 2020-10-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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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함께 지내는 가상 차례 이야기

여느 명절 같진 않아도 추석은 추석

코로나19 여파로 가족 못 모였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가상공간서 만나

화면으로 얼굴 보며 이야기꽃 피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

내년 설엔 걱정 없이 모두 모였으면

 

올 한가위 풍경은 예년과 퍽 다를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없는 추석이 효도’라며 고향 방문을 자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언택트(Untact·비대면)’로 명절을 쇨 이들이 많아지게 된 까닭이다. 이왕 각자 집에서 보낼 추석이라면 이번 기회에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룹 영상통화로 서로를 연결한 ‘랜선 차례’를 지내보는 것도, 그간 미뤄둔 묵은 할 일을 꺼내보는 것도 이 코로나19 시국을 즐겁게 극복할 슬기로운 방법이 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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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자들이 구글 ‘듀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오른쪽 화면의 맨 위쪽과 맨 아래 오른쪽은 가면 효과를 사용한 모습.

“엄마, 내가 지금 문자 보냈거든? 갔지? 거기서 영어로 된 주소 눌러 봐봐. 어어, 그거 확인 누르고. 그럼 구글 듀오라고 애플리케이션(앱)이 하나 뜰 건데. 떴지, 떴지? 그럼 거기서 아래 파란색 참여 버튼 누르면 돼. 응, 맞아. 그거야 그거.”

“와, 이거 봐. 진짜 할머니도 들어왔네. 할머니, 저 보여요? 민지예요. 민지.”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 병진이에요. 옆에 할아버지도 계세요? 할아버지, 저 병진이요. 잘 지내셨어요?”

시상에, 벨(별)일이 다 있네그려. 그동안 세상 좋아졌다는 게 이런 걸 두고 말했던 겨? 똘똘한 거라고 스마트폰이라고 한다더니만 이놈을 갖고선 여태 전화만 하고 살았네그려. 이게 화면이 몇개여. 하나 둘 셋…. 아이고, 이건 내 얼굴이구나. 이짝이 서울 사는 상희네고. 그 옆이 대구 도웅이 집이네. 병진이는 왜 이리 얼굴이 핼쑥한 겨. 인천서 혼자 나가 산다고 밥도 잘 못 먹는 거 아녀? 건강이 젤로 중요한 것인디, 내 새끼들 아픈 데 없이 다들 잘 지내는 겨?

“네, 그럼요. 저희 다 건강하죠. 어머님 아버님도 건강하시죠? 직접 찾아뵈었어야 하는 건데 죄송해요.”

아니, 김 서방은 왜 얼굴이 더 넙데데해졌댜. 이게 가까이 대 갖고 더 크게 보이는가? 김 서방은 좀 덜 먹어야 쓰는디. 그래도 울 사위가 복덩이지 암만. 이래 스마트폰으로 모여서 차례 지내는 것도 다 김 서방이 하자고 해서 하는 것 아녀. 올 추석엔 애덜 얼굴도 못 보는 줄 알았더니만 이리 모이니까 시끌벅적하고 좋구먼.

“야야, 시끄러워. 말 겹치니까 누가 얘기하는지도 모르겠잖아. 이제부터 돌아가면서 한명씩 얘기해. 엄마, 차례상 차려놨어? 그냥 간소하게 했죠?”

차례상이 차례상이지 간소할 게 뭐 있다냐. 암만 이래 영상통화로 한다지만 올릴 거 덜 올리고 그럴 순 없는 기지. 그리고 쟤는 저 똑 닮은 아빠 성격 몰라서 하는 말여? 여그서 한두개 빼봐라 시방, 이 양반이 어디 가만히 그라고 앉았을 사람인가.

“자자, 얘기들 많이 나눴으면 이제 조용. 아버님, 이제 차례 시작하세요. 저희도 어머님 화면 보면서 같이 지낼게요.”

“할머니, 제 방에도 상 펴놓고 물 한그릇 올려놨어요. 할머니 화면 보면서 여기서 같이 절할 거예요.”

그랴? 그럼 시작혀, 영감. 내가 옆에서 잘 찍을 테니께. 근데 이거 내 얼굴 찍히는디, 이렇게 스마트폰 돌려 갖고 비추면 되남? 이럼 내가 화면을 못 보는디. 어디 이거 잘 찍히고 있는 겨?

“할머니, 그거 스마트폰 안 돌리고 찍을 수 있어요. 화면 한번 톡 누르면 아래에 버튼들 생기거든요? 생기죠? 거기서 화살표 두개 있는 동그랗고 까만 버튼, 그거 누르면 화면에 바깥쪽 모습이 찍혀요.”

“맞아, 맞아. 그렇게 찍으면 돼요. 와, 우리 할머니 인싸다, 인싸. 스마트폰 짱 잘하시네!”

암만. 이 할매가 여그 마을선 젤로 똑똑하당께. 니들 할배한티 이거 하라고 했어봐. 내려온 조상님 기다리다 지쳐서 한술도 못 뜨고 돌아가실 판이여. 옳지, 그렇게 절하고. 다들 잘 따라 허네. 민지야 제사에서 절은 두번 하는 겨, 아빠 뒤에서 얼른 한번 더 따라혀.

“죄송해요, 어머님. 이번 추석엔 이렇게밖에 못 찾아뵙네요. 내년 설엔 꼭 애들 데리고 내려갈게요.”

“미안해, 엄마. 코로나19 때문이라곤 해도 1년에 한번인데 영 마음에 걸리네….”

아니여들, 미안할 것도 많다. 나도 너그들 오면 좋기야 하겠다만 시국이 이런디 뭐 어쩔 수 있겄냐. 건강이 제일인께 걱정들 말고 너거들 집에서 재밌게 보내여. 근디 요건 뭣이여, 병진이 얼굴이 꽃이여 물고기여. 뭔 그림 가면으로 얼굴을 덮은 겨? 고거 어떻게 하는지 이 할미도 알려주라. 내 할망구들한테 영상통화 걸어 갖고 아주 스마트한 방법으로 자랑할 때 쓸라니까.

이현진 기자 abc@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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