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차] 세월을 담는 차(茶), 건강을 주는 차

입력 : 2019-02-11 00:00 수정 : 2019-02-11 23:43

발효차의 고장, 경남 하동을 가다

잭살차, 찻잎 발효해 만든 홍차의 일종 말리면서 산화돼 찻잎 갈색으로 바뀌어

백인백색 발효차, 쓴맛·떫은맛 사라지고 꽃향·꿀향 등 살아나…시간 따라 향 변해

만드는 사람마다 맛·향 달라지는 게 매력
 


발효차라고 하면 흔히 홍차나 보이차를 떠올린다. 그래서 발효차는 외국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발효차가 있다. 경남 하동의 잭살차나 전남 장흥의 청태전 같은 것들이다. 차문화가 녹차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맥이 끊겼을 뿐 우리 조상들도 발효차를 즐겨 마셨다. 최근 들어 하동이나 전남 보성 등 차 주산지를 중심으로 이 발효차가 되살아나고 있다. 입춘은 지났지만 미세먼지에 이른 황사까지 겹친 아직은 추운 겨울, 벗 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을 터.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멋이 있는 우리의 발효차를 만나보자. 

우리 발효차 이야기를 하기에 경남 하동보다 적절한 곳은 없다. 워낙 차 주산지로 유명한 데다 이름 높은 다원이나 제다 명인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잭살차라는 전통 발효차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고장이어서다. 잭살차는 작설차의 하동 방언이라고 한다. 하지만 깊이 뜯어보면 잭살차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작설차와는 다른 차다. ‘참새 작(雀)’ ‘혀 설(舌)’, 말 그대로 찻잎이 참새의 혀끝만 할 때 따서 만든 차라는 뜻의 작설차는, 일반적으로 곡우 즈음 어리고 연한 찻잎으로만 만든 고급 녹차를 가리킨다. 그에 비해 하동의 잭살차는 크기와 관계없이 찻잎을 따다 발효시켜서 만든 발효차다. 찻잎을 시들게 한 뒤 비벼서 그늘이나 아랫목에서 발효·건조시킨 것이다. 이 잭살차를 계승해 만든 발효차로 세계명차품평대회·하동야생차문화축제 등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국내 발효차의 명성 회복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이수운 무애산방 대표다.

“잭살차는 그 제조공정으로 봤을 때 발효차인 홍차에 해당하죠. 차에 있어서 발효는 대개 찻잎에 있는 폴리페놀과 폴리페놀 산화효소가 산소와 만나 산화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이차처럼 산화 이후 미생물 발효가 되는 후발효차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산화·숙성을 거친 홍차나 백차 등을 발효차라고 하죠.”

하동군 악양면이 고향인 이 대표는 어렸을 때 동네 할머니들이 “잭살하러 간다”고 하는 말을 흔하게 듣고 자랐다. 찻잎 따러 간다는 뜻이었다. 집집마다 할머니들은 잭살을 해다가 비비고 말려서 차를 만들었다.

“말리는 과정에서 산화가 함께 일어나서 찻잎이 갈색으로 변해요. 누가 감기 걸렸다 그러면 잘 마른 잭살 한움큼 넣고 끓여서 약처럼 마시곤 했죠. 저희 할머니도 봄에 잭살을 만들어두셨다가 손자들이 겨울에 감기에 걸리면 차로 끓여주시곤 했어요.”

한때 녹차 붐에 밀려서 사라지는 듯했던 하동의 발효차 전통이 다시 살아난 것은 약 10여년 전부터다. 녹차 소비가 줄어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자 그 돌파구로 발효차를 선택한 것이다.

“하동뿐 아니라 보성에서도 발효차를 많이 생산하고 있어요. 주로 홍차인데, 만드는 사람마다 제조법이 조금씩 달라서 그 맛과 향도 제각각이에요. 발효차가 가진 매력이죠.”

백인백색인 발효차는 쓴맛과 떫은맛은 사라지고 대신 꽃향·꿀향·구운향 같은 다양한 향이 나기 때문에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발효차인 만큼 오래 두고 마실 수 있을 뿐 아니라 발효가 지속되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맛을 즐기는 재미도 있다고.

그중 이 대표가 만드는 발효차는 전통 잭살차를 변형한 긴압차다. 긴압차는 찻잎을 증압(蒸壓·쪄서 압축하다)해서 만든 덩어리차를 말한다. 시들리고 비벼서 발효시킨, 말하자면 잭살차를 증압한 뒤 한번 더 발효시킨 것이다. 향과 맛뿐 아니라 모양까지 보기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 결과물이다. 잭살차와 긴압차 외에도 찻잎을 시들린 뒤 말린 백차로 만든 긴압차, 시들린 뒤 덖고 비벼서 말린 모차를 증압한 긴압차 등도 만든다.

비비기가 끝난 찻잎을 발효시키기 위해 대나무 채반에 펴놓으면 달콤한 꿀향, 상큼한 꽃향, 여러가지 과일향이 파도처럼 밀려드는데 차 만드는 과정 중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이 대표. 이 행복감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좋은 발효차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마침 오늘 눈이 오네요. 이런 날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서 향기롭고 따뜻한 우리 발효차 한잔 나누면 참 좋을 겁니다.”

그의 바람대로 우리 발효차 한잔해보면 어떨까.

하동=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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