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고투 끝 이뤄낸 ‘존엄’의 회복…눈 감은 뒤에야 주어지다니

입력 : 2019-08-12 00:00

손해배상소송 승소까지의 과정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일제 강제동원의 피해자들은 홀로 아픔을 삭이며 살았다.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배상을 받기는커녕 떼인 임금을 되돌려 받겠다는 상상마저도 못한 세월이었다. 긴 침묵을 뚫고 이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 1997년. 강제동원 피해자 여운택·신천수 할아버지가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광복이 되고도 반세기가 더 지난 뒤였다. 그리고 ‘승소’라는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기까지 20여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이 긴 세월 동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견뎌내야만 했던, 칠흑같이 어두웠을 ‘소송의 터널’을 시간 순서대로 되짚어본다.




1997년 12월24일

강제동원 피해자 여운택·신천수 할아버지,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제기. 이들은 1941~1943년 강제동원돼 노역을 했지만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2001년 3월27일

원고 청구 기각 판결. 일본 재판소는 신일본제철이 별도의 회사여서 구 일본제철의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등으로 채무가 소멸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2002년 11월19일

여운택·신천수 할아버지, 오사카 고등재판소에 항소했으나 기각됨.

 

2005년 2월28일

여운택·신천수·이춘식·김규식 할아버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제기. 2008년 원고 패소 판결.



2009년 7월16일

여운택 할아버지 등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한 항소에서 기각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의 시효가 소멸됐다는 점 등 2008년 패소한 원심과 동일.



2012년 5월24일

4명의 강제동원 피해자, 대법원 상고에서 승소·파기환송 판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이유로 원고 승소 판결함.

 

2013년 7월10일

서울고법,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 2012년 10월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 금속공업이 합병해 신일철주금이 됨)에 원고 1명당 1억원씩 손해배상하라고 판결.



2018년 10월30일

원고 여운택 할아버지 사망. 원고 신천수 할아버지 사망. 원고 김규식 할아버지 사망.

 

2013년 12월~2018년 6월

대법원, 신일철주금에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 4명에게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

 

2018년 11월29일

대법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자 박창환·이근목·이병목·정창희·정상화 할아버지가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 원고 1인당 1억~1억5000만원 배상 선고. 판결 당시 피해자 5명은 모두 사망.

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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