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작]연소증후군

입력 : 2017-01-01 00:00

굵직굵직한 사고를 치고 들어온 환자들
그 히스토리를 듣다 보면 세상이 지뢰밭처럼 느껴졌다
병실 창가에 놓아둔 바이올렛 화분이 바짝 말라 있었다
진수가 있는 동안 꽃이 내내 피고 지고 했는데…

의존성이 강한 약물중독은 도마뱀 꼬리보다 더 질기다
환자들은 실낱같은 정맥을 찾아내 환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얼음장처럼 서늘해진 관계 과부하가 걸린 몸으로 오래걸었다
푹 다리가 꺾여버렸다
그리고 그 아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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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몸이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지난밤 탈주범이 자수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시계 초침이 몇바퀴를 돌고 난 다음에야 출근을 서둘렀다. 겨울은 데이근무가 힘든 계절이었다.

 집을 나섰다. 1층 출입문 앞에 서자 자동개폐기의 문이 열리면서 알싸한 새벽 공기가 온몸으로 다가들었다. 늦은 시각까지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던 아파트 단지가 미명 속에 고요했다. 출입문 밖으로 나왔다.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며 한 남자가 등을 보인 채 문 옆에 있었다. 보조등 불빛 속 남자의 검은 등짝이 꽤 우람해 보였다. 남자를 지나쳐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남자의 시선이 등 뒤에 꽂혀 있는 것 같아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어둠이 그늘처럼 뒤덮인 주차장에 섰다. 늘 세우던 곳에 내 차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차를 어디에 세웠는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자가 서 있는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남자도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침묵에 휩싸인 아파트 단지를 스캔하듯 빠르게 훑어내렸다. 남자 외에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나의 동선을 계속 쫓고 있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늘 세우던 곳에 자리가 없어 앞 동에 주차해놓은 생각이 뒤늦게 났다. 쫓기는 사람처럼 뒤를 돌아보며 차가 있는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허둥대느라 차 안에 냉기가 가득한지도 몰랐다. 공기순환 히터를 켜고 온열시트의 버튼을 눌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남자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계기판 주유경고등에 빨간불이 켜졌다. 엊그제부터 기름을 넣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새벽이라 거리가 한산했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는 앞차를 따라 무심히 사거리를 건너다 제복 입은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청소부였다. 창문을 내리자 싸늘한 공기가 훅 차 안으로 밀려들었다. 가닥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정신이 멍멍했다. 잡다한 생각을 떨치려고 라디오를 켰다. 6시 뉴스시간이었다. 밤새 일어난 사건 사고들이 흘러나왔다.

 “치료감호소에 수감 중이던 김모씨가 어제저녁 11시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특수강간죄로 징역 15년과 치료감호를 선고받은 김모씨는 도주 중에도 제과점 주인을 성폭행하려다가…….”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탈주범 때문에 지난 이틀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어제 낮근무를 마치고 저녁 10시까지 시청 앞에 잠복해 있었다. 병원 직원들에게 몇명씩 조를 짜서 탈주범이 나타날 만한 곳에 지키고 있으라는 위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직원들이 형사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면서도 모두들 상황이 긴박했던지라 더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모두들 불안한 얼굴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김이 자수를 한 건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탈주범 김은 특수강간죄로 치료감호소에 수감된 환자였다. 그런데 며칠 전 이명 증세를 호소해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도주했다. 병실 보호사 2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발목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달라고 했다. 화장실에서 수액 바늘을 뽑은 다음 직원 2명을 따돌리고 바로 계단으로 도주했다. 김은 탈주 직후 아파트 의류수거함에서 꺼낸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빵집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가 아주머니의 설득으로 자수를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입소한 김을 면담하면서 불안한 눈빛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김은 부유한 가정의 외동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고위직 공무원이라고 했다. 그런 김이 약물에 손을 대고 성폭행까지 하게 된 건 외로움 때문이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세번이나 재혼을 했다. 아버지가 재혼과 이혼을 거듭하는 동안 김은 점점 말수를 잃어갔다. 새어머니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어머니의 말만 듣고 아들을 문제아 취급하며 수치스러워했다. 김은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방황했고, 뼛속까지 외로움을 느꼈다. 외로움 속에서 증오심이 싹텄다. 새어머니와 비슷한 여자만 봐도 눈이 뒤집혔다. 그리고 망가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 환경이 그렇다고 다 그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나의 마음속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김이 고개를 떨궜다. 객관적인 태도로 면담을 해야 되는데 때로는 감정이 앞설 때가 있었다.

