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황후 윤씨, 50여년 영욕의 현대사를 지켜보다

입력 : 2020-05-20 00:00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45)조선의 왕비로 산다는 것(32·끝) 마지막 왕비, 순정황후 윤씨

1906년 간택 후 이듬해 혼례식 순종 즉위로 황후에 올랐지만

1910년 대한제국 멸망 지켜봐

창덕궁 낙선재서 말년 보내며 한국전쟁·군사쿠데타까지 겪어

1966년 73세로 승하…유릉에 합장


1910년 조선왕조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 후에도 50여년간 영욕의 현대사를 경험한 왕비가 있다. 마지막 황제 순종의 계비 순정황후(1894~1966년)다. 순정황후는 1906년 순종의 계비로 들어와 조선의 멸망과 해방,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서 지켜보다가 1966년 73세를 일기로 승하했다.

순정황후 윤씨는 해평 윤씨 윤택영(1876~1935년)의 딸로 1894년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태어났다. 1904년 태자비 민씨가 승하하자 황실에서는 3년상을 마친 1906년부터 황태자의 태자비 간택을 준비했다. 7월4일 초간택이 거행돼 7명의 후보가 간택됐다. 초간택 이후 두달이 지난 9월22일에 재간택이 이루어져 총판 윤택영의 딸, 교관 심종찬의 딸, 부첨사 성건호의 딸이 선발됐다. 삼간택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12월31일에 경운궁 중명전에서 이루어져 윤택영의 딸이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태자비의 나이는 13세, 태자로 있던 순종은 33세였다. 재간택과 삼간택이 늦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세간에서는 윤택영이 고종의 총애를 받던 후궁 엄귀비에게 거액의 뇌물을 바쳐 간택됐다는 소문이 있었다.

혼례식은 육례를 갖춰 거행됐는데, 대한제국 시기라는 특징이 반영돼 기존의 혼례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1907년 1월8일에 청혼서를 보내는 납채례와 문명(問名)의식이 거행됐는데, 정사 조병호와 부사 김병익이 문서를 신부집에 전달하고, 이 사실을 대신이 황제에게 보고했다. 1월11일에는 종전에 없던 납길례가 거행됐고, 다음날 예물을 보내는 납징례, 1월23일에 고기례, 다음날인 1월24일 책비례가 중화전에서 거행됐는데 황태자가 이를 집행했다. 이날 황태자가 신부를 데리고 궁으로 돌아오는 봉영례(奉迎禮)가 거행됐고, 경운궁 함녕전에서 신랑과 신부가 음식을 나누는 동뢰연이 있었다. 그리고 이날 내전에 가서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는 조현례도 치러졌다. 이렇게 책비·봉영·동뢰연·조현례를 하루에 치른 적이 이전에는 없었다.

혼례식을 치른 직후 황태자비의 신분이 되면서 형식상의 위상은 컸지만, 순정황후가 왕실의 일원이 된 시기 조선은 일제의 침략에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계기로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했다. 1907년 7월19일 순종이 경운궁 돈덕전(惇德殿)에서 즉위식을 올리고 황제가 되자 그녀는 황후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3년 뒤인 1910년 8월29일 한일 강제병합이 이루어지면서 대한제국은 멸망했다. 이로써 순정황후는 조선왕조 최후의 왕비가 됐다. 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순정황후가 옥새를 치마에 감추었지만, 친일파 숙부 윤덕영이 그 옥새를 빼앗은 일화가 전해온다.

1910년 강제병합 후 순종의 지위가 이왕(李王)으로 격하되면서 순정황후도 이왕비(李王妃)가 됐다. 대한제국 멸망 후에 창덕궁 대조전에 주로 머물렀으며 1926년 4월, 순종이 승하하자 창덕궁 낙선재로 거처를 옮겨 말년을 보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궁궐을 떠났다가 휴전 협정 이후 환궁하려고 했으나, 조선왕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승만정부의 정책에 따라 정릉(貞陵) 수인제(修仁齊)로 거처를 옮겼다. 1959년에는 비구니로 불교에 귀의해 대지월(大地月)이라는 법명을 얻었고, 1960년 환궁한 후에는 주로 낙선재에 머물며 독서로 소일했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낙선재는 사랑채인 낙선재, 안채인 석복헌과 수강재 3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1960년대 이후 낙선재에는 영친왕과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석복헌에는 순정황후가, 수강재에는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거처했다. 세 여인은 서로 의지해가며 살았는데, 1966년 순정황후가 73세를 일기로 석복헌에서 먼저 승하했다. 승하 후 순정황후의 무덤은 이미 조성돼 있던 순종의 유릉(裕陵)에 합장됐다. 유릉에는 이미 순종과 순명왕후가 합장돼 있었는데, 순정황후가 이곳에 오면서 유릉은 조선왕릉 중 동봉삼실(同封三室)의 합장릉 형태를 한 유일한 무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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