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꿀맛이지”…여전히 허기 달래주는 새참

입력 : 2018-05-14 00:00 수정 : 2018-06-05 19:44
전남 나주 손영선씨의 배 과수원에서 열매솎기를 하던 할머니들이 새참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작업반장 김정례 할머니(왼쪽 첫번째)를 비롯해 10여명이 함께 일한다.

전남 나주 손영선씨의 과수원 새벽부터 하루 4끼 식사 준비

새참 대표음료인 막걸리 사고 위험 때문에 줄어들어

시대 따라 새참 풍경 달라져도 대접하고 받는 마음은 여전해

 


농사일은 배고프다. 땡볕에서 땀 흘리며 일하다보면 밥을 먹어도 배가 금방 꺼진다. 그래서 생긴 것이 ‘식사 사이에 먹는 참’, 즉 새참이다.

예전만 해도 요즘 같은 모내기철이면 품앗이를 하는 동네 주민 10여명이 둘러앉아 새참을 먹는 모습이 흔한 풍경이었다.

벼농사가 기계화되면서 모내기나 벼베기 현장엔 새참이 사라졌다.

하지만 열매솎기같이 사람손으로 작업을 하는 곳에는 여전히 일꾼들의 허기를 채우는 새참이 있다.



“아따, 인자 그만허고 언능 일로 좀 오쇼. 새참 좀 묵고 쉬었다 하게.”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전남 나주시 대기동에 있는 손영선씨(58)의 배 과수원 한가운데 돗자리가 펼쳐졌다. 열매솎기 작업에 열중하던 할머니들과 이웃 백영식 할아버지(77)가 함께 자리를 잡는다. 새참이 담긴 바구니가 가운데 펼쳐지자 검게 그을은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고, 소풍이라도 온 듯 어느새 이야기꽃이 핀다.

 

오후 새참으로 나온 떡국. 강귀미씨가 전날 장을 봐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오늘의 오후 새참 메뉴는 떡국이다. 안주인 강귀미씨(54)가 특별히 전날 장봐온 쇠고기까지 넣어 만들었다. 강씨는 이날 하루에만 4끼째 식사를 차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된장국으로 아침을, 10시에 과일과 두유로 오전 새참을, 12시에 닭볶음탕으로 점심을, 오후 3시에 떡국으로 오후 새참을 준비했다.

“매일 저녁에 장을 봐서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해요. 바쁠 때는 콩국수나 짜장면을 배달시켜서 먹기도 하는데 일하시는 분들이 싫어하세요. 집에서 만든 음식을 찾으시니 수고스러워도 어쩔 수 없죠.”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인데 뭔가 허전하다. 새참의 대표음료격인 막걸리가 보이질 않는다. 컬컬한 목을 축이고 주린 배를 채우는 막걸리는 ‘농주(農酒)’로 불릴 정도로 새참에 빠지지 않았었다.

강씨는 “할머니들이 사다리 위에서 일하기 때문에 술은 잘 드시질 않는다”고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백 할아버지는 “요즘엔 사람들이 일당을 받고 일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게 서로 조심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과수원에 둘러앉아 새참을 먹는 이들은 대부분 나주에 사는 할머니들이다. 지역농협 선과장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은 농장에서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일을 거든다. 인력파견업체 소속은 아니지만 작업반장까지 두고 무리지어 농장을 돌며 일한다. 작업반장 김정례 할머니(70)는 막걸리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했다.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없어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 남자들은 자기 일 하기 바빠 남의 농장에 일하러 갈 여력이 없지. 주로 할머니들이 일을 하러 다니다보니 막걸리보다는 식혜나 배즙을 더 좋아해.”

예전엔 새참 먹는 풍경이 이렇진 않았다. 동네 주민들이 서로 거들며 일하다보니 새참을 먹을 때는 잔치 같은 분위기였다고. 백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새참 먹던 모습을 회상했다.

“벼농사를 손으로 지을 때는 애고 어른이고 다 일꾼이었어. 모내기를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음식도 함께해서 나눠 먹었지. 어려운 시절이라 보리밥에 돼지비곗국과 김치가 전부였지만 막걸리 한잔 나눠 마실 여유는 있었지. 요즘은 기계가 농사를 짓고 필요한 일손도 사서 쓰다보니 새참도 많이 변한 것 같아.”

막걸리를 마시는 경우는 드물지만 새참은 여전히 농사일에서 중요하다. 30년 넘게 밭일을 나가고 있는 박순래 할머니(81)는 일하는 농장을 고를 때 ‘새참을 어떻게 주느냐’를 따진다고 한다.

“일당은 어딜 가나 똑같아. 일이 많을 땐 사람이 귀해 와달라고 사정하는데 새참을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집으로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떡국 한그릇을 뚝딱 비운 할머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20여분 새참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보니 일할 시간이 한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치 일을 끝내려고 부지런히 열매를 솎는 할머니들과 그들에게 보답하려고 매일같이 새참을 준비하는 농장주 부부. 세월이 흘러 새참은 변했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만은 여전했다.

농장주 손영선씨가 새참으로 먹을 음료와 물을 사륜 오토바이로 실어나르고 있다.



나주=장재혁, 사진=오정훈 기자 jaehyuk@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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