 김을 데리고 있던 보호사 2명은 중징계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환자가 자수를 했으니 감봉 정도로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어머니 병원비까지 대야 하는 보호사 근석씨는 감봉도 감당하기 어려운 처벌이다. 며칠 전부터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명치끝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먹은 것도 없는데 어디가 콱 막힌 느낌이었다.

 산모퉁이를 돌자 주유소가 보였다. 경고등이 들어오기 전에 기름을 넣어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급하게 주유하기 일쑤였다. 생각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는지 구멍이 숭숭 뚫린 일상이 습관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산 밑 주유소는 어둠을 등지고 있었다. 귀곡산장처럼 으스스한 분위기라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셀프주유소지만 낮시간에는 아저씨들이 사무실을 지켰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차에서 내렸다. 주유구에 호스를 꽂아놓고 단말기에 카드를 그었다. 카드가 읽히지 않아서 몇번이나 다시 긁어야 했다. 언젠가 뉴스에서 보았던 화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떤 여자가 셀프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정전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해 3도 화상을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정전기가 잘 일어났다. 목에 감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 얼른 손에 쥐었다. 내 몸에 불이 붙어 활활 타는 장면이 상상되어 등골이 오싹했다. 아침부터 방정맞은 생각만 줄곧 하고 있는 걸 보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모양이었다. 식은땀이 났는지 등이 선득해서 어깨를 옹송그렸다. 굵직굵직한 사고를 치고 오는 환자들의 다양한 히스토리를 듣다 보면 세상이 온통 지뢰밭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색안경이 끼워지자 부정적인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한적한 시골길의 겨울 풍경은 적막했다. 앙상한 가지가 그대로 드러난 겨울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숲길로 한참을 들어가자 병원이 보였다. 무심코 다니던 길도 때로는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중충한 회색 건물에 발을 들여놓기가 싫었다. 반사회적 인격자, 정신질환자, 약물중독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을 정신감정 후 수감하는 치료감호소라 폐쇄병동이 있는 병원이다.

 아주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아 주차장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나는 룸미러를 보면서 와이키키, 치즈 하고 웃는 표정을 지어보았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병원 입구 계단을 오르면서도 와이키키, 치즈를 중얼거렸다. 억지웃음도 웃음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지 않은가. 요즘 짜증나는 일뿐이어서 미간에 주름이 자리를 잡았다. 병실로 들어서자 야간 당직한 보호사가 스테이션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샘, 오늘 뭐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아침이잖아요. 새로운 날. 탈주범도 잡히고.”

 “네에, 그 자식 때문에 직원들 개고생했잖아요. 며칠 갈 줄 알고 욕 무진장 했는데, 정말 다행이죠.”

 수간호사는 아직 출근 전이었다. 지난번 수간호사와 얼굴을 붉힌 이후로 같이 근무하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간질을 앓고 있는 환자 한명이 병실에서 발작을 일으킨 일 때문이었다. 그날 환자는 사지가 뒤틀리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병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환자를 에워쌌다. 환자의 발작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기도가 막히지 않게 편안한 자세로 환자를 눕히고 발작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발작이 멈추자 축 늘어진 환자를 침대로 옮기고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주치의한테 상황을 보고한 뒤 특별히 해줄 처치는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환자들이 그 상황을 자기들의 시각으로 각색해서 수간호사한테 전달한 모양이었다. 환자가 숨이 넘어가고 있는데 간호사는 여유만만하게 와서 쳐다보기만 하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갔다는 식으로.

 “박 선생, 안 봐도 뻔해요. 느긋해서 세상 바쁜 게 없잖아요. 게다가 말투까지 뚝뚝하고 불친절하다고 환자들 불만이 많드만. 권위적인 거 좋은 거 아니에요.”

 그날의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수간호사가 내 말을 뚝뚝 분질러가며 본인의 말만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어이가 없네요. 정말.”

