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이솝우화] 콩 심은 데 콩 난다

입력 : 2018-11-07 00:00 수정 : 2018-11-07 10:40
일러스트=이철원

21세기 이솝우화 (17)나는 ‘퉁덩 퉁’ 하더라도 너는 ‘충성 충’ 해라

매사 부모를 따라하는 아이들 자식 교육 위해 솔선수범해야

 

엄마 게와 새끼 게가 바닷속에서 모처럼 바다 바깥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함께 해변을 걷는데 엄마 게가 보니 새끼 게가 바로 걷지 못하고 자꾸 옆으로 걷는다. 바닷속에서는 파도 때문에 똑바로 못 걷는 줄 알았는데 밖에 나와서도 옆으로 걷는다.

“얘야, 네 걸음이 이상하구나. 옆으로 걷지 말고 똑바로 걸어라.” 엄마 게가 점잖게 새끼 게를 타일렀다. “제 걸음이 왜요?” 새끼 게가 묻자 엄마 게가 대답했다. “엄마가 보니 똑바로 걷지 못하고 자꾸 옆으로 걷는구나.”

새끼 게가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엄마 게 역시 옆으로 걷는다. 그런데도 자꾸 자신만 똑바로 걸으라고 나무란다. 몇번 더 그렇게 나무라자 새끼 게가 짜증을 부리듯 말했다. “그래요, 엄마. 저한테만 뭐라 하지 말고 엄마부터 좀 똑바로 걸어보세요. 저는 지금 엄마가 걷는 그대로 따라 걷고 있으니까요.”

이솝우화와 비슷한 우스갯소리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혀가 짧은 아버지가 아들을 앉혀놓고 <천자문>을 가르쳤다. 아버지가 바람 풍(風)자를 ‘바담 풍’이라고 읽으니 아들도 그대로 ‘바담 풍’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우스갯소리는 <천자문>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지어냈다. 왜냐하면 <천자문>에는 바람 풍(風)자가 없어서다. <천자문>에서 바람이란 뜻을 가진 말은 ‘묵은 뿌리는 말라 시들고, 낙엽은 회오리바람에 흩날린다’는 구절에 나오는 ‘표요(飄颻)’라는 좀 어려운 한자다.

필자가 그걸 아는 까닭은 430년 넘게 조선시대 향약을 이어오고, 지금도 촌장님을 모시고 사는 강릉의 유교 전통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학(家學)으로 <천자문>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필자가 들은 것은 바람 풍이 아니라 충성 충(忠)자를 ‘퉁덩 퉁’으로 읽는 아버지 얘기였다. 아버지가 ‘퉁덩 퉁’ 하니 아이도 ‘퉁덩 퉁’ 했다. 몇번을 해도 그대로 따라하니 아버지가 “이놈아, 나는 ‘퉁덩 퉁’ 해도 너는 ‘퉁덩 퉁’ 하지 말고 ‘퉁덩 퉁!’ 해야지.” 그러자 아이가 잘 따라 하는데 왜 그러냐는 식으로 “저도 그냥 ‘퉁덩 퉁’ 하지 않고 아버지처럼 목소리를 세게 ‘퉁덩 퉁!’ 하잖아요” 했더란다.

여덟자로 된 시와도 같은 <천자문>을 한줄 한줄 배우다가 ‘효당갈력 충즉진명(孝當竭力 忠則盡命·효도는 마땅히 그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을 다해야 한다)’ 대목에 이르면 혀가 짧지 않은 아버지도 자식에게 우스갯소리로 그 얘기 한마디를 꼭 들려준다.

옆으로 걷는 엄마 게나 혀 짧은 아버지 얘기는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하니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도 매사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살다보면 아이들에게 하는 말 따로, 보여주는 행동 따로일 때가 많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김정미씨는 최근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아이와 함께 외출을 했다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건널목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너려 했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저한테 학교갈 때 건널목으로 건너라고 하고는 엄마는 왜 이렇게 막 건너요?” 할 말이 없어진 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어른이라 양쪽으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잘 살피고 건널 수 있어서 괜찮지만 너는 아직 어리니 그러지 말라는 거지.” 그러나 대답하고 나서도 군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예고편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 시골에서 시어머니가 왔다. 지난여름부터 시어머니는 무얼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늘 더부룩하다고 했다. 시골 병원보다 큰 병원에 가서 종합검사를 한번 해보자며 부근에 사는 남편의 누나가 어머니를 김씨 집으로 모시고 왔다.

예약하고 기다리다가 병원에 가서 진찰·검사를 하고, 다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주일이 더 걸렸다. 회사 다니는 남편 대신 병원에 모셔가는 일은 김씨가 맡아서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큰 병은 없었지만 시어머니가 와 있는 열흘 동안 김씨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내색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했다. 그랬더니 그걸 본 아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제가 이 다음에 엄마에게 지금 엄마가 할머니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좋아요?” 그 말에 김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끼 게만 엄마 게가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이순원<소설가>

 


 

이순원 소설가는 …

1957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와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동인문학상·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그 여름의 꽃게> <얼굴> <은비령>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첫사랑> <순수> <삿포로의 여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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