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등록문화재] 근현대 유산…추억하다, 상상하다

입력 : 202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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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가등록문화재 20주년 특별전’을 찾은 한 관람객이 ‘조선요리제법’의 설명자료를 읽고 있다. 김병진 기자

국가등록문화재 20주년 특별전

소유자 신청하면 조사 통해 결정

영업 허용 등 다소 유연하게 관리

901건 중 46건 실물·영상 전시

건축물부터 시사만화까지 다양

 

‘내가 가진 스마트폰, 우리 회사가 만든 신문도 먼 훗날 문화재가 될 수 있을까?’

가끔 이런 엉뚱한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가 있는데 최근 ‘국가등록문화재’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굳이 수백년이 흘러간 것이 아니더라도 시대상을 대표하고 반영한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문화재가 될 수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란 1880년대 개항기 전후로부터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 미래세대에 전수할 가치가 있는 근현대 유산을 일컫는다.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7월18일까지 열리는 ‘국가등록문화재 20주년 특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근현대사는 중세의 역사와 현재를 잇는 다리거든요. 그런데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개항 전후 물건과 건축물의 훼손·멸실이 심해요. 등록문화재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입니다.”

유정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는 등록문화재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등록문화재는 4월5일 기준 모두 901건인데 건축물·시설과 같은 부동산이 586건으로 가장 많다. 이번 전시에서는 46건 80점의 등록문화재를 실물 또는 영상으로 접할 수 있다.

2001년 문화재청이 처음 도입한 등록문화재는 국보·보물과 같은 지정문화재와 다소 차이가 있다. 지정문화재는 ‘동결보존 정책’의 성격이 강한지라 함부로 손댈 수 없다. 반면 등록문화재는 건축물을 실제 영업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소 유연하게 관리된다. 또 소유자가 자신의 물건을 문화재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해야 조사를 시작한다는 것도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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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4개 주제로 구성됐다. 첫번째 주제는 ‘앎의 체계, 생활을 바꾸다’로 신문물과 조우한 조선 후기의 근대 생활상을 담았다. 여러 물건 가운데 에비슨의 수술장면 유리건판 필름(등록문화재 제448호)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는 조선 최초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서 캐나다 출신 의사 에비슨이 수술을 하고 탕건을 쓴 한국인 학생이 가위를 건네는 장면이 담겼다. 그 학생은 바로 세브란스의학교 1회 졸업생 박서양으로, 졸업 후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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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1905년까지 4년간 궁내부 의사로 활동한 독일인 분슈가 사용한 외과도구(등록문화재 제450호).

일제강점기 궁중요리연구가 방신영이 편찬한 <조선요리제법(제686호)>도 눈길을 끈다. 이전 한글 조리서와 어머니에게 배운 조리법 350종, 외국요리법 39종을 소개한 책이다. 유정환 학예연구사는 “1917년 출간한 책이 인기를 끌면서 장안의 종이값이 올랐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면서 “출간 후 45년간 34차례나 개정·증보를 거듭했으니 가히 조선판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라 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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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모아 뜻을 통하다’ 주제관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한글을 지키려는 선조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어학회에서 작성한 <조선말큰사전> 원고(보물 제2086호, 전 등록문화재 제524-1호)에는 순우리말·한자말·외래어·관용어·사투리·옛말 등을 포함해 16만개의 어휘가 총망라돼 있다. 누렇게 색이 변한 원고지를 빼곡히 채운 글자와 각종 교정부호를 보고 있노라니 숙연해진다. 그 엄혹한 시절에 한글을 공부할 후대에게 번듯한 사전을 만들어주겠다는 일념이 어떻게 생겨난 걸까. 광복이 되리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세우고 짓다’를 주제로 한 전시관에서는 다양한 근대 건축물을 사진·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개항은 전통적 양식과 서양식 양식을 모두 겸비한 독창적인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등록문화재가 된 건축물 대부분은 새로운 쓰임을 부여받으며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카페로 변신한 서울 구 경성방직 사무동(제135호),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이 된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제41호), 현재 짜장면 박물관으로 변모한 과거 중국요릿집 인천 선린동 공화춘(제246호)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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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유물 중 하나인 금메달.

전시의 마지막 주제는 ‘해방, 새로운 문화를 펼치다’이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유물(제489호, 메달과 상장) 옆 영상에선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에 올라선 침통한 표정의 손기정 선수, 그리고 올림픽 유치로 독일 제국주의를 선전하려 한 당당한 모습의 히틀러가 굴곡진 세계사의 한 지점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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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도 문화재가 되는 시대다. 고(故) 김성환 화백(1932∼2019년)이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간 1만4139회에 걸쳐 연재한 최장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육필 원화는 등록문화재 제538-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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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미인대회에 참가해 선보인 양단 아리랑 드레스(제613호)도 있다. 제3회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가 1959년 제8회 미스 유니버스대회에서 착용했는데 한복의 화려한 색감은 살리면서 편의성을 높인 것이 인상적이다.

2021년 5월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억될까. 오늘의 내가 쓰거나 남긴 말·글·정신·양식이 문화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가짐과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진다. 자신이 역사를 쓰는 주역임을 깨닫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한결 정의롭고 평화로워질 테다.

이문수 기자 leemoonsoo@nongmin.com

사진제공=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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