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시조 당선작] 일인 방송국-나동광

입력 : 2020-01-01 00:00 수정 : 2020-01-01 23:14

 

[당선 소감] “쓰고 지우는 이들과 기쁨 나누고파”

오지의 밤하늘, 장대비 소리 등 여행길 메모가 시심의 원동력
 

나동광씨



여행을 다니면서 수첩에 적기 시작한 깨알 같은 메모는 메마른 삶에서 시심을 일으키는 커다란 원동력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그런 모험에서 생긴 버릇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오지에서 장기간 체류하는 동안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온갖 시어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낮에 흘린 땀을 시냇가에 가서 씻어내고 장작불로 지은 밥을 먹는 정겨운 식탁과 뒷산에서 한짐 짊어지고 온 과일로 후식까지 얻어먹고 돌아오는 길, 촛불 들고 건너는 외나무다리, 밤마다 바나나로 엮은 지붕 위에 퍼붓는 장대비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잠을 자고 자명종 대신 새들이 깨우는 해맑은 아침을 맞이하는 나날들. 그 경험들은 저절로 눈앞에 그림처럼 펼칠 수 있는 시적 이미지 자원이다.

봄부터 뿌린 씨앗을 가을에 다 거두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낙엽만 쌓이는 겨울, 나무는 홀로서기를 가르치고 텅 빈 들판은 버리기를 권고한다. 그 뜻을 받아들여 또다시 시작하려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던 어느 날 까치가 날아왔다.

오늘도 한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쓰고 지우는 일을 거듭하는 문학 소년·소녀들은 물론 움츠린 어깨를 펴주고 힘을 실어준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나동광 ▲1957년 충남 서천 출생 ▲문학치유 상담전문가 ▲오지여행가

 


 

[심사평] 시절가조란 시조 고유 특성 부합…1인 미디어 시대 포착 참신

(왼쪽부터) 이정환 시조시인, 이달균 시조시인

 

신춘문예는 화려한 등용문이다. 특히 농민신문사 신춘문예는 역사와 전통이 남다르고, 그동안 시조부문을 통해 배출된 시인들의 활약상도 두드러진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양과 질 모두 풍성한 응모작들을 면밀히 살폈다. 엄정한 정형의 기율 안에서 얼마나 자신의 내면과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신인은 ‘새로운 목소리’를 들고 나와야 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

우리는 ‘일인 방송국’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함께 보내온 네편의 작품도 신뢰를 주었다. 오랜 적공의 힘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일인 방송국’은 시절가조라는 시조 고유의 특성에 잘 부합된다.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미디어 시대를 포착한 점이 참신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첨단문명을 소재로 했지만 ‘풀밭·씨앗·봄비’와 같은 시어를 통해 서정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좋았다. 화자는 미세먼지로 인해 가택 연금을 당하지만, 일인 방송의 메시지는 자유로운 씨앗처럼 날려 누군가에게는 꿈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자양분이 되어 새순을 틔울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즉 생물이 아닌 현대문명이지만 쌍방 소통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되는 정보화 시대의 특성을 시조에 잘 녹여낸 것이다.

최종에서 세사람이 남아 겨루었다. 먼저 ‘말 굽는 밤’ 외 네편을 응모한 이의 작품에 눈길이 갔는데, 나름대로 참신한 감각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꼬이고 꼬인 걸까’나 종장에서 ‘그렇게 그렇게 섞여’라고 마무리한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밀도 높은 완결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탁마한다면 한사람의 좋은 시조시인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로 ‘야생 사과’ 외 4편을 주목했다. 다섯편 모두 세련된 수사와 이채로운 이미지 구현 및 언어감각이 돋보였다. 그렇지만 작품마다 특이한 시어를 배치해서 시적 효과와는 별개로 돌출되는 점이 흠결이었고, 사유의 깊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울림이 미흡했다. 하지만 개성적인 작품을 쓸 수 있는 기량을 갖췄다고 보았다.

당선자는 당선의 영광에 값하는 가일층의 노력으로 시조문단을 융성케 하는 일에 일조하기를 바란다. 아깝게 골인 직전에서 못 미친 이들의 분발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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