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농업 무너지면 농민도 국민도 모두 피해”

입력 : 2020-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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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작물별로 정리된 개론서도 없었다고. 크게 영농이랑 축산 뭐 이렇게만 있었지. 아니,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이대로 가서야 농민들이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지.”

성진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80)는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한 무렵을 이렇게 회고했다. 1992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20여년간 성 교수가 낸 책은 올해 쓴 신간을 포함해 자그마치 46권에 달한다. 그중 일반 정치·경제 분야를 다룬 몇권을 빼면 40여권이 모두 농업 관련 서적이다. 고추·포도 등 작물별 개론서를 비롯해 급변하는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해외 농업 자료 시리즈, 이에 더해 우리 농업의 활로를 모색하는 여러 경영·경제 관련 도서 등. 농업계 원로학자로서 그간 걸어온 길이 이 수십여권의 책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아끼는 저서는 <農 사람·일·터의 가치와 역할>이다. ‘개방 경제와 한국 농업’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우루과이라운드(UR) 자문위원이었던 성 교수가 UR 협상에 참여하고 온 뒤 쓴 것으로, 그의 이름으로 집필한 첫번째 책이기도 하다.

“큰일 났구나 싶었지. 앞으로의 개방 경제 흐름에서 농업분야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자명해 보이는데,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면 우리 농업은 차례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해 쓴 게 이 책이야. 예를 들어 물을 저장하는 논의 기능이 사라지면 전 국토가 범람한 물로 가득 찰 것이라고. 농업이 무너지면 농민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걸 알리고자 했지.”

성 교수가 1992년 펴낸 이 책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지금이야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20년도 훌쩍 전인 그때 이같은 이야기를 꺼낸 건 성 교수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듬해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우수 도서로 선정돼 상(자유경제출판문화상)도 받았다. “아니 왜 전경련에서 농업분야 책에 상을 줍니까?”라는 성 교수의 질문에 전경련 회장의 대답은 “저희도 우리 농업·농촌에 관심이 많습니다”였다고.

최근 발간한 <4차산업혁명 시대 농업경영혁신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국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은 책이다. 비대면·온라인 시장이 농산물 유통의 주 무대로 떠오른 지금 기존 유통 채널이 대응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또 4차산업혁명 시대의 스마트농업 기술이 우리 농업·농촌에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 등등. 위기이자 기회를 맞은 한국 농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애정 어린 지침을 담았다.

책을 쓰는 두달간 체중이 3㎏이나 줄었다는 성 교수. 그는 “‘흰 눈 덮인 들판에 새 길을 만드는 일’을 피해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이번 책을 썼다”고 전했다. 대내외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 농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는 것.

그는 “누군가에게 노욕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농업계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낸 길이 구불구불할지언정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누군가가 그 뒤를 따라 반듯하게 만들어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현진, 사진=이희철 기자 abc@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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