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영농·생활수기 당선작] 제2의 고향에서 짓는 행복농사

입력 : 2019-08-15 00:00
이은정씨(왼쪽 세번째)가 남편 안상재씨(〃 두번째)와 시어머니(오른쪽 〃), 지인들과 함께 당선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제36회 영농·생활수기 당선작-다문화부문 이은정 (29·충남 태안군 이원면)

11년 전 베트남서 시집와 태안 정착 시어머니·남편·두자녀와 함께 살아

초기엔 날씨·문화·음식 적응 못해 한겨울 굴 까는 작업 고돼 울기도

특히 말이 통하지 않아 마음고생

우선 한국 말·글 익혀야겠다 생각 단어카드 만들어 하루치 목표 설정

반드시 암기…문장 쓰기도 반복

시집온 지 3년 만에 한국 국적 취득 운전면허증도 따서 트럭 몰고 다녀

다문화중점학교 재학 중인 아들·딸 이중언어 말하기대회서 수상

시어머니 자랑하는 모습 보면 뿌듯 열심히 돈 벌어 지난해 새집까지 지어

굴 까고 농사짓고 ‘알바’도 하며 ‘행복농사’ 짓는 지금이 무척 즐거워

가족은 물론 살고 있는 동네·지역 모든 게 소중…매 순간 최선 다짐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11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와 시어머님을 모시고 남편과 함께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1학년인 딸을 키우며 충남 태안반도 바닷가에서 살고 있는 이은정입니다. 추운 겨울, 꽃피는 봄, 사람들이 바닷가로 찾아오는 여름, 나뭇잎이 알록달록 단풍드는 가을, 한국의 사계절이 참 좋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우리 아이들이 좋고 제가 말하면 싱글벙글하며 받아주는 아이 아빠는 더 좋습니다. 아픈 몸으로 여전히 참견하고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도 이제는 무섭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엔 한국의 날씨와 문화, 음식에 적응이 안돼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한국에 온 첫해 추운 겨울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바다에서 굴 양식을 하며 굴 껍데기를 까는 작업을 했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바다에 나가 굴을 따오고 차디찬 비닐하우스에서 겨우내 일을 하면서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며 자주 눈물을 흘렸습니다. 손과 발은 항상 뻘겋게 얼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이나 시어머니는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아 야속했습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답답함과 베트남 말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두사람과 계속 한집에서 살아가려니 막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절감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왕고집 시어머니와의 갈등이었습니다. 제가 오해를 풀려고 말을 하면 오히려 말대꾸한다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때 남편이라도 제 편이 돼주거나 위로라도 해줬으면 좋았으련만,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술을 마시고 시어머니에게 대들어 결국은 큰 싸움만 일으켰습니다.

먼저 한국말과 글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우스에서 굴 까는 작업을 하면서도 한글 단어카드를 만들어 그것을 옆에 놓고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날그날 목표를 정해놓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암기했습니다. 그리고 두꺼운 스프링노트를 사서 단어와 문장을 쓰고 또 쓰면서 외웠습니다. 조금씩 한국말과 한글 실력이 늘게 됐습니다. 어느 날 여성이주민 농업인 교육에 참가하게 됐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한글 공부를 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한글 카드와 스프링노트를 보여드렸더니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저를 쳐다보시다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큰 아이가 태어난 기쁨도 잠시, 한국말을 잘 못하는 아이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습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기를 안고 베트남 말을 하면 시어머니는 “애를 베트남에 보낼 거냐?”며 핀잔을 하셨습니다. 무조건 한국말을 잘해서 우리 아이가 다문화가정의 아이라고 놀림 받고 무시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한 결과 시집온 지 3년 만인 2011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됐습니다. 2014년에는 자동차운전면허도 따서 이젠 트럭을 몰고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다문화중점학교이자 이중언어교육을 합니다. 저는 이 학교에서 마련한 다문화 학부모 한국어교실 수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학·과학·독서 등 아이들의 학습과 학교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업에도 나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어교실만큼은 아무리 바빠도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굴 택배주문이 들어와도 절대 결석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행복한 미래를 위해선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시집온 저보다 나이가 어린 결혼이민여성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한국어수업과 학교의 행사가 있는 날엔 일일이 전화해서 함께 참여하자고 합니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다문화 엄마들은 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들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합니다.

