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명절에나 맛보던 귀한 생선 ○○…9월 가기 전에 ‘찜’하세요

입력 : 2022-08-31 00:00

[향토밥상] (14) 전남 영광 덕자찜

서해서만 잡히는 대형병어 ‘덕자’

6~9월 제철…알 배고 살 통통 

이름은 찜이지만 매콤달콤 조림

비린맛 없어 인기…회로도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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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의 향토음식 덕자찜. 이맘때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이 좋은데 몸길이 60㎝ 정도면 성인 4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영광=현진 기자

전남 영광에는 전국에 소문난 대도(大盜)가 있다. 그 정체는 나도 모르게 밥 한공기를 뚝딱 비우게 하는 밥도둑, 법성포 굴비다. 여기에 그에 못지않은 도둑이 또 있으니 ‘덕자’다.

덕자는 병어 가운데 몸집이 큰 병어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과거엔 전혀 다른 종으로 여겼는데 얼마전 과학적으로 병어와 같은 종인 것이 확인됐다. 시중에 유통되는 병어의 몸길이는 30㎝ 안팎. 그 가운데 50㎝ 넘는 것을 덕자 혹은 덕자병어라고 부른다. 서해안에서만 나는 생선으로 맛이 좋고 살이 실해 먹거리로 더할 나위 없지만 어획량이 많지 않아 산지인 영광·목포·함평 등지에서만 즐겨 먹었다. 최근에는 그 맛을 안 중국에서 잡히는 족족 수입해가니 그마저도 유통량이 많지 않다.

보통 생선 이름은 ‘어’ 혹은 ‘치’ 자 돌림이다. 덕자는 사람 이름과 비슷하다. 유래에 재미난 사연이 몇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렇다. 옛날 어느 어부가 생선을 잡고 보니 생전 처음 보는 놈이라 마을 이장에게 가서 물어보니 “자네 막내딸 덕자를 닮았군” 하는 말을 듣고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다. 조금 더 믿음이 가는 건 두번째다. ‘덕(德)’이란 한자는 ‘어진 마음’ 외에도 ‘크다’는 의미를 지닌다. 뜻을 풀이하자면 후자인 덕자라는 명칭에 수긍이 간다.

덕자가 영광의 향토음식으로 꼽히긴 하지만 누구나 흔히 즐겨 먹던 생선은 아니다. 값이 비싸 서민들이 맘 놓고 즐기기 어려웠다. 온가족이 모이는 명절 차례상 혹은 잔칫상에나 올라갔다. 지금도 4인이 먹을 만한 크기는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그래도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워낙 푸짐해서다.

지역민들은 주로 ‘덕자찜’을 먹는다. 이름은 찜이건만 조리법은 ‘조림’이다. 납작한 냄비에 감자를 담고 내장을 따 손질한 덕자를 올린 뒤 양념장을 넣어 졸인다. 영광읍에서 ‘올레식당’을 운영하는 박미옥 사장(53)은 “찜기에 올려 쪄내는 집도 있긴 한데 이곳 사람한테 덕자찜은 조림”이라면서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오던 게 지금껏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잘 졸여진 매콤달콤한 국물에 포슬포슬한 생선살을 찍어 먹으면 간이 딱 맞다. 살이 차지고 담백해 술술 밥이 들어간다. 단골손님이자 토박이 이현주씨(64)는 “비린맛 때문에 다른 생선은 싫어하는데 덕자는 없어서 못 먹는다”면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음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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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덕자회. 다진 마늘, 다진 청양고추를 섞은 된장에 찍어 먹으면풍미가 한층 더해진다.

덕자는 6월부터 9월이 제철이다. 이때 알을 배고 살이 통통히 오른다. 9월 중순이 지나면 퍼석해져 맛이 없다. 석달 동안만 맛볼 수 있는 별식이 바로 덕자회다. 병어는 뼈가 부드러워 뼈째 썰지만 덕자는 뼈가 억세 광어·우럭처럼 살만 발라 회를 뜬다. 특히 뱃살이 맛있다. 기름기가 적당히 끼어 버터처럼 부드럽다. 길게 썬 회는 된장에 찍어 먹는다. 간장 대신 다진 마늘과 다진 청양고추, 참기름을 듬뿍 섞은 집된장을 쓴다. 박 사장은 “전라도에선 회를 된장에 찍어 먹는다”며 “익숙지 않은 외지인에겐 고추냉이를 섞으라고 추천한다”고 귀띔했다.

또 한가지 팁이라면 깻잎에 싸 먹는 방법이다. 생깻잎도 좋고 장아찌도 좋다. 알싸한 깻잎 향과 바다 맛이 조화롭다.

영광에선 어느 백반집에 가도 젓갈 반찬을 곁들인다. 갯마을이라 질 좋은 해산물과 소금이 풍부해 자연히 젓갈류가 발달했다. 올레식당에선 요즘 밴댕이젓이 빠지지 않는다. 엄지손가락만 한 밴댕이를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린 반찬이다. 특유의 쿰쿰하고 비릿한 생선맛이 진하다. 처음 먹는 사람이라면 흠칫할 수 있는데 은근 중독성이 있어 계속 손이 간다. 깻잎에 밥 한술, 덕자찜과 밴댕이젓까지 올리면 그야말로 영광의 진미를 단번에 먹는 셈이다. 전문 식당이 아니라면 젓갈은 시기마다 주인장 취향마다 바뀌며 나오니 ‘어떤 것을 먹겠다’는 욕심보다는 ‘무엇을 먹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편이 좋다.

덕자회에 찜·젓갈까지 한상에 오르니 공기밥 하나로는 모자라다. 이 정도면 덕자 역시 몇번이고 반갑게 맞이하고 싶은 밥도둑이 아닐까.

영광=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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