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와 생명은 흥정·거래 대상 아냐…어기면 법적 대가 치러야

입력 : 2020-04-29 00:00

알아두면 쓸모 많은 법률상식 (25)법적 책임 묻지 않기로 한 결투

피해자 승낙하에 법익 훼손하거나 그 내용이 윤리적·도덕적으로 사회상규 반하지 않아야만 면책

개인끼리 격투는 쌍방 합의 있어도 신체적 자유 침해 등 범죄에 해당

보험금 편취 목적 상해도 마찬가지
 


A씨와 B씨는 40대 남성으로, 평소 층간소음 등의 문제로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급기야 두 사람은 ‘서로 합의하에 결투하고 어떠한 피해에 대해서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다’는 각서를 작성한 뒤 결투를 벌이기로 했다. 두 사람은 공터에서 싸움을 했는데, 체격이 컸던 A씨는 B씨를 밀쳐 넘어뜨린 다음 주먹으로 얼굴을 여러 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 싸움은 A씨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두 사람이 결투에 동의했기 때문에 A씨는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을까? 불행히도 A씨는 형사법정에 서게 됐다. 형법 제24조에 따르면 피해자의 승낙에 의해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자의 승낙도 일정한 요건이 필요하다. 즉 ▲처분할 수 있는 자가 승낙해야 하고 ▲법률에 (처벌한다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야 한다. 이를 법에서는 ‘위법성 조각사유’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는 물건의 주인이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했거나 집주인이 초대한 경우 등이다. 이때는 절도나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승낙을 얻어도 죄가 되는 경우도 있다. 먼저 살인이다. 형법상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는 징역 1~10년에 해당하는 범죄다. 또한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적인 접촉은 승낙이나 동의가 있어도 강간이나 강제추행으로 처벌받는다. 아동에게는 성적자기결정을 할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판례에 따르면 승낙의 요건이 하나 더 있다. “피해자의 승낙이 윤리적·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쌍방 합의하에 이뤄지는 폭행(또는 상해)이다.

통상 태권도나 권투 등 정식 스포츠(격투기)를 통한 가격은 피해자의 승낙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 보아 처벌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끼리 격투하는 것은 설사 합의나 승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면책되지 않는다. 따라서 A씨의 행동도 범죄였다. 법원은 “A씨가 흥분한 상태에서 B씨를 의도적으로 폭행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상해죄를 인정했다. 두 사람이 작성한 각서는 신체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효력이 없었다. A씨는 벌금형 처벌을 받았고 B씨의 치료비 등을 손해배상금으로 물어줘야 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B씨는 위장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타내려고 동네 후배 C씨에게 자신을 때려달라고 부탁했다. C씨는 B씨의 무릎 부위를 죽도와 나무판자로 수차례 내리쳤다. 그 직후 B씨는 전치 2주의 진단서를 끊어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었다”고 속여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거짓이 들통나고 말았다. 법원은 “교통사고를 가장해 보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상해를 가했다면 피해자의 승낙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한 목적에 이용한 것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B씨는 사기죄, C씨는 상해죄로 처벌받았다. 병역면제 처분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체를 훼손한 경우, 한대에 얼마씩 주기로 하고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우도 예외 없이 유죄로 처벌됐다.

서로 폭력을 허용하겠다는 약속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을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람의 신체나 생명은 흥정이나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용국<법원공무원 겸 법률칼럼니스트, ‘생활법률 상식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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