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해발 0m부터 한라산 정상까지…완등 기쁨 누리며 삶 응원하죠”

입력 : 2021-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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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람 제로포인트트레일 대표가 등산 시작점인 제주 해안의 용진교에서 인증 포즈를 취하고 있다.

[농촌 ZOOM 人] 유아람 제로포인트트레일 대표

해안에서 출발하는 등산 프로그램 지난해 세계 최초 일반인 대상 출시

입소문 통해 발길…400여명 성공 실패 후 재도전율 99% 달해 ‘열의’

SNS로 여정 중계…실시간 인증 예비관광벤처 우수기업으로 선정

 

대한민국 최고봉인 제주 한라산 백록담(1947m)에 오르는 길은 보통 해발 600∼700m의 탐방로 입구에서 시작된다. 즉 누군가가 한라산 백록담을 올랐다고 했을 때 그가 실제 오른 높이는 1300여m일 뿐, 나머지는 그의 두다리로 해냈던 게 아녔던 셈.

이에 유아람 제로포인트트레일 대표(39)는 한라산을 오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해발 0m 해안에서부터 정상까지 온전히 자신만의 걸음으로 오르는 ‘시투서밋(Sea to Summit)’ 방식의 한라산 등산 프로그램을 선보인 것이다. 시투서밋은 몇몇 산악인들 사이에서 알려진 등산 방식으로, 도전자는 해면 위로 드러난 산을 그 어떤 동력의 도움 없이 완전히 오르는 지난한 과정 동안 자신의 한계에 수없이 직면하게 된다.

유 대표는 2020년 세계 최초로 일반인 대상 시투서밋 방식의 등산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제로포인트트레일이란 회사 이름도 해발 0m, 즉 ‘제로포인트’ 지점에서 트레킹을 출발한다는 뜻에서 지었다.

“인생 자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2013년 제주로 이주했다. 고향은 서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등산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워낙 한라산을 좋아해 일년에 십수차례씩 방문하던 제주에 자리 잡은 것.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산악인이잖아요. 산에서 목숨을 내놓겠다고 당장 말하진 못해도 제가 사랑하는 한라산을 해발 0m부터 올라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트레킹의 시작점은 제주항이 있는 산지천 인근으로 정했다. 원래 산지포구가 있던 이곳은 제주항이 생기기 2000년도 더 전부터 육지와 제주를 연결하는 관문 같은 곳이었다. 제주의 시작점에서부터 대한민국 최고봉을 올라간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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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자들의 명패가 제로포인트 스테이션에 붙어 있다.

“이곳에서 백록담이 있는 정상을 보면 너무 까마득해서 엄두가 안 나요. ‘과연 내가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용기를 내 한걸음씩 걷다보면 어느새 현실이 되는 것이 감동스러워요.”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도전자들이 찾아왔다. 총 길이 31㎞의 코스를 하루 안에 완주하는 프로그램을 지금까지 약 400명이 성공했다.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며 최고령 완주자는 65세다. 보통 10명이 도전하면 2명 정도 실패하는데, 실패해도 재도전율이 99%에 이를 정도로 참가자들의 열의가 높다.

프로그램의 특징은 실시간 피드백과 인증이다. 참가자들의 여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중계돼 다양한 사람들의 응원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고, 완주하면 제로포인트트레일의 SNS와 홈페이지에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걸리게 된다. 또 자신의 이름이 각인된 명패도 카페 겸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운영하는 제로포인트 스테이션 벽에 붙일 수 있다. 이곳에선 제주의 <하귤>로 만든 음료와 귤칩 등도 판매하고 있다.

“사실 한라산까지 가는 길은 그냥 길일 뿐이에요. 저희 회사의 핵심가치는 시투서밋이라는 공통의 목표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응원하고 연결한다는 거예요. 꼭두새벽에 출발해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디고 완주의 기쁨을 누려본 분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서로의 삶을 응원하게 되지요. 사실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은 길에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겁니다.”

실제로 SNS에 올라온 참가자들의 사연은 다채롭다. ‘남편이 유서를 쓰고 가라’며 만류했다던 중년의 참가자부터, ‘내가 이 나이에 이걸 할 수 있을까 한참 고민했다’는 참가자, 또 등산으로 건강을 되찾았다며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완주해 예를 표한 참가자도 있다. 이들 모두 한라산을 오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은 것일까.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된 지난해 제로포인트트레일은 한국관광공사 예비관광벤처 우수기업으로 선정됐고, 제주관광공사에서 주최하는 제이스타트업 대상을 받았다. 또 올 하반기엔 새 프로그램을 2개 더 시작할 예정이다.

“보통 머문 자리에서 흔적 없이 떠나자고 하지만, 반대로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자는 환경보호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어요. 자신의 쓰레기뿐만 아니라 기존의 것까지 청소해 제주의 자연이 회복되도록 하는 거죠.”

신록이 점점 짙푸르러지는 요즘, 오늘 우리는 어떤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제주=이연경 기자 worl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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