학교 도서관에는 좋은 그림책과 다문화가정용 전래동화책이 많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그림책을 읽은 다문화 엄마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책 읽어주는 엄마선생님’이라고도 부릅니다. 제가 학교에 가면 아들은 쑥스러워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딸은 한국어교육이 있는 날엔 엄마가 학교에 오는지 몇번이고 확인하면서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합니다. 선생님은 이중언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기보다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생활 속에서 쉬운 것부터 조금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2018년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내 이중언어 말하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서 우리 아들이 상을 받았고 이중언어 말하기대회 충남도 본선에도 나갔습니다. 큰 무대에 서본 경험이 없는 아이가 너무나 긴장을 해서 실수를 했지만 입상을 했습니다.

올해에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아이가 교내 이중언어 말하기대회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작은 아이는 오빠보다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익혀가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는 오빠처럼 큰 대회에 나가고 싶다면서 베트남어 공부에 관심을 보입니다. 딸아이가 춤을 추면서 큰 소리로 베트남 노래를 부를 땐 할머니도 박수를 쳐주십니다. 시끄럽다고 핀잔하던 남편도 싱글벙글하며 잘한다고 칭찬합니다. 물론 남편과 시어머니는 베트남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할 생각도 없는 것은 여전하지만 베트남어를 잘해서 상을 받아온 아이들을 동네분들에게 자랑도 하는 것을 보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은 한국의 추운 겨울이 좋습니다. 겨울이 되면 굴을 사고 싶다는 주문전화가 계속 걸려옵니다. 저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열심히 굴을 까서 택배를 보내는 일을 합니다. 작년에는 낡고 비좁은 집을 헐고 번듯하게 새집을 지었습니다. 돈도 부족한데 무슨 새집이냐고 야단치시는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인건비와 자재값이 해마다 오르는데 몇년 더 모은다고 지을 수 있겠어요? 어머니도 자꾸 나이를 먹는데 하루라도 편한 집에서 사는 게 좋은 거예요”라고 말했더니 “지금은 네 말을 듣길 잘했다”며 자랑스러워합니다.

저는 모든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국에서 자신감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에는 농협에서 추진하는 결혼이민여성 맞춤형 교육에 지인과 참여해 열심히 배우고 그 사례를 제출해 상도 받았습니다. 올해에도 친한 결혼이민여성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사가 공부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살리는 퇴비 만들기, 익충과 해충, 생태정원과 텃밭 가꾸기, 농사 속담과 격언 등 여러가지를 배우면서 농사를 새롭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베트남처럼 따뜻한 나라에서 시집온 결혼이민여성들은 한국의 추운 겨울을 힘들어합니다. 게다가 문화가 다르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가족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특히 동네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바라보며 무시하는 것 같다며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혼이민여성만 겪는 어려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가정이든 가족간 갈등이 있고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가지 해결할 일이 있을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다문화가정은 대체로 무난한 편인 것 같아 다행입니다. 어떤 길이든 혼자서 가려면 외롭고 힘들어 포기할 수도 있지만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면서 간다면 어두운 밤길도 힘들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겨울에는 굴을 까고, 벼·마늘·고추·콩·깨 농사를 지으면서 시간이 허락하면 식당에서 ‘알바(아르바이트)’도 합니다.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행복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외진 시골 바닷가 마을에 살지만 지구촌 시대에 어디에 살든 무슨 상관인가 생각합니다.

오늘 이 순간 나와 함께하는 가족과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지역과 나라 모든 게 소중하기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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