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채소] 찰나의 맛, 봄기운 잔뜩 머금은 ‘죽순’

입력 : 2019-04-15 00:00 수정 : 2019-04-15 23:55

봄비 오고 나면 젖은 땅 뚫고 자라나

5월말부터 약 한달 동안이 수확 적기

땅 위로 보이는 것보다 두배나 커 껍질 벗기면 연한 노란빛 속살 드러내

삶아 먹으면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

섬유소·단백질·비타민 등 풍부 장 건강에 좋고 피로해소도 도와
 


꽃이 봄을 눈으로 느끼게 해주는 전령이라면 입으로 봄을 느끼게 하는 전령도 있다. 순채소다. 매서운 겨울바람의 기세에 눌려 나무에 딱 붙어 있던 잎눈이 살랑살랑 봄바람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한껏 기지개를 켜며 온몸을 부풀리는 게다. 겨울 동안 눌러왔던 기운을 맘껏 펼칠 셈인지 자고 일어나보면 쑥, 잠깐 한눈팔다 다시 보면 또 쑥 자라나는 것이 이녀석들이다. 톡 따다가 입에 넣으면 쌉쌀한 향이 입안에 퍼지는 것이 딱 봄맛이다. 게다가 땅을 뚫고 올라온 기운을 가득 품고 있으니 나른한 봄을 이기는 데 순채소보다 좋은 게 없을 터. 이 봄이 지나가면 금세 독해지고 세져서 먹을 수 없을 테니 ‘봄 한정판’ 순채소, 서둘러 맛보자.

 


봄비가 내렸다. 제법 거센 바람과 함께 온 봄비가 밤새 그치고 파란 하늘이 열리자 경남 거제의 농부 옥무근씨(60)는 장화 신고 괭이 들고 뒷산 대나무밭으로 향했다. 죽순을 캐러 가는 길이다. 옥씨는 거제의 특산물인 맹종죽이라는 대나무농사를 짓는 농부다.

“우후죽순이라고 들어봤지요? 봄에 비가 오고 나면 죽순이 쑥 올라옵니다. 하룻밤에 수십센티미터, 지 몸의 두배 세배씩 커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서둘러 캐러 안 가면 너무 많이 자라서 못 캔다 아닙니까.”

대나무밭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땅을 뚫고 올라온 죽순이 보인다. 여기 하나 저기 둘 저 안쪽에 셋, 금세 숫자 세기를 포기해야 할 만큼 사방이 죽순 천지다. 어떤 놈은 초록색 싹이 겨우 보일 만큼 작은가 하면 또 어떤 놈은 원뿔 형태가 확연하고 밑동은 벌써 남자 어른 팔뚝만큼 굵어져 있기도 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대나무밭 땅속에는 대나무 줄기가 그물처럼 퍼져 있다고 했다. 그 줄기의 마디마디에 눈이 붙어 있는데 봄이 되면 그 눈 중에서 기운 센 녀석들이 자라서 땅을 뚫고 올라온단다. 그게 죽순이다. 이즈음 올라오기 시작한 죽순은 5월말, 대나무 종류와 지역에 따라 6월까지만 수확할 수 있다. 그 시기가 지나면 순이 세져서 먹을 수가 없다.


밑동이 다치지 않도록 죽순 주변의 흙을 살살 파낸 뒤 괭이로 밑동을 찍어서 들어올리면 ‘쑥’ 하고 죽순이 따라 올라온다. 땅 위로 보이던 크기의 두배다. 죽순은 검은색에 가까운 두꺼운 껍질을 다 벗겨내고 연한 노란빛을 띠는 부드러운 속살만을 먹는다. 다 손질하고 나니 어른 팔뚝만 하던 죽순이 아기 팔뚝만 해졌다.

“껍질을 벗기고 밑동의 센 부분도 잘라내고 남은 부드러운 쪽만 씁니다. 아린 맛이 있어서 생으로 먹지 않고 삶아서 먹는데,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이 좋지요. 대개 우리 같은 농가에서 손질해 삶아 판매해요.”

농부는 어제도 마당 한쪽에 만들어놓은 화덕에 가마솥 걸어놓고 장작불에 죽순을 삶았다. 오늘도 내일도, 이 봄이 다 갈 때까지 죽순 캐서 손질하고 삶는 일을 계속할 터였다.

“나 어릴 때는 죽순이 귀했어요. 다 팔고 잘라내고 남은 밑동이나 못 파는 것만 먹었지. 봄만 되면 어머니가 그런 죽순 가져다가 돼지고기 썰어넣고 두루치기를 해주셨어. 지금도 많이 해먹어요. 된장찌개나 생선매운탕에 넣어도 좋고. 호남 사람들은 들깨 넣고 볶아 먹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죽순은 수분이 90%이고 열량이 100g당 13밖에 안되는 대표적인 다이어트 식품이라는 것, 섬유소가 풍부해 장을 건강하게 해주고 변비에 좋다는 것, 단백질·비타민·칼륨 등이 많아 피로해소와 원기회복에 좋다는 것 등 죽순의 효능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어서 말할 필요도 없다는 농부. 캔제품의 중국산이 판을 치면서 제철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지만 그래도 봄이 되면 이 봄에만 맛볼 수 있는 신선한 죽순을 꼭 맛보라고 말했다. 

거제=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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