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할배 이야기] 적막한 겨울, 할머니의 벗은 어미 누렁이와 새끼 한마리

입력 : 2019-01-30 00:00

[할매 할배 이야기] 김희연 할머니 <충남 홍성>

먼저 떠난 남편·엄마 향한 원망보단 그리움만 가슴 시리도록 켜켜이 쌓여
 


“나 나이? 일흔다섯인가, 여섯인가. 몰라, 그냥 살믄 되지.”

겨울답지 않게 햇볕이 따뜻하던 날 오후, 김희연 할머니는 마당에 나와 강아지 밥을 주고 있었다. 시장통에서 장사하는 아들 성화에 나가서 점심을 얻어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살뜰히 챙겨와 강아지 밥통을 채웠다.

“얼마 전에 사우랑 딸이랑 다 와서 같이 놀러갔다 왔어. 저기 어디 섬이었는데, 거기 가느라고 며칠 집을 비웠는데, 다녀왔더니 우리집 누렁이가 혼자 새끼를 낳았더라고. 그놈이 이놈이야.”

몇마리나 낳았는지 세어보지도 않은 데다 오다가다 들른 동네 사람들이 한마리씩 가져가는 바람에 지금은 어미 누렁이하고 새끼 한마리만 남아 할머니의 벗이 돼주고 있다.

“아들도 딸도 다 결혼해서 나가고 나 혼자 사니까 저놈들이 힘이 되지.”

할짝할짝 소리내며 밥을 먹는 강아지를 지켜보며, 봄날같이 따스한 햇볕받으며, 마당에 앉아 있자니 문득 몇해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배가 예뻤어. 나는 인물이 없지만 아배는 인물이 좋았지. 키도 크고. 인물값 하느라고 맨날 밖으로 돌아다니느라 집에도 잘 안 들어오고 그랬어.”

집을 비운 남편 대신 할머니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서 혼자 자식들 키우고 논도 사고 밭도 샀다. 늘그막에 할아버지랑 오순도순 살려고 번듯하게 집도 지었다.

“방이 세개나 돼. 집도 넓어. 그런디 아배가 일찍 가버렸어. 아까워. 훤칠하고 예뻤는디.”

평생 고생만 시킨 남편인데 늘 보고 싶고 늘 그리운 것은 무슨 조화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눈부시게 부서지는데 사방은 적막하기까지 한, 이런 겨울날 오후에는 더더욱 그립다.

“엄마도 보고 싶어.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 가보도 못했거든. 어찌나 서럽던지 가지도 못하고 밤새도록 울기만 했네.”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이 다 그랬듯이, 할머니도 없는 집 딸로 태어나 못 먹고 못 배우고 자랐다. 없는 살림 사느라 팍팍해진 친정엄마도 할머니에게 다정한 엄마는 아니었다. 좋은 기억보다 섭섭한 기억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국민학교에 가고 싶었거든. 그렇게 보내달라고 했는데 결국 안 보내주더라고.”

왜 그랬냐고 원망할 법도 한데, 오히려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이 시리도록 쌓이고 또 쌓이기만 한다.

“나 죽으면 우리 엄마 옆에다 묻어달라고, 만날 아들한테 말해. 죽은 뒤에라도 엄마·아빠 옆에 있고 싶어. 엄마한테 가고 싶어.”

홍성=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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