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 장하다…장 가르기

입력 : 2020-04-24 00:00 수정 : 2020-04-25 23:50

[제철 살림살이] 장 가르기

장독에 메주·소금물 등 넣어 베란다에서 60여일간 숙성

뚜껑 열어보니 유익균인 ‘장꽃’ 활짝 건조·단단했던 메주 ‘흐슬부슬’ 변해

충분히 으깬 뒤 간장 2~3국자 첨가 씹을수록 고소한 햇된장 완성

다른 장독에 옮겨 담아 묵혀 메주 품었던 소금물은 간장으로 분리

 

장 담그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정월(올해 1월25일~2월22일)에 장을 담근 지 60일이 훌쩍 넘었다(본지 2020년 2월 19일자 10면 보도). 그동안 메주를 품었던 소금물은 간장으로, 메주는 된장으로 숙성됐다. 함께 익어가던 간장과 된장을 분리해내는 작업, ‘장 가르기’를 할 때란 얘기다. 기자가 직접 장 가르기를 해봤다. 갓 담근 햇된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요리도 알아봤다.

 

 

① 장독 안에 하얗고 노란 ‘장꽃’이 피었다. 장이 잘 익고 있단 뜻이니 봄꽃만큼 반가운 꽃이다. ② 메주를 꺼내 치대는 모습. ③ 장물에 둥둥 떠 있는 장꽃을 건져냈다. ④ 장 가르기를 마치고 작은 장독 2개에 된장과 간장을 담았다.


장 가르는 날, 69일 내내 베란다에서 햇볕과 비바람을 맞으며 견뎌낸 장독을 안에 들였다. 그동안 볕 좋은 날 잠깐씩 장독 뚜껑을 열어주긴 했지만, 장독 안을 자세히 들여다본 건 장을 담근 이후 처음이었다. 이물질이 들어가지 못하게 망으로 장독 입구를 꽁꽁 감쌌던 터라 장독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망을 들춰내자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감돌았다. 메주가 소금물에 동동 뜨지 않도록 넣어둔 대나무 김발 위에는 하얗고 노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이를 ‘장꽃’이라 부른다. 지상에서 봄꽃이 필 동안 장독 안에선 장꽃이 활짝 피었다. 장꽃은 메주를 발효할 때 피는 곰팡이와 같은 몸에 좋은 유익균이다. 장꽃으로 뒤덮인 대나무 김발과 숯·건고추를 빼내자 갈색빛이 감도는 장물에 잠긴 메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삼베주머니 안에 메주를 담아놓은 덕에 수월하게 메주를 꺼낼 수 있었다. 장독에 넣을 땐 메마르고 단단했던 메주가 이날은 힘없이 부서졌다. 메주가 제대로 숙성됐단 신호다. 메주를 통으로 옮긴 다음 팔에 온몸의 체중을 실어 손으로 부수고 으깨기 시작했다. 적당히 되직해지자 간장을 2~3국자 넣었다. 이때 고추씨가루와 메줏가루를 넣어주기도 하는데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남 함평메주마을에선 간장과 소금만 첨가한다.

메주를 치대는 손가락 사이로 고운 연한 황토색 햇된장이 나왔다. 구수한 향을 내뿜는 된장을 살짝 맛보니 짭조름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했다. 으깬 된장을 다른 장독으로 옮긴 다음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게 꾹꾹 눌러뒀다. 된장은 또다시 인고의 시간을 거쳐 깊은맛을 내게 될 것이다. 이제 된장이 숙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시기별로 된장을 찬찬히 맛보면 된다. 직접 장을 담그는 이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국자로 장물에 둥둥 뜬 장꽃을 제거하고 면포로 또다시 걸러내니 맑은 간장이 나왔다. 아직 색이 진하진 않지만 누가 봐도 간장이다. 간장은 익을수록 맛을 낸다고 했던가. 살짝 맛보니 아직 숙성이 덜 된 터라 소금물맛이 강하게 났다. 그래도 메주향을 가볍게 맡을 수 있었다. 간장은 숙성하기 전에 80℃ 정도에서 은근히 달인 후 식히기도 한다.

같은 메주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장맛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장 담그는 시기에 따라, 장독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메주를 얼마나 치대느냐에 따라 장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날 장 가르기를 거쳐 수확한 된장과 간장도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장일 테다.

김민지, 사진=김도웅 기자 vivi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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