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자연의 아름다움을 입으세요”

입력 : 2021-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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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시 애월읍 목화농장 ‘목화오름’에서 정보람씨가 하얀 목화송이를 수확하고 있다.

[농촌 Zoom 人] 직접 키운 목화로 옷 만드는 정보람씨

패션 공부 위해 떠난 해외연수 중 옷 원재료 연구 필요성 느껴 귀농

해발 300m 농장 ‘목화오름’ 이름 붙여 통나무 농막 지어 밭 관리하고 옷 구상

탈색 과정 거치지 않고 본연의 색 사용 직접 재배·디자인·생산…매장 열고파

 

제주 제주시 애월읍에는 해발 300m에 7272㎡(약 2200평) 규모로 펼쳐진 목화밭이 있다. 새별오름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이 목화밭에선 하늘의 뭉게구름이 땅에 내려앉은 것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 귀농 4년차인 정보람씨(39)는 이곳에서 직접 키운 목화로 한국 패션계를 선도할 옷을 만드는 게 꿈이다. 정씨가 목화밭에 붙인 이름은 ‘목화오름’이다.

정씨는 귀농 전 서울에서 3년 동안 모델로 활동하고, 유명 가방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6년간 일했다. 이후 패션 공부를 하고자 1년간 떠난 해외연수에서 정씨는 국내 패션업계의 한계를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원단을 수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해외에서는 직접 생산한 원단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실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씨가 직접 목화농사를 지어 옷을 완성하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 바로 이때다.

“80년 이상 된 해외 브랜드는 소재의 미세한 차이부터 따져가며 디자인을 해요. 섬유 혼용률에 따라 달라지는 질감의 차이는 원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알기 어렵죠.”

해외연수 이후 옷의 원재료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한 정씨는 2018년 부모님과 함께 제주로 귀농했다. 부모님이 노후를 보내려고 터를 잡은 제주에 함께 내려온 것이다. 그는 직접 재배한 재료로 옷을 만들기 위해 목화농사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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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갈색·녹색 등 목화 종자에 따라 다른 세가지 색깔의 목화송이.

그러나 처음 해보는 목화농사는 쉽지 않았다. 4월에 15㎝ 정도 자란 목화 모종을 밭에 옮겨 심으면 농사가 시작된다. 이후 10월말 목화송이를 수확할 때까지 끊임없이 잡초를 뽑아줘야 한다. 그는 어린아이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자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잡초를 손수 뽑은 탓에 손마디 관절과 허리 통증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또 잦은 태풍으로 원하는 만큼 생산량을 얻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목화밭에서 씨름한 지 3년, 드디어 목화로 촘촘한 순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농사가 실패할 걸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에요. 실패하더라도 원재료를 직접 길러봐야 옷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패션에 관심이 많고 옷도 좋아하지만, 정작 옷의 원재료에는 관심이 없잖아요. 그런 분위기를 깨고 싶었어요.”

정씨는 목화를 알리기 위한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패션 관련 학과의 학생들이 직접 눈으로 목화송이를 볼 수 있도록 목화농장을 학과의 견학 장소로 빌려주기도 한다. 밭에 있는 목화를 처음 본 학생들이 많아 수업이 진행될 때마다 정씨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10월31일부터 11월7일까지는 ‘목화선셋’이라는 축제도 열었다. 1만원의 입장료를 낸 관광객들은 목화밭 사이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즐겼다. 해 질 무렵이면 정씨가 초빙한 기타리스트와 피아노 연주가가 목화밭 한가운데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몽실몽실한 목화송이를 보면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옷으로 만들어지기 전 재료의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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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람씨가 목화밭을 관리하기 위해 해발 300m에 직접 지은 통나무 농막.


정씨는 내년에 직접 뽑은 실로 손수 디자인한 옷을 판매하는 매장을 내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목화오름의 통나무 농막에서 원단을 이리저리 재단하며 어울리는 디자인을 구상 중이다. 농막 안에는 할머니 때부터 사용하던 재봉틀이 있고, 정씨가 밤을 새워 고민한 흔적이 담긴 원단 조각들이 널려 있다. 조각들은 각각 흰색·녹색·갈색을 띤다. 목화는 종자에 따라 솜털의 색이 세가지로 나뉘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넣어 탈색해야 원하는 색을 입히기 쉽지만, 정씨는 화학성분을 쓰고 싶지 않아 탈색 과정은 건너뛰고 자연 그대로의 색을 사용한다.

“목화의 꽃말은 ‘엄마의 사랑’입니다. 엄마의 사랑이 담긴 옷처럼 입는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순수한 옷을 만들고 싶어요. 원단 재료를 키우는 것부터 세밀한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까지 모두 제 손을 거친 옷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주=서지민 기자,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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