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종이’ 부활하다…한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입력 : 2021-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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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년경 한지에 인쇄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견고성 입증

통일신라 때 토착화 … 조선시대 번성 벽지·갈모 등 생활용품으로도 변신

양지 들어오면서 산업 급속도 붕괴 1990년대 들어 연구·정부지원 재개 

의류·스피커 진동판 등 쓰임새 다양

서양 문화재복원 활용 … 전세계 주목 올 4월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 발대

 

종이의 시대가 가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그 비중이 줄어들기는 해도 종이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우리가 조선왕조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역사가 한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 아닌가. 종이 중에서도 전통 한지는 쳔년이 넘게 보존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됐다. 게다가 한지는 더이상 옛날 종이가 아니다. 다양한 생활용품에 활용되는가 하면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견고한 천년의 종이, 흥망성쇠를 거치다

한지는 삼국시대에 중국의 제지법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품질이 우수해 중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그 증거다. 이는 751년경 한지에 인쇄한 것으로 770년경 일본의 <백만탑다라니>보다 앞선다. 그뿐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16건 중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13건이 전통 한지를 사용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는 닥 섬유로 만든 한지가 토착화한 시기다. 닥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재배가 가능해 한국 고유의 종이 원료로 토착화했다. 고려시대는 한지의 발전기였다. 지리적 여건이 좋은 곳에 지소(紙所)를 설치했고, 이곳을 중심으로 갖가지 원료를 사용한 특색 있는 한지가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전기는 제지술의 완성기였다. 통제기관의 설치, 원료와 기술의 다양화, 용도의 대중화가 이뤄진 시기다. 태종 때는 국영 조지소(造紙所)를 설치하고 닥종이로 만든 돈인 저화(楮貨) 2000장을 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한지산업은 서서히 하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후 고종 21년(1884년)에 일반종이(양지)가 들어왔다. 1945년 해방 후 60여년간은 급속도로 한지산업이 붕괴한 시기다. 1970년대 이후 일반종이가 대세를 이루며 인력난과 기술 전수의 어려움을 겪었다.

잊혀가는 한지를 다시 돌아본 것은 1990년대부터다. 이때부터 한지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고, 2000년대 들어 정부는 한지를 산업화하기 위해 각종 지원에 나섰다.


창호지부터 스피커까지…쓰임도 다양

전통 한지는 ‘백지(百紙)’라고도 부른다. 아흔아홉번의 손길로 만들어져 마지막 만지는 사람이 백번째라는 뜻이다. 그만큼 많은 정성이 들어가 내구성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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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한지에 기름을 먹여 만든 갈모. 비올 때 우산처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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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한지로 만든 버선본(버선의 모양본).

한지는 문필용뿐 아니라 창호지와 벽지·온돌지 등으로 사용했다. 또 기름을 먹여 비가 올 때 쓰는 갈모를 만들기도 했다. 한지를 여러장 겹쳐 기름을 먹이고 옻칠을 하면 물에 잘 젖지 않아 바구니·옷장·필통·갓통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는데, 그중에는 요강도 있었다. 한지로 만든 요강은 새색시가 시집갈 때 가마 안에서 사용하는 요긴한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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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한지 서류함. 과거엔 버리는 한지를 함이나 담뱃갑 등으로 재활용했다. 사진제공=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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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한지를 진동판으로 활용한 스피커. 울림이 좋다. 사진제공=소노다인

현대에 들어서는 한지의 쓰임이 더욱 다양해졌다. 한지를 꼬아 만든 한지실에 면·실크 등 다른 섬유를 섞어 옷을 만든다. 한지옷은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며 통풍도 잘된다. 또 식품 포장용지나 의료용 항균지, 절연지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스피커의 진동판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 한지 진동판을 개발한 음향기기 전문업체 소노다인의 허진 대표는 “한지는 다른 소재에 비해 가벼워 보다 빠르게 진동해 소리를 낸다”며 “울림이 좋아 평론가들이 ‘맑은 가을 농촌의 정자 같은 청명한 소리가 난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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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한지사에 실크 등 다른 실을 엮어 만든 한지옷(2009년 12월 개교 20주년 기념 한 지사 작품 전시). 사진제공=에스모드서울

한지는 서양에서 문화재 복원용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갈라진 캔버스를 고정시키는 데 일본의 화지 대신 한지를 사용한 것이다.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는 문화재 5점을 한지를 이용해 복원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도 문화재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는 한편 경북 문경과 전북 전주의 한지공장을 직접 견학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배용 전통 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단장은 2024년 등재를 목표로 4월 발대식을 가졌다. 이 단장은 “전통 한지는 역사성·예술성·과학성 면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이유가 차고 넘친다”고 강조했다.

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참고도서=<아름다운 우리 종이 한지>(이승철, 현암사), <한국의 전통한지>(김호석 외 3인, 선), <한지, 천년의 비밀을 밝혀라!>(김해원 외 1인, 해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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