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열전] 결혼이민여성 사랑방, 이곳은 은진미용실입니다

입력 : 2019-12-04 00:00 수정 : 2019-12-04 23:48
‘다문화 은진미용실’의 원장이자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여성인 박은진씨.

다문화 열전 (12)다문화 미용실 운영하는 박은진씨

12년 전 결혼하며 한국 온 뒤 베트남서 익힌 기술 활용하고

가정 경제에도 도움주기 위해 우여곡절 끝 미용사 도전 성공

여러나라 출신 결혼이민여성 편안한 소통으로 금세 단골돼

서로에 대한 공감대 쉽게 형성 미용과 함께 친분 나누며 화합
 


대전역을 등지고 큰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왼쪽으로 중앙시장을 만나게 된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장은 개설 100년이 지난 지금도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30년 이상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격인 가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조금은 낯선 보라색 간판이 서 있다.

“원래 근처 다른 곳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다가 중앙시장 쪽으로 가게를 옮긴 지는 2년 정도 됐어요. 처음에 미용실을 연 건 전북 군산에서였고요. 그것도 이제 8년 전 일이네요.”

이 간판이 눈에 띄는 이유는 하얀색의 커다란 글씨로 ‘다문화 은진미용실’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 원장인 박은진씨(40)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여성이다.

“12년 전 결혼을 하면서 한국으로 왔어요. 처음엔 한국어도 서툴고 적응하기 바빠 일할 생각을 못했었는데,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더라고요.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만 쓰는 게 좀 미안하기도 했고요. 일을 하고는 싶은데 베트남에서 익힌 기술이 있으니 미용사자격증을 따면 어떨까 생각했죠.”

은진씨의 자격증 도전과정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한국어로 출제되는 필기시험 탓이다. 말하는 것도 어려운데 한국어로 된 문제를 풀어야 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뜻도 모르는 단어를 계속 베껴 쓰기를 수백번. 2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시험을 어떻게 보느냐고 다들 말렸었어요. 그래도 그 덕에 이렇게 가게를 열어, 제 이름을 걸고 미용실을 하게 됐으니 도전은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죠.”

은진씨의 미용실엔 유난히 단골손님이 많단다. 한국인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결혼이민여성들이 더 편히 찾는다. 은진씨의 모국인 베트남에서 온 이들뿐 아니라 일본·몽골·우즈베키스탄·필리핀·캄보디아 등 국적도 다양하다.

“베트남에서 온 분들은 아무래도 한국인이 하는 미용실에 가는 것보다 소통이 편하니 좋아하죠. 또 머리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고향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가 되고 있고요. 그런데 베트남 손님들만은 아니지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결혼이민여성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공감하는 게 많아요. 저도 그렇고 손님들도 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진 못하니 오히려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죠.”

은진씨 말에 따르면 결혼이민여성은 외국인이라고 다르게 보는 시선 때문에,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용실에 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막상 미용실에 가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스타일을 설명하지 못해 속상해하며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란다.

“여기서는 다들 천천히 말해야 알아듣고, 쉽게 말해야 알아들으니 그냥 차근차근 설명하면 돼요. 예전에 가게가 있었던 군산이나 인근인 논산 등에서부터 손님이 오는 건 그런 것 때문인 듯해요. 손님들이 좋아하고 편해하는 것을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렇게 결혼이민여성들의 ‘사랑방’이 된 은진미용실. 오래된 단골손님들과 모임도 만들어 친구처럼 지낸다는 은진씨의 가게는 결혼이민여성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또 하나의 ‘집’이 돼 있었다.

대전=김다정 기자 kimd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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