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돋보기] 예능에 스며든 ‘워라밸’

입력 : 2018-10-10 00:00
워라밸을 소재로 한 sky Drama, 채널A ‘7시엔 홈밥 식구일지’ 포스터.

가족과 저녁밥 먹고 주말엔 여행 가고…개인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녹여내다

‘회사 가기 싫어’ ‘7시엔 홈밥…’ 등 삶의 균형 중시하는 트렌드 반영 연예인 일상 엿보는 형식은 삼가야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은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리는 신조어다. 크게 보면 이 단어는 최근 회자했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번뿐이다)나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의 트렌드와 일맥상통한다. 성공보다 행복을, 미래보다 현재를, 일보다는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위와 같은 트렌드에 모두 스며 있기 때문이다.

요즘 방송가에도 워라밸 바람이 불고 있다. 워라밸과 관련한 예능프로그램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것. 그중 하나가 KBS <회사 가기 싫어>라는 모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모큐멘터리는 허구의 상황을 실제처럼 보이도록 만든 다큐멘터리 형식의 장르다. <회사 가기 싫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공감하는 회사의 풍경들을 담았다. 이 방송은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가 일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걸 첫회부터 보여줬다.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상사가 대부분이고, 말로는 수평적으로 일하자며 이름 뒤에 직책 대신 ‘님’자를 붙여보지만 수직적이고 고압적인 체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회사 가기 싫어>는 우리의 일터가 가진 문제들을 짚어내고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새삼 들여다보게 한다.

sky Drama, 채널A <7시엔 홈밥 식구일지> 또한 워라밸에 관한 예능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은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저녁 한끼 함께하기 힘든 바쁜 도시인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일종의 임무를 부여하고 그 변화를 관찰한다. 저녁 7시 식구들이 밥상에 모여 “잘 먹겠습니다”를 외쳐야 임무 성공. 비록 강제적인 가족식사가 힘에 부치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한번 모여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방송은 그렇게 일만큼 중요한 가족과의 일상을 재조명한다.

그런가 하면 tvN <주말사용설명서>나 SBS플러스 <야간개장>은 일중독 사회에서 자신만의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끄집어낸다. 이 프로그램들은 주말여행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발견하거나 야간시간을 활용해 저마다 취미생활을 즐기는 내용을 다루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소개한다.

워라밸이란 트렌드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개발시대부터 압축성장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던 우리에게 제동이 걸린 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다. 그때부터 성장과 성공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희망은 꺾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었던 ‘성장의 사다리’가 사라지자 대중이 할 수 있는 건 개인의 행복 추구였다. 물론 그것 또한 사회의 수직적 시스템 안에서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들은 저마다 소소해도 이룰 수 있는 행복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 흐름이 오늘날 워라밸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방송에도 녹아들었다.

워라밸 예능프로그램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소재로 한 만큼 아직 서툰 점이 많다. <야간개장>의 경우 워라밸이라기보다는 연예인의 일상을 엿보는 관찰카메라에 더 집중하고 있고, <주말사용설명서>는 여성 출연진의 집단 버라이어티쇼 느낌이 강하다. 이런 부분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기가 어렵다. 방송 내용이 시청자의 삶에 반영할 수 있는 워라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시청자에게 ‘행복’은 작더라도 추구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 본질에 어긋나지 않도록 프로그램들이 진정성 있게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것만이 시청자도 프로그램도 행복과 의미를 찾는 길일 테니 말이다.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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