 기가 막혀 한마디했다. 수간호사가 자기 말을 무시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야기의 본질은 없어지고 수간호사 대접을 이렇게 하느냐고 눈을 부라렸다. 큰소리가 나자 보호사와 당번인 환자들이 스테이션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스테이션을 나왔다. 나보다 세살 어린 수간호사는 근무경력이 많아 일찍 진급을 했다. 신입도 아니고 걸핏하면 인신공격을 하는 통에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수간호사한테 대들었다고 병원 내 소문이 자자했다. 그 일로 간호과장한테 불려가서 잘 좀 하라는 질책을 들어야 했다.

 얼마 전 진급 심사가 있었다. 연차로 보나 시기로 보나 당연히 진급 대상자에 들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이름은 아예 명단에 올라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수간호사가 근무 평점을 엉망으로 주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대상자에서 빠질 수밖에. 수간호사 얼굴만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현재는 퇴보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어느 한 지점에서 맴돌았다. 히터가 들어오는 시각인지 실내가 후끈했다. 식은땀이 났는지 등줄기가 오싹했다. 곧 수간호사가 올 시간이었다. 와이키키, 치즈 하고 중얼거려 보았다.



 오늘은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출근하기 싫었던 이유가 교육도 한몫한다는 걸 몸이 알았던 듯싶었다. 환자들은 이론교육이 너무 피상적이라고 교육시간에 하품을 하거나 딴지를 걸었다. 그래서 이론과 나눔, 사례를 적절하게 섞어서 교육내용을 바꾸어보았다. 때로는 약물을 했던 무용담으로 흘러갈 때가 있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병동 골수 환자는 약물병동 간호사라면 적어도 필로폰 주사 한번 정도는 맞아보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경험해본 다음 교육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떤 환자는 나도 모르는 이론이나 병리현상에 대해 질문을 해대며 곤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시간만 때우면 될 줄 알았던 환자 교육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병실 입구에 큰 박스 2개가 놓여 있었다. 결국 받아낸 모양이었다. 환자들은 과자를 달고 살았다. 군대에서 주 간식이 초코파이라면 여기서는 뿌셔뿌셔가 인기 상품이었다. 병원 매점에 과자 종류가 한정돼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했다. 라면처럼 생긴 그 과자를 먹던 환자가 이가 깨졌다고 회사를 상대로 고소장을 냈다. 제과회사에서 과자에는 문제가 없다고 통보했는데 계속 고소장을 보내자 과자 2박스를 보내왔다. 법대를 나왔다는 환자가 고소장을 써주었다. 며칠 동안 병실에서는 그 일로 활기가 넘쳤다. 환자들은 건수만 있으면 물고 늘어져 지루한 병실생활을 견디는 방편으로 삼았다.

 인권위원회가 생기고 환자들만 살판난 셈이었다. 걸핏하면 고소장을 써내는 환자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고소장의 내용도 다양했다. 의사가 달라는 약을 안 준다고 불만이거나 간호사가 친절하지 않다고 항의하는 건 기본이었다. 두부 케이스에는 두부의 용량이 500g으로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300g밖에 안 준다고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인권위원회에 접수되면 일단 현장조사를 나와야 하니까 그쪽 사람들도 별일 아닌 걸로 성가시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필로폰 중독 상태에서 만삭의 임신부를 성폭행하고 붙잡혀온 P는 말끝마다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다녔다. 만삭의 임신부는 다 키운 아기를 놓쳐버리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라고 했다. 그런 P가 인권을 들먹이다니, P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왜 하필 임신부였냐고. 이제 막 빛을 보려는 생명을 무참히 짓밟고 온 주제에 인권을 들먹인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그러나 차마 말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P는 옆자리 환자와 시비가 붙어 상대방 귀를 물어뜯고도 태연했다. 썩어가는 앞니를 드러내고 씨익 웃으면 주변 환자들도 고개를 돌렸다. P가 독방에 갇혀 있어서 한동안 병실이 조용했다.

 정기적인 처방을 내는 날이라 모처럼 병동의 꽃띠 정 간호사도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 종달새처럼 목소리가 경쾌한 정 간호사는 별일 아닌 일도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었다. 수간호사한테 할 말 다하고도 하는 짓이 예쁘다고 칭찬받는 걸 보면 비결이 뭘까 궁금했다. 손이 빠른 정 간호사가 투약 준비를 금방 끝내고 내가 하던 일까지 거들어주었다. 정 간호사와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려고 혈압계를 들고 병실로 들어갔다.

