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변천사] 1970년대 고급 수입과일 대명사…국내산은 이유식 재료로도 활용

입력 : 2021-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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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한 과일가게에서 제주산 바나나를 팔고 있다. 사진=농민신문DB

외국산에서 국내산까지…바나나 변천사

자장면 200원, 16개 한송이 5500원 1991년 수입 자유화로 농가 시련 시작

2019년 기준 재배면적 28㏊로 늘어

 

지금은 흔하디흔한 먹거리가 됐지만 1980년대 후반 기자의 유년시절만 하더라도 바나나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황금빛 과일이 뽐내는 유려한 곡선미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어머니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흐릿한 기억으로는 노점상인이 제주산 바나나 1개를 1000원에 팔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수십년 전 바나나는 고급 과일의 대명사였다. 1977년 4월21일자 한 신문에서는 수입 바나나 16개 한송이가 5500원에 거래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200원 정도였던 자장면보다 바나나 한개(343원) 값이 더 비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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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바나나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1952년 7월16일자 기사에는 상공부가 구상무역으로 사과를 수출하는 대신 바나나를 수입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또 제주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1981년부터 제주에서 상업적인 성격을 띤 바나나농사가 시작됐다.

1991년은 제주산 바나나의 시련이 시작된 해다. 바나나가 수입자유화 품목으로 지정되면서 외국산 바나나가 물밀듯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같은 해 한 신문의 2월10일자 기사에는 ‘대만·필리핀산 바나나 전면 수입으로 1600여개 제주도 바나나농가 전멸’이라는 비극적인 소제목이 달렸다.

외국산 바나나의 위세는 여전하다. 바나나는 수입 과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주산지인 필리핀 등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공장을 임시로 폐쇄하는 등의 조치가 내려지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2017년 43만7380t이었던 수입물량은 2020년 35만1994t으로 급감했다. 반면 국내 바나나 재배면적은 제주·전남·경남 등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2017년 7.6㏊에서 2019년 28㏊로 2년 새 3.7배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산 바나나로 이유식을 만드는 업체가 생겨났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는 ‘엄마’ 소비자가 믿을 만한 국산 농산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빌더버그’라는 이름의 이 업체는 국내산 과일만 쓴 여러 종의 퓌레를 내놨는데 이 가운데 사과와 바나나를 8대 2로 섞은 제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출시한 지 3개월밖에 안됐지만 주문량이 계속 늘어 경남 진주 농가로부터 사들이는 바나나가 월평균 400∼500㎏에 이른다. 전성재 빌더버그 대표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를 쓰면 그 가치를 알아줄 고객이 생긴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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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과일로만 퓌레를 만드는 ‘빌더버그’ 전성재 대표가 사과와 바나나를 8:2로 섞어 만든 제품을 보여주고 있다. 김병진 기자

국산과 외국산 바나나의 장단점은 확연하다. 바나나는 보통 수확 후 4∼5일 후숙기를 거쳐야 하는데 다국적기업은 경기 이천·평택, 충북 음성 등에 대규모 후숙저장고를 세워놓고 표준화·규격화된 바나나를 기성품처럼 쏟아낸다.

대부분 친환경으로 재배되는 국내산 바나나는 식품 안전성에서 단연 앞선다. 또 외국산은 선적 기간이 길게는 4주 이상인데 국내산은 배송 기간이 하루면 충분하기에 신선함을 비교할 수 없다.

유통업계에서도 국산 바나나의 잠재성을 인정한다. 기업 등의 급식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삼성웰스토리의 강야곱 과일 구매담당자(MD)는 “급식 식단에 국내산 바나나를 넣고 싶어도 바나나를 대량으로 꾸준히 대줄 만한 곳이 없는 게 문제”라며 “농가를 규합해 다국적기업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유통망을 구축한다면 우리 바나나가 비상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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