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주 한모금, 들깨송이부각 한입…신선놀음 따로 없네

입력 : 2018-02-12 00:00 수정 : 2018-02-16 22:49

강레오가 찾은 백년의 맛, 종가는 맛있다 (4) 은진 송씨 동춘당문정공파 종가

된장 푼 멸치육수에 깍두기 넣어 끓인 찌개, 텃밭서 기른 부추 듬뿍 넣고 끓인 육개장,

들깨송이 튀겨낸 고소한 부각까지…

84세 종부가 ‘술술~’ 풀어놓은 음식 이야기
 


대전 시내를 벗어나 동쪽으로 가면 대전 나들목(IC) 바로 앞쪽, 대덕구 송촌동에 공원이 하나 나온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원 안쪽에는 검은빛 기와가 우아한 한옥 여러채가 자리 잡고 있다. 은진 송씨 동춘당문정공파 후손들이 400년 동안 지켜온 고택이다. 영하 10℃를 넘나드는 추위에도 고택 마당에 내려앉은 햇살은 따사로웠다. 햇살을 따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니 안주인 김정순씨가 맞아준다. 22세 어린 나이에 시집와 84세가 된 지금까지 종가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종부다.



시조부가 즐기던 깍두기찌개

추위를 뚫고 찾아온 손에게 따뜻한 차를 내놓는 종부에게 강레오 셰프가 종가 어르신들이 가장 즐겨 드시던 음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반짝이는 눈빛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종부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라는 듯이 ‘깍두기찌개’라는 답을 내놨다.

“된장에 깍두기 몇개 넣어서 끓이면 맛있는 깍두기찌개가 돼. 깍두기만 맛있게 담그면 찌개가 맛있거든. 깍두기는 파·마늘·젓국 같은 양념을 듬뿍 넣고 담가. 조부님이 빨간 걸 싫어하셔서 고춧가루는 많이 안 넣었어. 그렇게 맛있게 담근 깍두기를 멸치랑 된장 푼 국물에 넣고 끓이는 거지. 고기가 있으면 다져서 파·마늘로 양념해 동그랗게 빚어. 그걸 끓는 찌개 위에 살짝 올려서 내면 잘 잡수셨지.”

시조부뿐 아니라 온 집안 식구들이 좋아했던 깍두기찌개는 지금도 종부가 즐겨 해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깍두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강 셰프가 종가의 김치 담그는 법을 물었다. 이 집안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우리는 국물이 많게 김치를 담가. 배추김치를 담그면 한 사흘 뒤에 국물을 더 넣어주지. 젓갈 국물을 달여서 면 보자기에 내려 만든 젓국에 물을 타 간을 맞춘 뒤 김치 항아리 가장자리로 빙 둘러서 넣으면 자작하게 국물이 생기거든. 김치가 익으면 김치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어.”

국물 자박한 종부의 김치가 얼마나 맛있던지 아들들이 어렸을 때 도시락을 싸주면 친구들이 “너는 다른 반찬 말고 김치만 싸와라” 했다고.

 

김정순 종부(왼쪽)와 강레오 셰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금 수라상에 올라가던 숙장아찌

생일상도 특별했다. 은진 송씨 집안에서는 생일상에 미역국을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봄이나 여름 생일상에는 육개장을 올리고 겨울에는 쇠고기뭇국을 올려. 육개장에는 부추가 들어가는데 여름에 부추가 좋거든. 집 옆 밭에서 기른 부추를 끊어다 고깃국에 듬뿍 넣고 간장이랑 고추장으로 양념해서 육개장을 끓이면 정말 맛있어. 여름에 오지 그랬어. 한그릇 끓여줬을 텐데.”

고사리며 숙주·토란대 같은 나물이 잔뜩 들어가는 일반적인 육개장과는 확연히 다른 맛일 터였다. 제철이 아니니 입맛만 다실밖에….

“여름 음식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열무쇠고기탕 이야기도 할까? 쇠고깃국을 끓일 때 원래 무를 넣잖아. 요즘에야 세상이 좋아져서 사철 내내 무가 있지만 예전에는 여름에 무가 없었어. 그래서 무 대신 파릇파릇한 열무를 넣고 쇠고깃국을 끓였지. 겨울에는 뭇국, 여름에는 열뭇국이야.”

호박과 찹쌀가루로 만든 호박풀떼기, 다진 고기를 구운 뒤 간장에 조려 만든 장산적, 오미자물에 동글동글 떠낸 수박 띄워서 만든 화채 등 종부의 음식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숙장아찌라고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던 음식도 있어. 무하고 당근·오이를 길게 썰고 소금에 절여서 꼭 짠 뒤에 볶아. 그런데 볶는 일이 쉽지 않아. 팬에 무를 넣고 볶다 보면 무에서 나온 물이 바글바글 끓거든. 그러면 무를 건져내고 물을 졸여야 돼. 물이 거의 졸아들면 무를 다시 넣고 볶고, 또 물이 나오면 다시 건지는 과정을 물이 안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거지. 당근 따로 오이 따로 다 볶아지면 파·마늘·진간장 넣고 양념하는데,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정말 좋아.”

그토록 어려운 음식인지라 숙장아찌는 옛날부터 집안에서 음식 솜씨 가장 좋은 사람이 담당했다고 했다. 손이 정말 많이 가서 요즘에는 잘 안해 먹는다고도 했다.

“그래도 손님이 왔으니 술 한잔 대접해볼까? 우리집 국화주가 좋아. 아침에 만들어둔 타래과하고 들깨송이부각 내줄 테니 안주 삼아서 맛보고 가.”

그러고보니 종부는 국화주로 대전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국화향 진한 술 한모금 머금고 고소하고 바삭한 들깨송이부각 한입 깨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도움말=이연자<종가문화연구소장, ‘종가의 삶에는 지혜가 있다’ 저자>

대전=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사진=김덕영 기자
 



● 김정순 종부의 타래과와 들깨송이부각

종부의 타래과는 재료가 독특하다. 밀가루에 물 대신 막걸리를 섞는 것. 콩기름과 생강가루를 조금씩 넣고 잘 반죽해서 튀기면 타래과가 완성된다. 일반 타래과에 비해 바삭바삭한 맛이 훨씬 좋은데 막걸리 때문인 것 같다는 게 종녀(종가의 딸) 송정원씨의 설명이다.

들깨송이부각은 들깨를 송이째 튀긴 것이다. 집 옆 밭에 심어놓은 들깨를 가을이 되면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잘라다가 찹쌀풀 입혀서 튀겨내면 된다. 고소한 들깨향과 바삭한 식감이 국화주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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