 “혈압 잴 거니까 줄을 서시오.”

 장난기 어린 정 간호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환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내 책상 앞에는 한씨와 나이 든 환자 몇명이 와 서 있을 뿐이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박샘 줄로 가세요.”

 정 간호사가 자신의 줄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져 쨍하고 울렸다. 환자들은 샐쭉해진 정 간호사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줄을 고수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좋은 모양이다. 정샘.”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맨 앞에 서 있던 한씨가 고개를 숙이며 팔을 내밀었다. 단단한 팔에 커프를 감고 버튼을 눌렀다. 맥박을 재는 동안에도 한씨는 눈을 내리깔고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웃음이 나는 걸 참느라 바이탈 사인 기록지를 뒤적거렸다. 한씨는 강한 경상도 억양에 표정 변화가 없는 과묵한 환자였다. 늘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어서 별명이 까치머리 형님이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세심한 구석이 있어 환자들이 잘 따랐다. 그는 내가 환자들 주사를 놔주고 어쩌다 병실에 빠트리고 온 토니켓을 챙겨다주기도 했다. 언젠가는 투약시간에 한 환자가 평소 자신이 먹던 약이 아니라며 패악을 부린 적이 있다. 약 모양만 바뀌고 똑같은 약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약이 달라졌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한씨가 매서운 눈초리로 그 환자를 노려보았다. 그러고선 “고마해라.” 힘주어 한마디 던지자 미친놈처럼 날뛰던 환자가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한씨는 부산에서 알아주는 전설의 두목이라고 했다. 그 세계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어쩌자고 약물에까지 손을 댔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명 안되는 환자들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고 병실을 나왔다. 정 간호사 앞으로 길게 줄을 선 환자들을 보면서도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라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처음에는 썰렁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동안은 환자들이 꼴도 보기 싫을 만큼 밉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았다. 포기가 빠른 성격이라 좋은 점도 있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때론 정 간호사의 생동감 있는 젊음이 부럽기도 했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그렇듯 인생에도 전진만 있을 뿐 후진이란 게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병실 창가에 놓아둔 바이올렛 화분이 바짝 말라 있었다. 잎이 시들시들한 게 풀이 죽었다. 작은 화분에 물 한컵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몇개 안되는 병실 화분을 도맡아 관리하던 진수가 떠난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진수가 있는 동안 바이올렛 꽃이 내내 피고 지고 했는데……. 진수는 병실에서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저보다 나이 든 환자들한테 치여 늘 시무룩하게 지냈다. 어느 날 원예치료 수업을 받고 난 후 바이올렛 화분을 선물받았다고 좋아했다. 꽃을 가꾸는 일에 재미를 붙였는지 틈만 나면 화분을 쳐다보고 정성을 들였다. 연보라색 꽃을 들여다보느라 창가에 서 있는 시간도 많았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진수의 공허한 눈빛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릿해서 등을 토닥여주곤 했다. 진수는 내가 받은 환자였다. 어린 나이에 병원을 들락거리는 것이 안타까워 잔소리를 많이 했다.

 진수는 일곱살 때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할머니가 키웠다. 부모님과 헤어지고 그 길로 집을 나와 며칠을 굶고 돌아다녔다. 거지꼴로 다니는 아이를 누군가 경찰서에 데려다주었다. 거기서 밥을 얻어먹고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자다가 다리가 아파 눈을 떠보니 경찰관이 진수의 정강이를 담뱃불로 지졌다는 것이다. 하얀 얼굴에 금테 안경을 끼고 인상이 좋았던 경찰아저씨가 씨익 웃으며 쳐다보는데 겁에 질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진수는 본드를 마신 상태에서 사고를 치고 약물병동에 수감되었다. 병원 생활을 착실히 잘 하다가 퇴원하면 얼마 안 가 또 들어오곤 했다. 그는 철물점 문 닫을 시간이 되면 빨리 가서 본드를 사고 싶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보다 더 설렌다니 할 말이 없었다.

