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할배 이야기] 추운 날도 장 나오게 하는 정다운 ‘사람 맛’

입력 : 2019-02-13 00:00

[할매 할배 이야기] 손호남 할머니<경남 김해>

식구들 외출한 집에서 혼자 있기보단 장에서 사람들 만나면서 용돈도 벌어
 


“올해 여든일곱이다. 아직 귀도 밝고 밥도 잘 묵는다. 눈만 좀 안 좋다.”

경남 김해시 진례면에 사는 손호남 할머니가 5일마다 열리는 진례장에 나왔다. 대문 밖 텃밭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는 시금치를 끊어다가 깨끗하게 다듬어서 장에 내왔다. 튼실한 갓난아기 허벅지만 한 무도 몇개 갖고 왔다. 하루 종일 있어 봐야 말 한마디 건넬 사람 없는 집에 혼자 있느니 용돈도 벌 겸 장에 나왔단다.

시금치 한보따리에 이천원, 무 한개에 천원. 다 팔아도 2만원이 채 안될 양이다. 그마저도 날씨가 추워서인지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오늘 해 안에 다 팔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요 무시 한개 가지가라. 무시는 채나물해갖고 무믄 맛내다. 채치갖고 기름 쪼깨 붓고 다싯물 붓고 볶아서, 고칫가루는 안하고 무믄 속이 편타.”

간간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걸어보지만 시금치를 집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침나절에 판 두보따리값이 주머니에 들어 있을 뿐이다.

“안 팔린다. 춥운께 장에 사람도 없고 안 팔린다.”

안 팔릴 줄 뻔히 알면서도 이 추운날 기어이 장에 나오는 것은 산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원·이천원씩이지만 내가 벌어서 내 먹을 것도 사고 미장원도 갈 수 있으니 움직일 수 있는 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람이 그립기도 하다. 아들 며느리에 손녀들까지 여섯명이나 되는 식구들과 함께 살지만 아침이 되면 다 제 볼일 보러 나가고 집에 혼자 남아 있기가 다반사니 말이다.

“요거 요 유모차 밀믄서 살살 걷다가 기다가 하믄서 나온다. 집에 쳐박혀 있느니 나온다. 춥어도 사람도 만내고 이바구도 하고….”

아닌 게 아니라 종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지난 장에 만났던 고기장수·냄비장수가 와서 안부를 챙긴다. 장보러 나온 할머니들도 시금치는 안 사더라도 혼자 앉아 있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마디씩 건넨다.

“오늘도 나오싯습니꺼. 저번 장에 봤는데 모리겄십니꺼. 시금치 보드랍고 좋네.”

“아이고 무시 커서 맛도 없겄다. 할매는 이쁜데 무시는 와 이렇노.”

“맛있구로 해주까, 내가?”

안부인사인 듯 타박인 듯 알쏭달쏭한 말들이 오가는데도 할머니는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말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눈빛은 밝아진다. 유모차에 기대어 걷는 것도 버거워 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야 할지언정 할머니가 기어이 장에 나오는 까닭은 이런 ‘사람 맛’ 때문인 게다. 

김해=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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