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잠시 멈춘 1년, 농업 매력 깨닫고 가족 이해하게 됐죠”

입력 : 2021-02-24 00:00 수정 : 2021-02-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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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뉴포트 지역의 한 우프 공동체에서 머무는 동안 쉬는 시간에 박은빈씨가 탄 수레를 동생 수빈씨가 끌어주고 있다.

[농촌 zoom 人] ‘우프’로 유럽여행 떠난 박은빈씨 가족

6년 전 모두 하던 일 접고 ‘훌쩍’

유기농가 일손 돕고 숙식 제공받는 ‘우프’ 프로그램 이용 7개국 방문

땀 흘리며 농업 경이로움 체득 서로 마음 터놓고 대화 늘어 

올해 초 여행기 담은 책 발간

 

손에 쥐고 있던 작은 것이라도 놓을라치면 당장에 큰일이 날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심심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 세상이 정해놓은 잘 포장된 길을 거부하고 과감하게 ‘탈선’한 이들이 있다. 하던 일을 모두 접고 1년간 해외여행을 떠난 박은빈씨(32)네 가족 이야기다.

이들은 17년 전 강원 춘천시 사북면에 귀농해 아버지 박규대씨(61)는 농사를 짓고 어머니 송경자씨(59)는 교회 목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6년 전 어머니가 돌연 목사 자리를 내려놓고 홀로 장기간 해외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동생 수빈씨(24)가 여행에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여행지에서 동생을 돌봐달라며 충남 홍성에서 교육농장을 운영하던 은빈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족이 모두 함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아버지도 마지못해 농사일을 놓고 여정에 동참했다. 밭을 떠난 농부와 교회를 떠난 목사, 직장을 떠난 20대, 학교를 떠난 수험생의 1년짜리 기묘한 가족여행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유럽의 생태공동체·종교공동체나 유기농가 체험이 가능한 ‘우프(WWOOF)’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을 돌기로 계획했다. 우프란 유기농가에서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으로 전세계 150여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은빈씨는 “원래 농촌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영국·독일·프랑스·터키 등 유럽 7개국 곳곳에 적합한 지역을 탐색했다”면서 “일정 시간 노동을 하면 숙식이 해결돼 비용이 넉넉지 않던 우리 가족에겐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농가에서는 하루 4∼5시간 땀 흘려 밭을 갈면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와 달걀, 과일 등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엔 여행에 별 흥미가 없었던 아버지는 각 나라 농민들로부터 유기농법을 배우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 도시를 여행하고 싶었던 수빈씨도 유럽의 농촌을 돌면서 반 농부가 다 됐다. 밥도 제대로 할 줄 몰랐던 그가 농산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행 중 밭을 일구고 땀을 흘리면서 ‘키워내는 것’의 경이로움을 알게 된 거죠. 차려진 밥상만 받던 제가 이제는 양배추로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가 됐어요.”

그런데 여행이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했다. 24시간 밀착해 함께 생활하다보니 그간 느끼지 못했던 ‘타인으로서의 가족’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한 은빈씨는 평소 억제해온 예민함이 자주 폭발했다.

“귀농하겠다며 먼저 춘천으로 떠난 아버지를 원망했던 과거의 마음이 자주 표출됐어요. 아버지, 그리고 나머지 가족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고, 의견 차이가 생길 때마다 강하게 아버지를 밀쳐내고 말았죠.”

불협화음이 계속되던 이들은 매월 한번 ‘가족 모임’을 열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도 하고 한달 경비를 정산하기도 하고, 다음 일정을 정하는 시간이었다. 대화가 많아지자 그들은 더는 ‘낯선 가족’이 아니었다. 언니는 왜 평범한 인생을 거부한 것인지, 큰딸이 왜 나와 소통이 되지 않는지, 그동안 몰랐던 서로에 대한 의문들이 조금씩 풀렸다.

‘잠깐 멈춘’ 1년이라는 시간 이후 이들의 삶은 한층 풍성해졌고, 사고는 유연해졌다. 귀농하며 흙집을 손수 지었던 아버지는 주변에 집을 잘 짓는다는 소문이 나자 농부 대신 건축가의 길을 택했다.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지독하게 공부에 매달렸던 수빈씨는 대학생이 됐고 앞으로 정보기술산업 분야에서 일할 계획이다.

박은빈씨가 올 초에 펴낸 책 ‘여전히 가족은 어렵습니다만’.


농촌 치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어 하는 은빈씨는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묶어 올해 초 책을 펴냈다. 제목은 <여전히 가족은 어렵습니다만>이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해 이해하려는 과정을 생략하거나 쉽게 상처를 주죠. 여전히 가족은 어렵습니다만 마음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도 서로 솔직하게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여행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문수 기자 leemoonso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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