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대회’? 그냥 잠깐 쉬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입력 : 202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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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이촌한강공원에서 열린 ‘멍 때리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멍 때리기를 하고 있다. 이 대회에선 가수 크러쉬가 우승해 눈길을 끌었다.

‘멍 때리기 대회’ 기획자 웁쓰양 

‘번아웃’ 겪다 멈춤의 소중함 깨달아

2014년 월요일 낮 도심서 첫 대회 상표권 등록하고 국제적 협업도

‘시간 낭비’ 아닌 새로운 가치 부여 불안감 없이 편히 쉬는 계기 됐으면

 

‘멍 때리기 대회’라고 들어는 봤나. 말 그대로 누가 멍 때리기를 잘하는지 한판 겨뤄보는 장이다. 이 대회는 2014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작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불가피하게 취소된 지난해를 제외하곤 매년 열렸다. 비주얼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멍 때리기 대회를 처음 기획한 ‘웁쓰양(예명)’으로부터 대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느 날 갑자기 번아웃(Burn Out, 갑자기 정신적·육체적 무기력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현상)이 왔어요. 작업을 해도 아무런 능률도 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일을 놓으면 죄책감 때문에 잠을 못 이뤘죠. 그러다 하루는 철저히 아무 일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제야 일이 손에 잡혔죠. 다른 사람들도 잠깐 자신의 삶을 멈추고 돌아보는 기회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웁쓰양이 멍 때리기 대회를 열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경주마처럼 달리던 일상에서 잠깐 쉼표를 찍기로 한 것. 대회를 결심하고 준비하는 데에만 1년이 꼬박 걸렸다. 첫 대회는 봄에 열 생각이었지만 2014년 봄,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모든 문화행사가 취소되고 국가적으로 침통한 분위기였다. 그해 가을이 돼서야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대회를 열 수 있었다.

“일부러 월요일 낮에 첫 대회를 개최했어요. 일주일 중 직장인이 가장 바쁠 때죠. 그럴 때 서울 중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이 있으면 오히려 극명한 대비를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회는 무려 90분 동안 진행된다. 평가 항목은 ‘기술점수’와 ‘예술점수’ 두 가지다. 기술점수는 10∼15분마다 심박수를 재는 것으로, 안정적이고 편안한 심박수를 가진 참가자가 고득점을 얻을 수 있다. 예술점수는 대회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멍 때리기를 가장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스티커를 붙여 평가한다.

“멍 때리는 걸 시간 낭비로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래서 대회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대회에는 배달기사·의사·기자·방송작가·국회의원 등 다양한 직업군이 참여한다. 서류심사 때 직업을 보고 골고루 선발하기 때문이다. 8년째 대회가 진행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참가자도 많다. 한 50대 남성 참가자는 죽은 아들을 대신해 대회에 참가했다. 만약 아들이 살아 있다면 멍 때리기 대회를 재미있게 참가했을 것 같아서 용기 내 지원서를 쓴 것이다. 또 일과 육아로 바쁜 일상을 탈출하고자 도전장을 던진 워킹맘이 막상 대회 당일엔 육아로 인해 참가하지 못하는 ‘웃픈(웃기면서 슬프다)’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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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쓰양은 2016년 멍 때리기 대회 때 상표권 등록을 마쳤다. 또 국내 개최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대회가 열릴 수 있도록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만·중국·네덜란드 등에서 국제 멍 때리기 대회를 열었고, 올해는 홍콩에서 비대면 멍 때리기 대회의 협업을 추진 중이다.

“멍 때리기 대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건 곧 우리 사회가 멍 때리기가 필요할 만큼 바쁘게 돌아간다는 걸 뜻하죠. 국내에선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가을쯤 대회를 열까 해요. 적어도 멍 때리기 대회에서만큼은 누구나 바쁜 일상을 잠시 잊고 불안감 없이 편하게 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간 전세계인이 동시에 멍 때릴 수 있는 ‘국제 멍 때리기 날’도 생기지 않을까요?”

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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