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년기획 인터뷰]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행복 100세를 위한 지혜

입력 : 2022-01-12 00:00 수정 : 2022-01-1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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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후 교수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아픈 기억과 이별하기,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황을 다시 바라보기, 화내고 억울해하고 오해했던 나를 용서하기와 같은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2022 신년기획 인터뷰]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원망하는 마음은 뜨거운 석탄과 같아…계속 쥐고 있으면 다치는 건 자기 자신

행복한 노년 보내는 노교수의 지혜

좋은 부모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길 올바르게 사는 모습 보여주면 충분

끈끈한 우정, 심리적 안정 자양분 타인에 먼저 다가가려는 용기 발휘를

신경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 가슴에 한 품고 사는 환자 많이 봐

아픈 기억 이별…‘용서의 강’ 건너야

베풀고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 부족 죽음의 공포 내려놓고 여생을 귀하게

 

‘40만부 판매 베스트셀러의 저자, 철학을 논하는 유튜버, 사이버대학에 다시 들어간 문학도.’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독특한 이력이다. 그는 여든일곱살이 됐지만 활동반경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다. 책 쓰랴, 강의 나가랴, 영상 촬영하랴, 하루를 이틀처럼 쓴다. 이 교수는 최근 내놓은 책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란 제목처럼 활기차고 유쾌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50여년간 환자를 돌봤고, 30여년간 네팔에서 의료봉사를 이끌었던 그는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도 설립해 부모·자녀 관계, 노후 준비 등을 교육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이 교수로부터 ‘즐거운 인생,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노하우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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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가 그동안 받았던 정부 훈·포장, 상패(왼쪽)와 출간 단행본(오른쪽).



1월초 한적한 오후, 두근거리는 설렘을 갖고 서울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가족아카데미아 사무실을 찾았다. 학창시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뒤 50년이 넘는 기간 활동했던 노학자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부푼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두꺼운 안경 렌즈와 서리가 내린 듯한 백발은 그의 세월을 짐작하게 했다. 다만 손님을 맞이하는 그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봄처럼 싱그러운 청년을 떠올리게 했다. 이 교수는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건강한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취미, 마음을 가볍게 하는 법 등을 설파해 나갔다.

“행복한 노년이라…. 무엇보다 부모·자식간 관계를 돌아본다면 생각보다 빨리 행복으로 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교수는 먼저 ‘가족 관계’를 주제로 꺼냈다. 자녀 나이가 18세가 넘어도 여전히 품 안의 자식으로 생각하는 부모 그리고 여전히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니 벗어날 생각도 없는 자녀가 서로 행복을 막는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그는 천문학자가 된 아들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들이 왜 별을 좋아하게 된 줄 알아요? 의도하지 않은 부모의 무관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직장에 나간 엄마,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하늘을 올려다보다 별과 우주를 탐구하기 시작한 거예요.”

부모 역할이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그의 말이 와닿았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거나 지나친 애정을 쏟지 말라고 당부했다. 부모 자신이 올바르게 사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대화 주제가 자연스레 ‘가족’에서 ‘친구’로 넘어갔다. 끈끈한 우정이야말로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고, 고립감으로부터 탈피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앞에 놓인 따뜻한 차를 한모금 들이켠 그는 사무실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한자로 ‘욕래조(欲來鳥) 선수목(先樹木)’이라는 고사성어가 적혀 있었다.

“새를 불러 모으려면 먼저 나무를 심으라는 뜻이에요.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먼저 그에게 다가가려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 교수는 은퇴 후 한국문화를 더 깊이 공부하고자 사이버대학에 입학하기도 했다.

“1학년 때였을까요. 재학생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나에게 ‘교수님’이라는 호칭 말고 학교 동문으로서 선배 또는 후배라고 불러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내가 한때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라며 팔짱을 끼고 있어봐요. 외톨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나무를 심을 생각도 안하는데 새가 올 리 있느냔 말이죠.”

주위에 선한 영향을 끼칠 만한 취미를 가져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20년 넘게 ‘예띠 시 낭송회’라는 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한번은 구성원과 함께 좀더 유익한 일을 해보자며 뜻을 모았죠.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에게 시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시집을 낼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어요. 시를 접한 후 학생의 폭력 성향이 줄고 문학활동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는 요즘 손자, 학교 후배와 같이 유튜브 영상을 찍으며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근후 스튜디오’ 채널을 직접 운영하는데 앞으로도 현대인의 심리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영상을 온라인에 게재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용서’라는 단어를 여러차례 언급했다. 용서라는 강을 건너야 마음이 가벼워지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료할 때 원한을 품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환자를 얼마나 많이 봤겠어요. 용서란 게 참 어렵죠. 그런데 원한을 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던지려고 오랫동안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화상을 입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상대방을 용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아픈 기억과 이별하기→상대방의 관점에서 상황을 다시 바라보기→화내고 억울해하고 오해했던 나를 용서하기’와 같은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흔을 앞둔 자신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이 교수는 잠시 눈을 감더니 과거를 회상했다. 중학교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골목마다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을 보니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로 느껴졌다. 의사가 되고선 첫 환자로 받은 화상 입은 초등학생의 죽음을 봐야 했다. 너무 가슴 아픈 나머지 그 후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려고 노력했단다.

“몇달 전 전립선 수술 때 전신마취를 했어요. 그때 비로소 타인이 아닌 ‘나의 죽음’을 떠올렸어요. 마취로 눈이 스르르 감기고 다시 정신을 차리는 사이 몇시간이 흘렀을 테지만 찰나처럼 느껴졌거든요. ‘아! 이게 죽는다는 것이구나. 별것 아니구나!’라고 깨달았죠. 그때 이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내려놓게 됐어요. 다만 죽음으로 가는 삶의 여정이 무료하지 않길, 고독하지 않길, 고통스럽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삶과 죽음 사이의 길을 닦으며 중단 없이 나아가라고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넋 놓고 죽음을 기다리지 마세요.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세요. 베풀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나요? 허허허∼.”

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 사진=현진 기자 sajinga@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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