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소술 죽로차 명인 “국산 녹차, 세계적 명차로 만드는 게 사명”

입력 : 2019-05-03 00:00 수정 : 2019-05-06 23:39
홍소술 명인이 말린 찻잎의 향을 맡아보고 있다.

[이사람] 홍소술 죽로차 명인<경남 하동>

할머니 대부터 차 덖는 기술 전해와 1960년 국내 최초 판매용 차 제조

대숲서 자란 찻잎 덖은 죽로차로 농식품부 제30호 식품명인에 선정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 전후면 찻잎을 따는 손길이 더욱 분주해진다. 고급 녹차로 인기가 높은 ‘우전’과 ‘곡우’는 곡우 전에, ‘작설’은 곡우부터 입하 사이에 딴 찻잎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제30호 식품명인인 홍소술 죽로차 명인(88) 역시 곡우 전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때는 우리나라에 차나무를 재배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차를 마시는 사람도 적었고. 막상 차를 만들어서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니만 야생 차나무를 구하러 다니는 게 일입디다. 전국에 차나무가 있다는 곳에는 다 다녔어요.”

홍 명인이 말하는 ‘그때’는 1959년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이다. 전쟁이 할퀴고 가 폐허가 된 자리에 겨우 곡식을 심어 그걸로 연명하던 때니 차를 마시는 이가 많을 리 없었다. 하지만 홍 명인은 차산업에 주목했다.

“우리 집에서는 원래 할머니가 차를 덖었어요. 파는 건 아니었어도 바닷가 남쪽지역에서는 집 앞에서 찻잎을 뜯어다가 마시는 사람들이 종종 있긴 했거든. 할머니가 하던 게 어머니에게 이어지고, 나까지 그 기술을 배웠는데 그냥 버리기는 아깝더라고요. 일본 사람들도 다 차를 마시고, 서양 사람들도 차를 마시는데 우리는 내놓을 국산차가 하나도 없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고.”

당시 경북 고령에 살던 홍 명인이 경남 산청·하동을 찾은 것도 이때다. 야생 차밭이 펼쳐져 있다는 말만 듣고 지리산을 넘어온 것이다. 동네 여관에서 몇날 며칠을 머물며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다.

“당시 차나무는 그냥 풀이랑 같이 베서 퇴비로 만들었어요. 땅주인한테 사정을 했지. 풀 벨 때 같이 베지 말고 남겨두면 내가 수확하러 오겠다고. 계약서도 썼어요. 차나무가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돈을 준다니까 그러마고 약속을 했죠.”

그렇게 차나무를 수소문한 뒤 1년이 지난 1960년, 홍 명인은 하동의 한 여관 마당에서 차를 덖었다. 녹차의 화학적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빠르게 덖는 것이 홍 명인이 배운 제조 비결. 덖은 차는 멍석에서 빨리 식혀 선명한 녹색이 보존되도록 했다. 이게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판매용 차’였다. 판로를 고심하던 그는 부산의 한 일식당을 찾았다. 일식당에서 내놓기 마련인 녹차는 모두 일본산인 때였다.

“식당에서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더라고요. 두고 갈 테니 맛이라도 봐달라고 부탁하고 다음날 찾아갔더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차가 나올 수 있느냐’며 자기한테 팔라는 거예요. 그때 되겠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홍 명인은 본격적으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명인의 칭호를 선사한 ‘죽로차’도 개발했다. 죽로차는 차광 역할을 하는 대나무 아래서 수확한 찻잎으로 덖은 차를 말한다. 대나무는 뿌리가 옆으로 퍼지는데 차나무는 뿌리가 아래쪽으로 깊어지기 때문에 한곳에서 공존이 가능하단다. 이렇게 재배한 차는 늘 음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햇빛을 많이 받은 찻잎으로 덖은 것보다 맛이 순하고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홍소술 명인이 생산하고 있는 차 제품들.


“녹차 역시 음식의 하나예요. 무엇보다 맛이 좋아야죠. 마무리 과정의 열처리에 저만의 비법이 있어요. 국산 녹차를 더 맛있게 만들어 세계적인 녹차로 만드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은 ‘명인’을 이렇게 정의한다. “기량이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 또는 당대 제일의 고수를 높여 이르는 말.” 하지만 명인이란 말 앞에 식품이 더해지면 단순히 이 정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음식에 대한 철학과 자신만의 이야기까지 덧입은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홍 명인 역시 우리 녹차를 고집스럽게, 뚝심 있게 지켜온 계승자이며 동시에 명인만의 그릇에 맛깔나게 담아 선보이는 전파자였다.

하동=김다정, 사진=이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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