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할배 이야기] 난전에서 직접 키운 채소 팔아 자식 키워낸 ‘팔십 평생’

입력 : 2018-10-10 00:00

할매 할배 이야기 - 이영애 할머니<경기 남양주>

젊었을 땐 서울까지 나가서 장사 자식 건사하느라 손 부르트게 일해

이젠 자식들 장성해 쉴 법하지만 불편한 마음에 장날이면 길 나서


“뭐라도 팔아야 장에 나온 재미가 있을 텐데, 오늘 따라 영 사람이 없네. 이거 다 도로 갖고 들어가야 할 판이네.”

이영애 할머니(81)는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서 열리는 광릉오일장에 나와 있었다. 한쪽 끝에 서면 맞은편 끝이 바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장이다. 햇볕 막아줄 파라솔을 나란히 붙여놓고 그 아래 앉은 장꾼들은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탁자 위에 고구마·고추, 머리핀이며 양말을 올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사이에 있지 않았다.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만큼 저만치 떨어진 곳에 할머니의 전(廛)이 홀로 있었다.

“저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장사하는 이들이야. 나는 그냥 집앞에서 기른 것들, 먹고 남은 것들 갖고 와서 파니까 여기 한쪽에 앉아 있지. 이 쪽파랑 대파는 집에서 기른 거고 밤은 산밤이야. 내가 새벽마다 운동 삼아 뒷산에 갔다가 조금씩 주워온 거야.”

전남 담양이 고향인 할머니는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에 이곳 진접으로 옮겨왔다. 워낙 없는 살림이라 고생도 많이 하고 살았다. 남의 집 밭도 부쳐 먹고, 직접 키운 채소를 장에 내다 팔기도 하면서 힘겹게 살아냈다.

“젊었을 때는 서울까지도 장사하러 갔었지. 집에서 키운 애호박을 서울 장 근처까지 버스가 실어다주면 머리에 이고 지고 장에 가서 팔았어. 그때 설움도 많이 받았지. 가게 하는 사람들이 자기 집앞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험한 소리 하고 쫓아내고 그랬거든. 그게 몇살 때더라? 이제 생각도 안 나. 생각하기도 싫어.”

올망졸망 달린 자식들 건사하느라 손이 부르트게 일하다보니 어느새 팔십이 넘어 있었다. 그 사이 남편도 먼저 보내고 친정오빠도 먼저 보냈다. 친정언니가 아직 고향에 살고 있지만 사느라 고단해서 고향에 가본 것이 언제 적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자식들 다 장성했으니 이제 그만 쉴 만도 하건만, 워낙 없이 살아서 자식들에게 남겨줄 게 없어 미안한 할머니는 차마 그럴 수 없다. 이렇게 장날이면 텃밭에서 거둔 채소라도 들고나와 용돈이라도 벌어야 마음이 편했다.

“나이 드니까 죽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기 전에 고향에는 한번 다녀오고 싶어. 엄마 아버지 산소도 있고 언니도 있고. 아들 차 타고 한번 다녀와야겠어.”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할머니는 내일 아침 식구들에게 먹일 밥에 넣을 밤 깎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손톱만큼 짧던 그림자가 옆으로 길게 늘어질 때까지 사각사각, 밤 까는 소리는 쉼 없이 이어졌다.

남양주=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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