 지난번 진수가 입원했을 때는 병원 생활이 예전과 달라 보였다. 검정고시를 보겠다며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기특해서 참고서와 필기구를 사다주었다. 수감되어 있는 환자들의 특성상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는 간호사들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환자들의 소소한 부탁을 일절 들어주지 않았다. 부탁했다 거절당했던 경험이 있는 환자들은 진수만 챙긴다고 불만이 많았다.

 진수는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나의 응원에 힘을 실어주었다. 퇴원하면 간호조무사학원을 다녀보라고 권했다. 요양병원이 많아 일자리 찾기가 쉬울 것 같아서였다. 병원을 나서는 진수의 뒷모습이 든든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진수가 떠나고 난 뒤 손길이 자주 안 가도 되는 선인장을 사다놓으려다 환자들이 무기로 악용할지 몰라 그만두었다. 여자만 빼고 다 만들 수 있다고 능청을 떠는 환자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환자들 몇명이 뻔질나게 감기약을 타간 적이 있었다. 그 약들을 섞어 환각제 비슷하게 만들어 신이 나서 나누어 먹다가 적발되어 혼이 났었다.

 인간은 중독이 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의존성이 강한 약물중독은 도마뱀 꼬리보다 더 질겨서 약물병동을 주기적으로 들락거리는 환자들이 많았다. 뇌의 전두엽은 ‘약 안 먹겠다고 해’라고 말해도 변연계에서는 ‘너무 좋은 걸’ 하며 반항했다. 때문에 퇴원해도 약에 관련된 모든 걸 환자 주변에서 치워버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람은 10억개나 되는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고, 이들이 서로 무엇을 교환하는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억제이지 자극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독방에 있는 환자를 체크하고 나오는데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왔다. 통증은 금방 지나갔지만 식은땀이 나면서 기운이 쭉 빠지는 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복도 끝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컵 속에 물이 가득 담겨 쏟아질 것처럼 불안한 마음이 온몸을 휘감았다. 창가에 기대 겨울 햇볕을 잠시 쪼였다. 요 며칠 명치끝에 돌을 얹어놓은 듯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오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 느긋하게 나 자신을 챙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스테이션 안에는 각자 일로 분주했다. 오더 체크하고 간호 기록하느라 컴퓨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더니 눈이 뻑뻑하고 화면이 흐릿하게 보였다. 눈이 많이 나빠진 모양이었다.

 장염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수액을 놓기 위해 병실에 들어갔다. 살이 많이 찐 환자라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등과 팔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살 속에 파묻혀 정맥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왼팔과 오른팔에 번갈아 토니켓을 묶고 나무둥치만 한 팔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데 설레발 환자가 쪼르르 달려왔다.

 “샘예, 혈관이 안 보입니까? 제가 놔드리까예. 그래 살찐 사람은 감으로 놔야 된다 아임니까.”

 “설레발, 조용히 해라.”

 성이 설씨인데 나서기 좋아해서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이 병원 간호사님들은 주사를 이상하게 놔요. 이쁘장하게 생긴 정샘도 엉덩이 주사 놓을 때 얼마나 터프한지 바늘을 멀리서 던지듯이 꽂더라니깐예. 허긴 샘도 때리지도 않고 그냥 푹 찌르잖아요.”

 “원래 안 때리고 놓는 거야. 시끄럽다. 저리 좀 가라.”

