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미하고 찬미하라, 세종 복숭아와인

입력 : 2020-04-29 00:00 수정 : 2020-04-30 23:56

와이너리 기행 (5)세종 ‘금이산농원’

지역농가 생산한 고품질 복숭아 폐기 안타까워 와인으로 제조

특유의 맛·향 그대로 담겨 인기 기분 좋은 떫은맛·신맛 뒤따라와

2주에 걸친 ‘저온 발효’가 비결 환경·원료 상태 따라 온도 조절

꼼꼼한 습도 관리로 잡균도 막아 오가피열매 와인도 개성만점
 

세종 ‘금이산농원’에서 출시한 복숭아·오가피 와인.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게 복숭아다. 파릇한 채소와 함께 샐러드로, 오븐에 구워서 파이로, 달달하게 잼으로. 물론 깨끗하게 씻어서 한입 크게 베어 문 복숭아가 가장 맛있지만 말이다. 맛없기가 더 힘든 과일이지만 복숭아로 만든 와인만은 낯설다. 어떤 맛일지, 어떤 향일지, 명불허전이라고 물어보나 마나 맛있을지,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와이너리 금이산농원으로 답을 찾아 떠났다.


 

노란빛을 엷게 띤 복숭아 와인. 코끝에 가져가면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쪼르륵, 기다란 목을 지나 병을 떠난 와인이 잔에 떨어진다. 알아보기 힘들 만큼 엷은 노란빛을 띤 와인은 모든 빛을 투과시키며 청량하게 빛난다. 저 맑은 액체에 맛이라는 것이 깃들어 있기는 한 걸까. 혹 향이나 맛이 깃털만큼 가벼워 느끼기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며 잔 가까이 코끝을 가져가니 은은한 복숭아향이 부드럽게 퍼진다. 살짝 눈 감으니 복숭아밭 옆을 막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얼른 눈을 뜨고 맛봐야겠다. 한입 가득 머금으니 훨씬 짙어진 복숭아향이 물씬 풍겨온다. 달달함도 함께 쫓아온다. 복숭아다. 이 투명한 액체 어디에 복숭아가 숨겨져 있었나, 감탄하며 혀로 천천히 굴려 목구멍으로 넘기자 기분 좋은 떫은맛과 미세한 신맛이 뒤를 잇는다. 복숭아맛과 향을 그대로 재현한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 와인을 마시는 모든 이들이 복숭아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김영기 대표의 바람 그대로다.

 

김영기 대표(왼쪽)와 최정욱 소믈리에.


‘정석’이라 쓰고 ‘정성’이라 읽는다

와인에 복숭아를 잘 가두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가장 중요한 두가지는 온도와 습도라는 것이 최정욱 소믈리에의 설명이다. 온도는 향과 연관된다. 와인에 풍부한 복숭아향을 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시켜야 한다. 문제는 온도가 너무 낮으면 발효가 멈춰버린다는 것. 향을 충분히 이끌어내면서 발효도 지속될 수 있는 최적 온도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김 대표가 선택한 온도는 18℃. 2주간 발효시키면 복숭아향이 온전히 와인 속에 갇힌다.

“처음부터 18℃에서 발효를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효모가 활동을 멈춰서 발효가 안될 수도 있거든요. 복숭아에 효모를 넣고 20℃에서 하루 정도 두면 발효가 활발해지고 안정적이 되죠. 그러면 그때 18℃로 맞춰진 저장고로 옮겨서 2주간 발효를 계속하는 거죠.”

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온도 관리가 김 대표의 비법인 것은 발효기간 내내 매 순간 발휘되는 그의 감각 때문이다. 설비 온도를 20℃나 18℃에 맞춰두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료 상태, 주변 환경 등에 따라 온도를 달리해준다. 예를 들면 복숭아 품온이 상온보다 낮을 때는 발효온도를 기준보다 높여서 온도 균형을 맞춰주는 식이다. 원료에 대한 이해와 부지런함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결과다.

습도는 균과 연관된다. 발효가 끝난 뒤 숙성에 들어간 시기에 잡균에 노출되면 와인에서는 나쁜 향이 나게 된다. 품질 좋은 와인을 얻으려면 습도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습기가 많으면 잡균이 생기는 건 순간이에요. 그래서 아예 저장고에서는 물청소를 하지 않아요. 호스로 물을 뿜어내며 청소하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그만큼 습도 관리가 어려워지거든요. 매일 손으로 직접 걸레질을 하는 건 그래서예요.”

와인 만들기에서 온도와 습도 관리는 ‘정석’이지만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아서인지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도를 체크하고 습도를 관리하는 그의 모습을 ‘정성’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정성 덕분에 복숭아맛과 향이 온전히 살아 있는 와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금이산농원에서 자랑하는 또 하나의 와인은 오가피와인이다. 소주에 담가 만든 오가피주가 아닌 오가피열매를 발효해 만든 오가피와인이다. 지금은 복숭아와인이 금이산농원의 대표 상품이지만 사실 이곳에서 처음 만들었던 것은 오가피와인이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처음 만든 것이 오가피와인이에요. ‘이걸 잘 만들면 내 인생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면서 만들었죠.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흘려들었는데 해를 넘기고 봄이 됐는데 향긋한 술 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게 금이산농원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김 대표의 딸 천영옥씨의 기억이다. 제법 맛있었던 아버지의 오가피와인 덕에 엄마 김 대표와 딸까지 와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오가피와인을 완성했다. 진한 자주색을 띠며 단맛과 떫은맛, 약간의 신맛이 어우러진 데다 오가피 특유의 목질향이 섞여 있는 오가피와인은 최 소믈리에가 “프랑스 내륙에서 일부러 산화시켜서 만드는 레드와인과 닮았다”고 평할 만큼 독특하다.

와인 재료가 오가피에서 복숭아로 확대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 널린 게 복숭아였던 덕분이다.

“여기는 예전 조치원이에요. 복숭아로 유명한 곳인데 농가들이 복숭아를 시장에 파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하더라고요. 그런데 복숭아는 저장성이 없어서 제때 못 팔면 다 버려야 하거든요. 멀쩡한 것들을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워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웃들이 팔다 남은 복숭아를 가져다 만들던 것이 이제는 한해 18t을 만들 만큼 규모가 커졌지만 김 대표는 지역 내 복숭아만 사용한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와인 팔아서 갑부가 될 것도 아닌데 내 고장 복숭아로만 만든 와인이라는 자긍심을 지키고 싶어서다. 최근에는 아들까지 가세해 온 가족이 좋은 와인 만들기에 ‘올인’ 하고 있는 금이산농원. 요 몇년 새 와인이 없어서 못 팔 만큼 소비자 사랑도 듬뿍 받았으니 아버지의 희망 같은 예감이 현실이 된 셈이다.



세종=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montes@nongmin.com

취재협조=최정욱와인연구소(제이엠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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