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24절기 (23)·끝 곡우(穀雨)

입력 : 2012-04-16 00:00

잠자던 땅을 깨워 생명을 싹 틔우는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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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우(4월20일)는 곡식에 필요한 봄비가 내린다는 뜻이다. 봄비는 얼어붙은 땅을 녹여 죽은 듯 숨어 있던 생명의 기운들을 되살린다.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라는 말이나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나 마른다’는 속담 등은 모두 곡우 무렵 내리는 봄비의 중요성을 일컫는다. 못자리를 만들고 고구마싹을 틔우는 것도 이때 할 일이다. 시금치를 비롯해 배추·열무 등의 봄채소 파종과 감자 심기, 마늘 웃거름 주기도 이때 해야 한다.

 농부들은 겨우내 건사해 두었던 볍씨들을 내어 못자리를 만든다. 한해 농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절이므로 과거에는 이즈음엔 죄인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볍씨를 담가 못자리를 만들 땐 정성을 다해야 한다. 부부간의 잠자리도 삼갈 뿐 아니라 상갓집에 들렀거나 부정한 일을 봤을 때는 집 앞에 불을 피우고 그 불을 쬐어 악귀를 태우는 의식을 거친 후 볍씨를 담갔다. 방아를 찧으면 볍씨들이 놀라 싹을 틔우지 않을까 봐 방아 찧는 것도 삼갔다. 농사는 그렇게 정성과 치성으로 이루어지는 하늘과 인간의 조화인 것이다.

 땅이 봄비를 머금으니 만물에 물이 오르는 시기가 바로 곡우 때다. 물오른 나무의 수관을 잘라 수액을 받아 먹으면 위장에 좋다고 하여 각지에서 ‘곡우물’ 받는 행사가 이뤄진다. 전북에서는 거자수물 마시기, 전남에서는 다래물 마시기, 경북에서는 약물 마시기라고 한다. 오줌이 잘 나오고 뼈를 튼튼하게 한다는 거자수(박달나무·자작나무 수액)는 곡우 때 절정에 이른다. 지리산 남악사에선 예로부터 곡우에 조정 제관이 산신에게 거자수를 올리고 국태민안을 비는 약수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황사다. 그러나 이때 내리는 비는 황우(黃雨)라 하여 물고기 양식에 치명적인 적조를 방지하고 호수나 토양의 산성화를 막는 중화제 역할도 한다. 대기 중에 식물의 영양분인 칼슘·마그네슘이 평소보다 높게 함유돼 있어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라는 말이 있다. 조기는 산란할 때 소리 내어 우는 습성이 있는데, 그때가 바로 곡우를 전후한 시기인 까닭이다. 전남 신안 흑산도 근해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곡우 때가 되면 충청지방으로 북상해 올라가는데, 이때 잡은 고기를 ‘곡우살조기’ 또는 ‘오사리조기’라고 하며 비록 크지는 않지만 살이 연하고 맛있어 일품으로 친다.

 곡우가 되면 남쪽 지방의 차밭도 바빠지게 된다. 유명한 우전차(雨前茶)는 곡우에 첫비가 내리기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차다. 정상적인 찻잎의 채취는 대개 입하(立夏) 전후에 이뤄지지만, 여린 햇찻잎을 가공해 만든 우전차는 차나무 특유의 풋풋한 향기로 봄이 왔음을 알려 주는 계절의 상징이다.

김상철<동덕여대 회화과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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