 깐죽거리는 환자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일이년 한 것도 아닌데 눈이 침침해지면서 감각도 둔해졌다. 환자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는 손에 힘이 실렸나 곰 같은 환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손등이 단풍잎처럼 빨개졌다. 손목 옆을 지나가는 혈관에 간신히 바늘을 꽂고 병실을 나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약물중독 환자들은 혈관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설레발도 필로폰 중독으로 입원한 환자였다. 그들은 멸균된 주사기를 사용해야 된다거나 소독을 해야 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C형 간염환자가 많았다. 약물환자들은 혈관이 깊이 숨어 있어도 실낱같은 정맥을 찾아내어 환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반복되는 중독 행동은 뇌 속에 있는 아드레날린과 내인성 오피오이드로 불리는 신경호르몬에 대한 금단현상이다.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특정 행동을 할 때 몸에서 분비되는 물질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또다시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미드, 야동, 섹스, 주식 이런 행동중독도 자기 기만이라는 폭탄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나절이 금방 지나갔다. 속이 답답해서 딱히 뭘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적거리다가 가방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남편이 보낸 문자가 여러개 와 있었다. ‘또 뭘 보낸 거야’ 와락 짜증이 치밀었다. 두달째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또 가방을 보냈다는 문자였다. 카톡으로 보낸 가방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진달래색에 화려한 장식까지 어디서 이렇게 촌스러운 가방을 구입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잖아도 장롱 속에 가방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한번도 들지 않고 그대로 처박아둔 가방이 수십개나 됐다. 남편이 보낸 가방 중에는 새것이 아닌 중고품도 있었다. 남편의 숨겨둔 여자가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라 가방을 수시로 바꾸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쓰지 않는 그것을 내게로 보내는가 싶었다. 선물을 받고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병실 배식 상황을 살펴보고 급하게 식당으로 향했다. 조금 빨리 걸었을 뿐인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 뛰는 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식당 안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나는 식판을 들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일반병동 간호사들 무리에 슬며시 끼어 앉았다. 입담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303병동 수간호사는 하나를 배우면 열개를 써 먹는 사람이었다.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있는 그녀는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콕콕 집어 말해주었다. 핸드백이 수시로 바뀌는 황 간호사는 여성성을 확인하기 위해 새로운 가방을 산다고 했다. 가방은 여성의 자궁을 의미한다고. 옷이나 가방을 자주 사는 사람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갖는 것이 두려워 삶을 바꾸는 대신에 옷이나 가방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황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럼 남편이 가방을 끊임없이 사 보내는 이유는 뭘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내를 바꾸고 싶다는 무언의 메시지일까?

 남편과 떨어져 산 지 20년이었다. 집 가까운 곳에 자리가 생겨도 남편은 항구도시인 B시에 있으려고 했다. 각자의 자리에 너무 익숙해진 부부는 합치는 걸 내심 두려워하는지도 몰랐다. 선박검사원인 남편은 상해에서 4년을 살다 왔다. 주변 사람들은 왜 남편을 따라가지 않느냐고 말들이 많았다. 남편 숙소에 중국어 가르치는 아가씨가 날마다 들락거린다고 직원 부인들이 더 걱정을 해주었다. 데면데면하게 살았던 남편을 따라가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중국 아가씨와 자주 연락을 하는 듯했다.

 지난여름 남편이 사는 B시에 불쑥 내려간 적이 있었다. 남편은 연락도 없이 왔다고 투덜거렸다. 비밀 아지트인 양 오지 말라고 방어벽을 쳤던 숙소는 좁고 썰렁했다. 말라비틀어진 김밥과 버석해진 식빵, 라면봉지가 식탁 위에 널려 있었다. 냉장고에는 냉수와 캔맥주 몇개가 전부였다. 남편은 주식 투자로 돈을 다 날리고 빚까지 진 상태라 최근 몇년 동안 변변하게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바닷가 횟집에서 마신 술기운 탓이었을까? 뻣뻣하던 마음이 녹녹해져 부엌에서 수박을 쪼개고 있는 남편을 뒤에서 살며시 안았다. “이 사람이 왜 이래” 하면서 남편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무안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더운 날씨와 다르게 마음이 얼음장처럼 서늘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남편의 미안하다는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하는 것마다 마이너스인데 끊임없이 남의 말만 듣는 남편도 우리 병원 환자들처럼 치유하기 힘든 투자 중독자였다.



 환자 바이탈 사인을 입력하고 있는데 센터장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수간호사가 반색하며 자리를 내주었다. 센터장은 작달막한 키에 뚱뚱하고 입술이 두툼해서 별명이 저팔계였다. 땍땍거리던 수간호사의 말투가 금방 나긋나긋해졌다. 냉큼 탕비실로 들어간 수간호사가 커피 한잔을 타 가지고 나와 센터장에게 주었다. 센터장이 커피를 마시며 정 간호사에게 실실 농담을 건넸다. 입을 꼭 다문 정 간호사의 얼굴에 싫은 표정이 역력했다.

 “정샘은 나만 미워하는 거 같아. 저 입 나온 거 봐라. 입술로 때려줄까.”

 “미쳤어요.”

 정 간호사가 발끈하며 센터장이 앉아 있는 의자를 밀어버렸다. 마치 두 사람의 장난을 보듯 수간호사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런 수간호사가 어이없었다.

