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⑰] 제철 맞은 ‘가을 보약’ 호두 vs 잣

입력 : 2021-10-15 00:00

[맛대맛 ⑰] 호두 vs 잣

견과류가 정월대보름 심심풀이 간식용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제철을 맞은 호두와 잣이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다. 견과류는 그야말로 ‘가을 보약’이다. 특히 호두와 잣은 가을철 둔해진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폐와 기관지 건강을 지켜줘 건조한 날씨에 안성맞춤이다. 한번 입에 대면 자꾸 손이 가는 가을 대표 견과류 잣과 호두! 두 견과류의 주산지를 찾아 장점을 비교·분석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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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와작' 베어 무니 고소한 기름이 쭈욱~

충남 천안산 품질 명성 자자 경북 김천·전북 무주도 생산

잘 익은 햇호두 한알 씹어보니 첫맛 씁쓸…씹을수록 달아

불포화지방산 많아 뇌건강 도움 

 

‘호두’ 하면 충남 천안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호두과자’가 유명한 곳이지만 실제로 광덕면 일대에서는 질 좋은 호두가 많이 생산된다. 국내산 호두 맛을 제대로 느껴보고자 한창 호두 선별이 이뤄지는 광덕면의 한 농가를 찾았다.

“햇호두예요. 제일 큰 ‘특대’이니 깨서 드셔보세요.”

홍순필 천안명물호두생산자협회장이 기자에게 먹음직스러운 호두알 하나를 건넸다. 껍데기를 깨고 속에 든 알맹이를 입에 넣자 도무지 맛을 하나로 표현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쓴맛이 강한데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또 겉보기엔 바싹 마른 것 같지만 씹다보면 기름이 꿀처럼 쏟아진다. 느끼함은 전혀 없고 고소하고 담백한 기름기가 혀를 감싼다.

이렇게 맛있는 호두를 가까이하면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 호두의 알맹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의 뇌를 쏙 빼닮았다. 이런 이유로 뇌 건강에 좋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는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불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한 호두는 뇌신경 세포의 노화 방지, 기억력 증진, 알츠하이머와 치매 예방 등의 효과가 다양한 임상시험에서 입증됐다.

천안은 한반도 내 최초의 호두 재배지로 알려진 곳이다. 약 700년 전 고려 충렬왕 때 유청신이라는 사람이 원나라에서 호두 묘목과 열매를 가져왔는데 나무는 지금의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자기 집 앞마당에 뿌렸다고 한다.

시배지답게 천안에서는 330㏊(약 100만평)에서 120여농가가 연간 130t의 호두를 생산한다. ‘천안호두’는 임산물 지리적표시 제18호로 등록돼 있다. 품질이 우수한 호두를 키워내는 비결이 있을까. 홍 협회장은 물빠짐이 좋은 지형조건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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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면의 한 농가에서 호두를 크기별로 선별하고 있다.

“광덕산 주변 땅은 배수가 잘돼 호두가 잘 자란답니다. 특히 이 지역 호두는 껍데기가 얇고 알이 충실하죠. 다른 지역 호두보다 영양성분도 풍부해 생산자로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호두는 천안 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재배된다. 경북 김천과 전북 무주에서는 시배지인 천안보다 더 많은 양의 호두가 생산돼 주산지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최고 품질의 국내산 호두를 맛보려면 가격 부담은 감수해야 한다. 알호두는 1㎏당 2만2000원선, 깐호두는 8만원선에 거래된다. 호두의 딱딱한 껍데기를 하나하나 펜치로 까기 때문에 깐호두는 가격이 만만찮다.


[호두별미] 호두 별미 오징어 먹물 품은 ‘호두먹빵’…고급스런 향기 ‘호두기름’

천안시청 본관 1층 ‘천안명물호두과자점’에서 판매하는 호두과자. 모든 재료가 천안산이다.
호두먹빵

호두 주산지에서 꼭 맛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호두과자다. 다만 ‘천안호두’를 쓴 호두과자를 맛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국내산이 상대적으로 비싸 미국산 호두를 사용하는 업체가 많은 탓이다.

하지만 천안시청 1층 본관에 있는 ‘천안명물 호두과자점’에서는 앙금과 밀가루만 아니라 호두까지 모두 천안산인 호두과자를 맛볼 수 있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9시가 되면 갓 구워낸 따끈따끈한 호두과자 향이 식욕을 돋운다. 다소 투박한 식감의 우리밀, 단맛을 20% 이상 줄인 검붉은 앙금이 건강한 맛을 전한다. 알알이 박혀 따라올 수 없는 고소함을 더하는 천안산 호두는 명품과자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경북 김천에서는 김천호두와 오징어 먹물이 들어간 ‘호두먹빵’이 대세다. 크기도 주먹만 한 데다 모양과 색이 다양해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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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지 건강에 좋은 호두기름

호두기름은 호두를 간편하게 먹는 방법이다. 아침 공복에 한숟갈 정도 섭취하면 폐를 보호하고 당뇨와 같은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

호두가 들어간 육포도 주전부리용으로 그만이다. 육포의 담백함과 호두의 고소함이 조화를 이뤄 입에 딱 달라붙는다. 국내산 호두로 만든 육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천안=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

 

강원 홍천에서 올해 수확한 햇잣이 큼지막한 잣송이 사이에 놓여 있다.

