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⑭] 투둑투둑 비오는 날 ‘전’하세요

입력 : 2021-09-03 00:00 수정 : 2021-09-16 17:41

재료 흔하고 집에서 만들어 먹기 쉬워

우열 가리기 어려워 ‘반반전’ 나오기도

 

[맛대맛] ⑭ 파전 vs 김치전

빗방울이 땅을 ‘타닥타닥’ 때릴 때 생각나는 조합이 바로 전과 막걸리다. 전의 종류야 많지만, 그중에서도 넓적한 파전과 김치전은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데다 맛도 좋고 푸짐해 비가 오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전이다. 길어지는 가을장마에 기름진 전이 당기는 독자들을 위해 파전과 김치전의 대결을 준비했다.


은은한 파 단맛 어우러진 고소 ‘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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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공덕동 전골목에서 주문한 파전. 단맛이 나는 파뿐만 아니라, 오징어와 홍합 등 해물도 가득하다.

조선 동래부사가 임금께 올리던 음식

항산화 물질 포함 … 영양학적 균형 좋아



매콤 아삭 김치가 씹히는 촉촉 ‘김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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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접시에 한가득 담긴 매콤한 김치전. 김치전 속 잘 익은 신김치가 입맛을 돋운다.

1900년대 이후 문헌서 조리법 소개

항암물질·유산균 풍부 … 지구촌 관심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전골목에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와 함께 전 부치는 소리가 허기를 자극한다. 불판 위에선 파전이 익어가고, 소쿠리에 담아 한김 식힌 김치전·감자전·빈대떡 등 갖가지 전들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회색빛인 하늘과 달리 골목에 모인 사람들의 볼은 취기로 발그레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 분위기가 침울한 요즘이지만, 전 부치는 냄새에 사람들 웃음소리까지 들리니 전집만큼은 꼭 잔칫집 같다.

‘전(煎)’은 고기·생선·채소 등 다양한 식재료에 쌀가루나 밀가루, 달걀옷을 입힌 다음 기름을 두른 번철에 지져낸 것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전이란 이름은 궁중음식 ‘전유화(煎油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전유화가 ‘전유어’ ‘전야’로 변했다가 ‘전’이 됐다는 얘기다.

전 중에서도 파전과 김치전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우선 파전의 유래를 이야기하려면 부산의 명물 ‘동래파전’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동래부사가 삼짇날(음력 3월3일) 임금에게 진상한 귀한 음식이었던 동래파전은 1930년대 부산 동래시장 인근의 ‘진주관’이라는 요릿집에서 손님 주안상에 나오며 인기를 끌었다. 이것이 동래장터로 퍼져 나갔고 장돌뱅이의 입을 따라 전국으로 확산했다.

반면 김치전의 유래나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1900년대 이후 문헌에 조리법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1952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방신영이 쓴 책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에선 ‘통김치를 죽죽 쪼개놓고 밀가루에 달걀을 풀어서 쪼개놓은 김치를 넣고 무친 뒤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조금씩 집어서 지지는 것’이라고 김치전을 설명해놨으니, 지금과 만드는 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양학적으로는 어떨까? 비타민C뿐 아니라 퀘세틴이라는 항산화 물질까지 다량 함유한 파가 듬뿍 든 파전은 어떤 재료를 곁들이느냐에 따라 단백질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어 영양학적으로 균형이 좋은 음식이다. 김치전은 각종 영양성분이 풍부한 마늘·고추로 만든 양념에 유산균까지 들어 있는 김치가 주재료다보니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말, 영국 임페리얼대학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10대 항암 요리 레시피를 공개했는데 이 중 하나가 김치전이었다. 이들이 발표한 ‘슈퍼 김치전’ 레시피에는 전통적 김치전 재료에다 2∼12가지 항암물질을 함유한 허브 등이 추가됐다.

맛도 좋고 영양학적으로도 좋지만, 사실 파전과 김치전의 독보적인 대중성은 집에서 만들기 쉽다는 데 있다. 여러 재료를 준비하느라 번잡스러울 것 없이 파나 김치를 밀가루 반죽에 넣고 부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재료도 구하기 쉽다. 파는 한국 음식에 많이 쓰이는 향신채고, 김치는 어느 집이든 냉장고에 있다.

이처럼 친근한 음식인지라 “파전과 김치전 중에 뭘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단번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곤란한 사람들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오죽하면 요즘엔 파전과 김치전을 반반 부친 ‘반반전’을 파는 곳들이 생겨났다.

촉촉이 잘 익은 파가 은은한 단맛을 내는 고소한 파전과, 짭짤하고 매콤한 맛에 더해 아삭아삭 씹는 재미가 있는 김치전. 서로 다른 매력이 있지만, 번갈아 한점씩 맛보면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혹시 비가 오면 전이 당기는 이유를 아시는지? 비가 오면 높은 습도와 저기압으로 인해 인체 내 혈당치가 떨어지기 쉬운데, 전 속 탄수화물이 이를 보충해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또 비 내리는 소리가 전 부치는 소리를 연상시켜 반사적으로 입맛이 동하게 한다는 심리학적 분석도 있다. 일명 ‘파블로프의 개(밥을 주기 전 매번 종소리를 들려주면 나중엔 개가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된다는 실험 결과)’로 알려진 원리다.

과학적·심리학적 이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비 오는 날 전이 먹고 싶어지는 진짜 이유는 ‘감성’ 때문이 아닐까.

비 오던 여름날, 불 앞과 식탁을 분주히 오가며 갓 부친 전을 커다란 접시에 턱턱 얹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 갓 구운 전의 바삭바삭한 끄트머리만 골라 먹고 눅눅해진 가운데 부분은 동생에게 슬쩍 밀어 ‘양보’하다가 결국 투닥거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이내 이어진 어머니의 호통 소리가 잦아들면 다시 귓가에 조용히 들려오던 빗소리. 비에 축축해진 마음이 어느새 보송보송해졌던, 그날들의 추억이 주는 감성 말이다.

이연경 기자 world@nongmin.com

사진=김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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