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외양간의 대변신 지역 명소로 떴다

입력 : 2021-05-26 00:00 수정 : 2021-05-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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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시 병산동에 있는 갤러리 ‘소집’의 밤 전경

[농촌ZOOM人] 갤러리 ‘소집’ 주인장 고기은씨

공간 기반 청년창업사업에 공모

실내 공사비 등 일부 지원받아 2019년 4월 아버지와 함께 개관

미술부터 도예까지 다양하게 전시 매월 주제 바꿔…올해 일정 꽉 차

‘지역 공간의 가치’ 온라인 홍보도

 

강원 강릉시 병산동의 한 시골마을이 지역 예술가와 관광객으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본래 기능을 잃은 외양간이 작은 전시관으로 바뀌면서부터다. 그 중심엔 서울살이를 끝내고 고향에 정착한 고기은씨(36)가 있다.

그는 아버지 고종환씨(60)와 함께 2019년 4월26일 갤러리이자 쉼터인 ‘소집’을 개관했다. ‘소집’은 말 그대로 소가 살던 외양간이란 뜻이다. 고씨는 개관 준비과정에서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추진한 ‘공간 기반 청년창업’ 사업에 공모해 실내 공사비 등을 일부 지원받았다.

66㎡(20평) 남짓한 건물은 외양간 뼈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한 게 특징이다. 시옷(ㅅ) 형태의 지붕은 물론이고 벽 곳곳에 큰 창문을 내 자연과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살렸다. 전시관 입구에는 과거를 증명해주려는 듯 멍에와 코뚜레가 전시돼 있다. 현재 ‘소집’에서는 가족의 일상을 담은 사진과 토막글을 감상할 수 있는 이경모 작가의 ‘사랑, 사람’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 들어간 고씨는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학년이 됐을 무렵 휴학계를 내고 약 2년간 지상파 아침 프로그램 두곳에서 방송작가로 활약했다. 학업을 마치고 온라인유통회사 쿠팡에 들어가 여행 콘텐츠 기획을 맡기도 했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이 보람될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공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난 지 10년 만에 미련 없이 강릉행을 선택했다.

“도시의 빼곡한 마천루 숲을 볼 때마다 답답했어요. 아침에 사람에 치여 타는 지하철도 고역이었고요. 마음속으로 간직해온 강릉 앞바다의 푸른빛을 자꾸 잃어버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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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고기은씨.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지역 곳곳에 있는 호수를 여행했다. 지역 방송사에서 일하다 은퇴한 아버지는 오랫동안 사진 찍는 재능을 갈고닦아왔다. 여행 내내 아버지는 바깥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고, 딸은 자연과 교감했던 경험을 글에 담았다. 고씨는 여행기를 엮어 ‘강릉에서 고성까지 석호 이야기’ 부제를 단 책 <뷰레이크타임>을 발간해 크라우드펀딩 형태로 세상에 알렸다.

지역 예술계 인사와 자유로이 교류하던 그는 수년 전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릉에 자유롭게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불만이었다. 그가 갤러리 ‘소집’의 주인장으로 나서게 된 까닭이다.

전시관은 금세 지역 명소, 예술가의 사랑방으로 변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규격화한 전시관과는 달리 ‘실험에 가까운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였다. 미술·사진에서부터 캘리그래피·도예까지 전시 범위를 한정 짓지 않았다. 특히 작가가 수시로 전시관을 방문하게 해 작품·작가·관람객과의 거리를 좁히려 노력했다. 한달에 한번 주제를 바꾸는데, 이미 올해말까지 전시 일정이 꽉 찼다.

아버지와의 협업과정에서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건 또 다른 소득이다. 딸만 넷인 집안에서 아버지는 종종 소외감을 느꼈고, 아버지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고씨는 마음에 생채기가 나곤 했다.

“아버지가 갤러리를 지키는 날엔 유난히 관람객의 반응이 좋은 거예요. 소통하는 방식이 다소 투박했지만 알게 모르게 찾는 이들을 챙겨주는 아버지를 갤러리에서 발견하게 됐어요. 말과 행동이 서툴렀을 뿐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게 된 거죠.”

고씨는 지방에 살면서 공간 가치를 다르게 해석하는 통찰도 얻게 됐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전국이 반일 생활권에 접어들면서 지금까지 소외돼온 지방 곳곳의 공간이 전에 없던 연결의 가치를 갖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지역 공간의 가치를 온라인을 통해 알리는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 사는 청년 이야기를 인터넷 잡지에 연재하는 프로젝트, 성남시와 함께 청년 공동체를 견인하는 사업을 동시에 준비 중이다.

고씨처럼 대도시를 떠나 지방에서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궁금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차려놓고 이주하겠다는 마음을 접으세요. 새 터전이 될 곳의 상황을 잘 모르잖아요. 대신 지방에 살면서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는 노력을 기울여보세요. 역설적으로 들릴 테지만 화려하고 거창한 계획서를 잠시 내려놓고 머릿속을 비운다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더욱 또렷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강릉=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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