[잣] 잇새로 녹아드는 은은한 향에 푹~

강원 홍천·경기 가평이 주산지

장대 들고 30m 높이까지 올라가 여린 나뭇가지 의지해 수확작업

송나라 의학서엔 ‘신선의 열매’ 기록 피부 빛나게 하고 철분 보충 약효

 

송나라 의학서적인 <성혜방>에는 “100일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300일 먹으면 하루 500리를 걷게 되며 오래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잣의 효능이 기록돼 있다.

잣은 동북아시아의 한대 지역에서 주로 나는 임산물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난 잣의 뛰어난 맛과 영양은 예로부터 알아줬다.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불포화지방산뿐 아니라 철분도 풍부해 기를 보하고 피를 생성하는 약효까지 있기 때문이다. 명나라 약학서인 <본초강목>은 한국산 잣을 ‘신라송자(新羅松子)’라고 일컬었을 정도였으며, 이에 당나라로 유학 간 신라 사람들은 잣을 팔아 학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귀하신 몸인 잣이 바야흐로 제철이다. 국내 잣 주산지는 경기 가평과 강원 홍천 등이다. 특히 가평잣과 홍천잣은 각각 임산물 지리적표시 제25호·제26호로 등록됐으며, 2019년 기준 생산량 1109t 중 61%가 이 지역에서 나왔다.

강원 홍천군산림조합의 윤승희 생산판매과장은 “몇년간 잣 작황이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다행히 알이 차고 맛도 좋다”고 설명했다.
 

얇은 피가 남은 황잣과 껍질을 완전히 벗긴 백잣.

은은한 향과 함께 잇새로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잣. 그러나 제철이라 해도 잣을 많이 먹기는 쉽지 않다. 최상품 잣의 소비자가격이 1㎏당 10만원에 이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가격에도 다 이유가 있는 게, 잣을 따는 것 자체가 워낙 극한작업이라서다. 윤 과장은 “잣을 따려면 아파트 8층 높이인 30m의 잣나무 꼭대기까지 사람이 장대를 들고 직접 올라가야 한다”며 “올라가서는 성인 여자 팔뚝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잣나무 가지에 몸을 지탱해야 하니, 가지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추락하는 것”이라고 위험성을 설명했다.

이에 1990년 무렵엔 동남아시아의 원숭이가 야자를 따는 것에 착안해 경기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서 원숭이를 데려와 잣송이를 따도록 조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원숭이는 잣나무에서 나오는 끈끈한 송진이 털에 묻는 걸 싫어해 실패했다고 한다.

잣 알맹이를 분리해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잣송이에서 두툼한 껍데기에 둘러싸인 피잣을 분리하고, 이걸 땅콩 같은 얇은 막이 있는 황잣, 다음엔 뽀얀 백잣으로 단계적으로 탈각한다. 예전엔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작업했지만 다행히 요즘엔 기계가 나와 공정이 대폭 줄었다.

목숨을 걸고 얻는 ‘신선의 열매’ 잣. 누군가의 노고에 감사하며 한알 한알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잣 별미] 두부·엿·막걸리부터  풍미 작렬 ‘잣국수’까지

경기 가평에서 맛볼 수 있는 ‘잣국수’. 가평·홍천=김병진 기자
가평의 특산물인 ‘가평잣 생막걸리’. 사진출처=우리술

경기 가평에선 잣을 활용한 다양한 식도락을 경험할 수 있다. 잣백숙·잣두부·잣묵밥·잣엿·잣막걸리 등 잣이 들어간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 많다. 그중 경기 가평군 설악면에 위치한 ‘유명산 종점가든’은 진한 잣국물의 ‘잣국수’를 파는 집이다. 미식가로 알려진 연예인 이영자가 한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후 이 집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20여년째 잣국수를 만들고 있는 주인장 정혜숙씨는 “국물에 100% 가평산 잣을 갈아 넣고 면 반죽에도 잣을 넣어 더욱 감칠맛이 난다”고 말했다. 잣국수는 언뜻 콩국수처럼 보이지만 한술 들이켜면 특유의 향과 함께 고소한 풍미의 잣국물이 부드럽게 목울대를 넘어가는 게 일품이다. 담백한 맛의 잣과 기분 좋은 청량감이 어우러진 <가평잣 생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이는 것도 좋다.

파스타 소스나 빵에 발라 먹을 때 맛있는 ‘바질페스토’에도 잣이 들어간다. 향신채인 바질과 마늘에 올리브유와 잣을 넣고 갈아낸 소스로 만들기도 어렵지 않다. 이외 제과제빵을 할 때 특유의 향취가 좋은 잣가루를 써 빵의 풍미를 돋우기도 하니 참고하자.

가평·홍천=이연경 기자 worl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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