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역사 최전선에 우리도 있었다

입력 : 2019-02-25 00:00 수정 : 2019-02-26 17:27

여성독립운동가 달력 속 12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망각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은 무지나 외면이 아닐까. 특히 우리의 역사 속엔 아직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도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인식은 더욱 빈약하다. 이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가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달력을 제작했다. 어머니·아내·딸이기 전에 용맹한 독립운동가였던 12인의 이야기가 그 속에 담겨 있다.

 


◆1월=남자현(1872~193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년)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서로군정서에서 의혈활동과 여성계몽운동을 했다.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 암살을 계획했으며,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란 혈서로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다. 1933년 주만주 일본대사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혹형을 받고, 단식으로 항거하던 중 순국했다.

 

◆2월=김마리아(1892~1944년),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

일본 유학 중 1919년 2·8독립선언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독립선언서를 들고 밀입국해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심한 옥고를 치렀다. 병보석으로 석방된 뒤에도 중국 상하이와 미국 등 각지를 돌며 교육자·독립운동가로 일생을 바쳤다.

 

◆3월=유관순(1902~1920년),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

이화학당 학생으로 1919년 서울 3·1만세운동에 나섰다. 고향인 충남 천안에 내려가 아우내장터만세운동을 이끌다 주동자로 체포됐으며, 이때 일본 헌병의 총탄에 부모를 잃었다. 서대문형무소 복역 중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 만세운동을 주동, 이후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19세 나이로 순국했다.

 

◆4월=박차정(1910~1944년), 건국훈장 독립장(1995년)

15세 때부터 조선청년동맹·근우회·신간회 등 항일단체회원으로 활약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적인 반일학생운동으로 확대되는 데 이바지했다. 중국 만주로 망명해 항일 무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서 활동했으며, 남경조선부인회를 조직해 부녀자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5월=정정화(1900~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90년)

3·1운동 직후 제2의 독립운동을 위해 시아버지·남편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수차례 국내로 잠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밀사 역할을 했다.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맡으며 김구·이동녕 등 요원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해방 후 귀국, 독립운동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장강일기>를 남겼다.

 

◆6월=오광심(1910~1976년), 건국훈장 독립장(1977년)

조선혁명군으로 활동한 남편 김학규와 함께 만주를 누비며 항일무장독립운동을 펼쳤다. 교사로 일하며 민족정신 교육을 하다 1930년 조선혁명당에 가입해 항일전에 참여했다. 1940년에는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초모·선전·파괴 등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애국부인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7월=조마리아(1862~1927년), 건국훈장 애족장(2008년)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1909년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격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효도”라 격려한 바 있다. 안 의사가 순국한 후에도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생활을 뒷바라지했으며, 1926년 임시정부 경제후원회의 정위원으로도 활동했다.

 

◆8월=안경신(1888년~?),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

평양에서 전개된 3·1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며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전달하는 등 항일운동에 나섰다.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으로 경찰 한명을 죽이고 평남도청과 평남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이 때문에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9월=김순애(1889~1976년), 건국훈장 독립장(1977년)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교사였던 그는 1919년 김규식과 결혼 후 상하이 신한청년당에 함께 입당해 3·1운동 발발에 기여했다. 상하이에서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했다. 독립운동단체인 의용단 창립에 관여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광복하는 날까지 독립운동에 열을 쏟았다.

 

◆10월=윤희순(1860~1935년), 건국훈장 애족장(1990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지도자다. 1985년 을미의병부터 1907년 정미의병 때까지 의병들을 위해 음식과 옷, 군자금·무기 등을 조달하는 데 앞장섰다. 국권이 상실되자 중국으로 망명, 남만주지역 여성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하는 한편 청년들의 독립정신 교육과 항일선전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11월=이신애(1891~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1963년)

서울지역 3·1운동에 가담한 뒤 혈성부인회 간부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에 주력했다. 대동단에 입단해 의친왕의 상하이 망명을 주선했다. 1919년 11월 만세시위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유관순과 함께 옥중 만세운동을 일으킨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12월=조신성(1873~1953년), 건국훈장 애국장(1991년)

평양 진명여학교 교장직을 맡다 3·1운동 이후 대한독립청년단을 결성했다. 이어 독립사상 고취, 군자금 모금, 부일분자 응징, 관공서 파괴 등 무장의혈투쟁을 펼쳤다. 또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의 평양지회를 만드는가 하면 무산아동을 위한 교육원을 설립하는 등 교육활동에도 힘썼다.

하지혜 기자, 사진제공=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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