 얼마 전 센터장이 스테이션에서 난동을 피운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마시고 있는 커피를 뺏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김 간호사에게 폭언을 퍼붓고 차트를 집어던지며 자기를 무시한다고 길길이 뛰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들어오다가 차트에 맞을 뻔했다. 여린 김 간호사는 그 일로 한동안 힘들어 했다. 병동 간호사들이 센터장의 오만방자한 행동을 규탄하며 탄원서를 내자, 인터넷에 올리자, 여러가지 의견들로 분분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수간호사가 그냥 덮고 넘어가자고 설득을 하고 다녔다. 감독 진급을 앞두고 있던 터라 몸을 사린 때문이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오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몸은 버티고 서 있지 못할 만큼 말이 아니었다. 다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몸살이 오려나 싶었다. 그러다 푹 다리가 꺾여버렸다. 그리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들어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일부는 막히고 하나는 좁아져 위험할 뻔했다고 담당의사가 말해주었다. 관상동맥 스텐트 삽입술을 하고 며칠 입원을 했다. 팽팽하던 신경줄을 놓고 나서야 몸에 과부하가 걸린 채로 오래 걸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운신의 폭은 좁아졌는데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며칠 만에 새로운 마음으로 병원에 출근했다. 없는 동안 병원에는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수간호사와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방사선기사가 아주 깊은 관계였다는 것이다. 수간호사 남편이 방사선기사를 폭행하고 병원을 발칵 뒤집어놓았다고 다들 수군거렸다. 병원을 그만둔 수간호사 이야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진수가 다시 입원해 병실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지난봄 다시는 병원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갔던 아이였다. 본드를 마시다가 이웃의 신고로 잡혀왔다고 했다.

 퇴원 후 진수는 학원에 잘 다니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자격증을 따면 취직할 곳도 마련되어 있다고 좋아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얼굴은 먹구름이 낀 듯 어둡고 몸은 눈에 띄게 말라 있었다. 실망이 커 진수 얼굴을 쳐다보기가 싫었다. 진수가 쭈뼛거리며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진수가 면담을 요청해 어쩔 수 없이 마주 앉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릴 때 헤어졌던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는데 어머니는 재혼한 가정에 진수의 존재가 알려질까 봐 만나고 싶지 않다고 냉정하게 거절하더라고 했다. 두번 버림받은 것처럼 참담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징징대는 것 같아 보기가 싫었다. 지금까지 애써 노력한 걸 한꺼번에 무너트렸다고 나무랐다. 투약시간이라 가봐야 한다며 아직 할 말이 많은 듯싶은 진수를 두고 서둘러 면담실을 나왔다.

 이후로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진수가 종종 신경이 쓰였지만 스스로 일어서야 된다고 생각하며 모른 척했다. 어느 날 입소한 환자를 면담하고 나오는데 진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샌드가 들어 있는 과자 한봉지를 내 손에 쥐어준 뒤 아무 말없이 사라졌다. 오후가 되면 달달한 게 당긴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날 이브닝근무를 마칠 시간에 진수가 목욕탕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버티다가 진수는 결국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어느새 창가에 놓아둔 바이올렛의 잎이 무성했다. 바이올렛 줄기를 분질러 잎을 손에 움켜잡았다. 창밖에는 눈이 흩날렸다. 덜컹거리는 창문을 열고 이파리를 바람에 날리며 피어보지도 못하고 꺾인 젊은 영혼이 부디 편안히 건너가기를 빌었다. 그리고 뿌리만 남은 화분을 창밖으로 던졌다. 허공에 발을 딛고 있는 것처럼 정신이 멍멍했다.

 업무상 과실로 10개월 감봉처분이 내려졌다. 내가 이브닝근무일 때 진수가 목을 맸기 때문이었다. 병원도 옮겨야 했다. 남쪽에 있는 병원이었다. 그 말을 전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사뭇 조심스러웠다. 퇴근시간이 지나 병원을 나섰다. 시골길을 벗어나 자주 다니지 않던 길로 차를 몰았다. 눈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모든 경계가 지워지고 있었다. 낯선 도로에서 30분 넘게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표지판도 보이지 않고 거리는 어느새 하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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