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시간이 녹았다’던 손님 얘기처럼 마음을 울리는 곳으로…

입력 : 2021-03-10 00:00 수정 : 2021-03-1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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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Zoom 人] ‘숲속 헌책방’ 새한서점 매니저 이승준씨

서울에서 헌책방 하던 아버지 2002년 책 수십만권 들고 귀촌

유명 영화·영상 촬영지로 알려져

어린 시절부터 봐온 낡은 책 매력

5년 전 운영 참여…마케팅 접목 기념품 제작 등 지역 알리기 노력

 

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정치깡패 안상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쩌어기, 모히토 가가지고 몰디브나 한잔 할라니까.”

불의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피해 잠시 숨어든 곳에서 그는 복수의 단꿈과 화려한 휴식을 꿈꾼다. 정작 ‘모히토’란 술의 이름과 ‘몰디브’란 지명을 뒤바꿔 말할 정도로 그의 현실은 비루하지만 말이다. 영화는 2015년 개봉 당시 화제가 됐으며, 안상구의 희망이 투영된 촬영지인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책방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바로 충북 단양군 적성면의 ‘새한서점’이다.

영화 촬영 이후 ‘단양의 명물’이 된 새한서점은 매니저 이승준씨(37)의 일터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이선명 대표(70)가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2002년 헌책을 가지고 귀촌한 것이 ‘숲속 헌책방’ 새한서점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인터넷 판매가 활성화될 텐데 굳이 땅값 비싼 서울에서 버틸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 대표는 책 수십만권을 이고 지고 단양으로 이주했다. 장인의 고집이랄까. 평생 가져온 책에 대한 애정 혹은 집착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정 형편은 당연히 어려웠고 이씨 가족은 결국 헤어짐을 겪어야 했다.

“그때 경제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알지만 가족을 떠나 혼자 시골로 귀촌한 아버지를 존중할 수는 없었어요. 아버지가 본인만의 세계를 가진 것을 존경하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별개의 문제죠.”

이씨는 어머니·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지냈고, 성인이 된 후에는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를 기획하는 ‘스포츠 마케터’란 직업을 갖게 됐다. 단양의 아버지를 찾아뵌 것은 한두번 정도였으며 사실 하루하루 삶이 바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5년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새한서점을 운영하기로 결심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봐온 헌책방의 매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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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면 책이 되게 많잖아요.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누구든 다 같이 와서 즐길 수 있어요. 외떨어진 헌책방이란 공간엔 책마다 담긴 이야기가 주는 매력이 있으니까요. ‘이건 아빠가 보던 책이야’ 하고 낡은 책을 통해 가족이 소통하거든요. 마케터로서 욕심이 나는 아이템이었죠.”

<내부자들>뿐 아니라 유명 영상의 촬영지로도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책을 사러 오는 이보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다. 가뜩이나 헌책방 운영이 어려운데 책은 사지 않고 책 배열까지 망가뜨리니 이씨는 관람료를 받을 생각까지 잠시 했다. 하지만 책을 보러 오는 이들에게 돈을 받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이 단순히 사진 소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아버지를 위해 이씨는 일단 메모를 붙이기로 했다.

‘인생샷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인생책’을 골라서 가시기를….’

처음 헌책방 운영을 시작했을 땐 일과가 끝나면 지쳐 잠들기 일쑤였지만 일이 좀 익숙해지자 단양 구경을 나설 여유도 생겼고, 새로운 고향인 단양의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단양노트’라는 기념품가게를 열어 새한서점·사인암·도담삼봉 등 단양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노트와 마그넷(자석) 등을 제작해 단양을 알리기 시작했다.

“봄이면 단양 구도심인 단성에 피는 벚꽃이 정말 예뻐요. 그 풍경을 노트로 제작해 단성의 아름다움을 알리기도 했죠. 새한서점을 포함해 단양이라는 곳 자체를 젊고 재밌게 브랜딩하고 싶어요. 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거죠.”

단양노트는 미목공방이나 송현진 그림작가 등 유명 공방·아티스트와 협업해 다양한 기념품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6∼7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다. 아티스트가 계절별로 단양을 여행하고 경험한 것을 웹툰으로 제작해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연재하고 있으며, 단양을 알리는 동화책 제작도 계획하고 있다. 또 마케팅과 브랜딩에 관심이 많은 단양고등학교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도우면서 단양을 어떻게 더 잘 알릴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일주일 전쯤 비 오던 날 손님 한팀이 서점에 오래 머물다 갔는데 이곳에서 ‘시간이 녹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새한서점과 단양을 이처럼 마음을 울리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단양=이연경 기자 worl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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