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수확의 기쁨 못잖은 글농사 재미에 ‘푹∼’

입력 : 2020-10-14 00:00 수정 : 2020-10-1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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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에서 농사와 글농사를 짓는 박순자씨(오른쪽)가 올해 열린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받은 상장을 들고 남편 민귀식씨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농촌 Zoom 人]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특별상 수상 박순자씨

72세에 문해학교 입학

2년 넘게 주 2회 한글공부 심정 담은 시 쓸 만큼 실력 향상

과거 글 몰라 주눅 들었지만

이젠 웬만한 일 혼자서 척척 자녀·손주들 모두 기뻐해


‘나는 농사를 짓는다/올해는 깨농사를 지었다/봄에는 꽃도 잘 피고/여름에는 열매도 잘 맺고/그런데/딱 수확할 때가 되니/탁 줄기가 주저앉아버리네/글농사는 밤이고 낮이고/마음 쓰니 잘 지어지는데/깨농사는/마음이 주저앉아버리네/매년 짓는 농사인데/마음대로 안되네’


경남 산청의 박순자 할머니(75)가 쓴 시(詩) ‘농사짓기’의 일부다. 올해 박 할머니는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열린 시화전에서 특별상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상을 받았다. 전세계적으로 문맹 퇴치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로, 우리 정부도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을 통해 한글 기초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박 할머니는 2017년 9월부터 문해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2번씩, 마을회관에서 2시간씩 한글을 배운 지 어느새 2년이 넘었다. 오후 1시에 시작하는 수업이 있는 날이면, 오전 7시부터 회관을 쓸고 닦으며 학습의지를 붙태웠다. 올초부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아 속상할 따름이다.

소녀 시절, 학교에 다녀본 건 한달뿐이다. “선생님이 돈 못 내면 오지 말라고 하니 안 갔지. 동네에서 50명이 학교 들어가도 20명도 졸업 못했어.” 촌사람 태반이 못 배우던 시절이었으니 유난한 일은 아니었다. 팔남매 중 맏이인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식구들 끼니 잇기도 어려웠다.

그러려니 하고 살았어도 배우지 못했다는 건 주눅이 드는 일이었다. 장이 서도 물건 살 줄도 몰랐다. “막 시집와서는 쌀 한되에 10원이면 열되에 얼마인지 계산할 줄도 몰랐어요.” 공부 잘해 장학금 받으며 학교에 다녔던 둘째 아들 담임선생님이 좀 뵙자고 불러도 학교 갈 엄두를 못 냈다. “못 배운 게 창피하고 무서워 못 갔지. 영감만 맨날 보냈어.”

휴대전화는 집 전화와 다를 게 없었다. 전화를 받을 수는 있어도 걸 줄 모르니, 집에 놓고 다닌 탓이다. 자식들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남편 민귀식 할아버지(81)한테 대신 걸어달라고 했다. 이러니 한달 휴대전화 요금 1만원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단다.

할머니가 글을 깨친 요즘, 휴대전화는 드디어 제 역할을 하게 됐다. 3년 전에 산 폴더폰이 애물단지 신세를 벗어나 늘 할머니 목에 걸려 있게 된 것. 매일같이 함께 있는 할아버지야 덤덤하지만, 덕분에 서울·울산·경남 김해 등 전국에 흩어져 사는 오남매는 어머니와 언제든지 통화가 되니 안심하고 좋아한다. 특히 이번 수상 소식에는 오남매에 그 손주들까지 계속 전화했단다.

“이제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다 그렇다고 하고 사는 게지. 근데 이렇게 상을 받아 오니 (박 할머니가) 고맙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 곧 학업을 접었다는 할아버지는 아내가 못내 대견하다. 문해학교 숙제를 할 때 할아버지가 돕기도 많이 도왔다.

나이 일흔 줄에 배움에 재미를 붙인 박 할머니가 올해 키웠던 작물은 깨와 쌀. 아쉽지만 올해 깨농사는 영 아니었단다. 비가 많이 오니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깨가 버틸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박 할머니는 씩씩하게, 그의 시처럼 여생을 살 게다.

‘마음이 주저앉아버릴 때는/글농사나 지어봐야지/나는 농사를 짓는다/올해도 글농사를 짓는다’

산청=이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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