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살아오고 살아갈 이야기 담겨 …집짓기는 삶의 답 구하는 과정

입력 : 2019-03-15 00:00 수정 : 2019-03-17 00:10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 (1)집은 할머니의 다락이다

집짓기는 제2의 인생 시작이며 남은 생애를 거는 일대의 도박

집에 쓰일 자재나 층수 고민보다 어떻게 살아갈지 자문자답해야


여전히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지만 아파트를 탈출하는, 탈출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집을 얻고 싶어서다. 나만의 집은 어떤 집인지, 어떻게 지어야 할지 전문가를 통해 궁금증을 풀어보자.



어릴 적 살던 시골집 할머니방의 다락은 보물창고였다. 거기엔 꿀도 있고 과자도 있고 눈깔사탕도 있었다. 말썽을 피울 때마다 회초리를 드는 어머니를 피해 달아난 할머니의 치맛자락은 피난처였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듣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꿈의 날개였다.

집은 누군가가 살아온, 살아갈 이야기가 있는 할머니의 다락 같은 곳이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집에 살았다. 그랬던 그 집이 산업화를 거치면서 아파트로 변했다.이 아파트에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이 살고 있다. 벽안(碧眼)의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이를 빗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내기까지 했다. 외국인의 눈에도 대한민국 아파트 광풍이 참 이상해 보였나보다.

끝나지 않는 오르막도, 그치지 않는 비도 없다. 성서에 나오는 ‘출(出)애굽’이 아니라 ‘출(出)아파트’가 시작된 것이다. 마침 도시를 떠나는 사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시를 떠나 귀농·귀촌할 때 가장 먼저 집짓기(住)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골에서 생활이 정착될 때까지 집 짓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미뤄두는 것이 좋다. 지금 시골엔 빈집이 차고 넘친다. 일단 빈집을 얻어 살면서 자리가 잡히고 난 다음 주변에 집 짓고 사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어도 늦지 않다.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으면 집 지어줄 사람은 줄을 서 있다. 집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집에 대해 벼락치기로 공부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실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자신감으로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고 상대해야 할 상대(시공업체)는 ‘전교 1등’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경험으로 쉽게 ‘집이 뭐 별거냐’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다들 집 짓다가 10년 늙는다. 집, 별것 있다.

집은 인문학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집이 나에게 무엇이고,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죽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귀농이나 귀촌해서 집 짓고 사는 것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더 먼 곳까지 바라봐야 한다.

이 칼럼의 제목이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이야기가 있는 집을 지어 사시겠습니까?’다. 짓는 집의 평수가 몇평이면 좋을지, 2층으로 지을지 단층으로 지을지, 목조주택으로 할지 스틸하우스로 할지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집을 지을 땐 이런 문제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더 근원적인 문제, 즉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질문해야 한다.

집짓기는 내 남은 인생을 거는 일대 도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건축주는 집짓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온전히 자기 책임하에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어릴 적 할머니랑 살았던 이야기가 있는 그런 집에서 살게 되는데 조금 더 못 기다릴 이유가 없다. 집은 기다림이다.

김집<건축가·‘내집 100배 잘 짓는 법’ 저자>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