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파 농구 천재’ 양동근, 17년 영광에 마침표

입력 : 2020-04-06 00:00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1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눈물을 흘리며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양동근이 2018~2019시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필름 왼쪽부터). 2004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됐던 양동근. 사진=연합뉴스

[스포츠마당] KBL의 전설 양동근, 전격 은퇴

“경쟁 어려울 것 같아 결정” 밝혀

노력과 성실함 무기로 정상 차지

수차례 MVP·우승반지 거머쥐어 “한국 프로농구 역대 최고” 평가도

지도자로 제2의 인생 펼칠 예정
 


말끔한 양복 차림의 양동근(39)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경기 후 항상 덤덤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모습과 달랐다. 농구 모범생답게 늘 교과서 같은 답변을 내놓았던 그였다. 한마디로 마이크 앞에 선 양동근은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은퇴식 자리의 양동근은 달랐다. 마지막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속내를 숨김없이 쏟아냈다.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승부욕으로 불타오르던 본래의 모습과 아쉬움의 눈물도 함께 보였다.

양동근은 1일 서울 강남에 있는 KBL 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나는 운이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선수들과 좋은 코치님들 밑에서 너무 행복하게 생활했다. 우승도 많이 했다. 너무나 감사드린다. 아주 꿀잠을 푹 자고 일어난 꿈같은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았다. 학원도 안 다니고. 그런데 농구를 시켜달라고 정말 졸랐다. 그래서 하게 됐는데 부모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거다. 아버지·어머니께 정말 사랑하고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무득점을 해도 내 아들은 잘했다고 박수를 쳐줬다. 그런 힘으로 마흔살까지 잘 버틴 것 같다. 아내와 아이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가족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양동근은 용산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를 나와 2004년 신인 전체 1순위로 전주 KCC 지명을 받았다. 곧바로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로 트레이드됐고 이후 KBL 최고의 가드로 자리매김했다. 양동근은 현대모비스에서만 14시즌을 뛴 프랜차이즈 스타지만 프로 데뷔 당시만 해도 그저 많은 유망주 중 한명이었다. 공수에서 수준 이상이었지만 확실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끈질긴 노력으로 리그 최정상에 오르며 노력파 선수의 상징이 됐다.

또한 손목 골절 부상을 당한 2016~2017시즌을 제외하면 매 시즌 40경기 이상 출전하며 꾸준함의 대명사도 됐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정규리그 MVP를 4회, 플레이오프 MVP를 3회 수상했다. 2006~2007시즌에는 KBL 역사상 처음으로 만장일치 플레이오프 MVP를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다. 우승반지도 많이 수집했다. 등번호 6번의 양동근은 현역 시절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우승반지(6개)를 손가락에 끼었다. 현대모비스 구단은 팀의 심장이었던 양동근을 기억하기 위해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양동근은 기자회견 중 KBL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대해 “최고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내가 최고라고 얘기한 적도 없다. 남들보다 열심히 한발 더 뛴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동료들에겐 ‘양동근과 함께 뛰었을 때가 좋았다’라는 생각을 줄 수 있다면 성공한 선수 인생이었다고 본다. 그 판단은 동료들의 몫”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내가 농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쏘리’하고 ‘땡큐’였던 거 같다. 외국인 선수들에겐 패스 못 줘서 쏘리했고 그 친구들이 패스 받아 넣어줘서 땡큐했다. 나는 패스를 잘하는 가드가 아니었다. 동료들이 나를 잘 믿어줘 고마웠다. 감히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많이 노력했지만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양동근은 KBL 통산 정규리그 665경기를 뛰며 평균 득점 11.8점에 2.9리바운드, 5어시스트, 1.5스틸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조기 종료된 2019~2020시즌에도 40경기에 출전해 평균 28분을 소화하며 10득점에 2.7리바운드, 4.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젊은 후배들 못지않은 기량을 여전히 과시한 것. 그럼에도 전격 은퇴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양동근은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은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다음 시즌에 할까? 내년에 계약 못하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을 하며 은퇴는 항상 준비했던 일이다. 가족도 놀라지 않았다. 매년 계약 때마다 은퇴를 생각했고, 지난 시즌 은퇴를 결정했어도 나쁜 결정은 아니었을 거다”라며 “지금까지 경쟁을 통해 포지션(선수 위치)을 차지했다. 나의 커리어로 포지션을 차지하진 않았다. 그런데 앞으론 경쟁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은퇴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코트를 쉴 새 없이 달렸던 양동근은 이제 지도자로 변신한다. 그는 “공부 많이 해서 코트로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을 찾은 평생의 은사인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 팀 동료 함지훈, 그리고 친한 후배 조성민(창원 LG)이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양동근에게 가장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배우근<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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