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온전히 자연에 집중하며 자신을 다독이게 되죠”

입력 : 2021-03-24 00:00 수정 : 2021-03-2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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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Zoom 人] ‘마음치유농장’ 운영하는 서숙희씨

심리상담사 일하다가 4년 전 귀촌 꽃·농작물 등 30여종 심고 가꿔

지진 피해자 대상 첫 진행…치유 효과 치매노인·결혼이민여성 등으로 확대

 

살다보면 누구나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곤 한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도 않고 원인을 콕 집어서 말하기도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국민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때에 위로의 중요성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심리상담사로 일하던 서숙희씨(61)는 마음이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고자 4년 전 귀촌해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마음치유농장’을 열었다.

치유농업의 필요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중에게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치유농업이란 작물을 키워보고 만져보는 등 농업을 통해 치유효과를 거두는 것을 말한다. 마침 24일은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심리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서씨가 마음치유농장을 연 것도 상담과정에서 치유농업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상담할 땐 쉽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닫힌 마음의 문을 열려면 심리상담사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죠. 어느 날 어린아이가 와 상담하는데 딸기 한알을 내밀자 고마워하며 속마음을 털어놓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작은 농산물에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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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사로 일했던 서숙희씨가 운영하는 ‘마음치유농장’에선 지진 피해자, 치매노인 등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위쪽부터 마음치유농장에서 치유농업을 체험하는 참여자들,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서씨, 작물 기르기 체험용 밭. 포항=김병진 기자

서씨는 남편과 함께 6600㎡(약 2000평)의 땅에 수레국화·수선화·자운영·유채·감자 등 30여종의 꽃과 농작물을 심으며 2년간 농장을 가꿨다. 농장의 첫 손님은 지진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들이었다. 2017년 11월15일 포항에선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피해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진 피해자들은 생활 속 작은 흔들림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서씨는 고위험군 피해자 20명과 지난해 5∼7월 주 1회 일곱번에 걸쳐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직은 농장 규모가 작아 단체로만 신청받는데, 보통 한 프로그램마다 한두달에 걸쳐 5∼7회로 운영한다. 참가자가 심은 채소가 자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서씨와 함께 엽채류 모종을 심고 무럭무럭 자란 채소로 음식을 해 먹었다. 농작물을 이용해 자기 심리상태를 묘사하고 속 시원히 말해보는 집단상담 시간도 가졌다.

“다들 처음엔 땅 파는 것도 어색해했어요. 하지만 작물이 앞다퉈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보다 기뻐했죠. 농작업을 할 땐 복잡한 잡념이 다 사라진대요. 우울한 생각을 할 틈이 없는 거죠. 온전히 자연에 집중하며 나를 다독이는 거예요.”

서씨가 분석한 결과, 지진 피해자들은 프로그램 진행 전보다 우울감과 부정적인 정서가 약 19% 감소했다. 이와 반대로 심리적 안정감은 8% 오르고, 삶에 대한 만족도도 11% 상승했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자 마음치유농장은 심리치료가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을 열었다. 발달장애인·치매노인 등 취약계층이 농장을 찾았다. 올해 첫 손님으로는 대구에 사는 중국·베트남 결혼이민여성들이 이달말 농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결혼이민여성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남편과의 소통이에요. 언어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다보니 발생하는 문제죠. 농업은 언어가 필요 없어요. 치유농업을 경험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부부간 의사소통에 대해 알게 되면 좀더 마음을 열 수 있어요.”


서씨는 이런 치유농업을 ‘소풍’이라고 표현한다. 마치 나들이를 가는 것처럼 농장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즐거운 생각만 가득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더 나은 소풍을 꾸리고자 서씨는 경북농민사관학교 치유농림업CEO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여러 유형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심리치료 프로그램도 연구 중이다.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아직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사회적으로 농업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는 만큼 제도적 보완이나 지원이 함께 이뤄지면 좋겠어요. 마음치유농장도 온실이 없어서 3∼10월에만 문을 열거든요. 마음치유농장 같은 곳이 전국에 많아진다면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이 시대에 작은 다독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포항=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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