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이솝우화] 미운 데 이유가 있으랴

입력 : 2018-10-10 00:00 수정 : 2018-10-11 00:07
일러스트=이철원

21세기 이솝우화 ⒂무얼 해도 미운 며느리를 어찌할꼬?

상대방이 미운 이유, 그에게 찾기보단 내 마음속 먼저 돌아보면 찾을 수 있어

 

늑대가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어린 양을 봤다. ‘옳지, 내가 오늘은 저걸 잡아먹고야 말리라.’ 생각은 그랬지만, 그렇다고 아무 구실도 없이 양을 덥석 물어 죽일 수는 없었다. 늑대는 어린 양을 잡아먹을 적당한 구실을 머릿속으로 찾았다.

“야, 이 녀석아. 어른이 물을 마시는데 네가 마시면서 물을 진흙탕으로 만들어놔서 내가 마실 수 없게 됐잖아.” 이렇게 나무라자 어린 양은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냇물에 혀끝만 살짝 대고 마셨어요. 게다가 어르신은 저보다 위쪽에 계시고 저는 아래쪽에 있으니 어르신께서 마시는 물이 더러워질 리가 없잖아요.”

늑대는 자기 꾀가 실패로 돌아가자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난해에 우리 아버지를 모욕했던 놈이 바로 너지?” 그건 어린 양에게 시냇물을 더럽혔다는 말보다 더 억울한 소리였다. “아저씨, 저는 지난해에 태어나지도 않았는 걸요.”

그러자 늑대는 더욱 화가 치밀어 본심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이 녀석이 어른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네.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오늘 너를 잡아먹고야 말 테다.”

이솝우화의 늑대와 양 사이에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거기에는 먹이사슬이 작용해 그럴 수 있다 쳐도, 문제는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일 때다.

박옥희씨는 요즘 며느리의 행동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해 아들이 결혼할 때부터였는지, 아니면 최근 들어 그런 것인지 이렇다 할 기점도 없이 며느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언제 미운털이 박혔는지 이제는 마음속으로 얼굴을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지난 추석 때만 해도 그랬다. 박씨도 한 집안의 작은며느리라 명절을 맞아 남편과 아들 내외와 함께 시골 큰댁으로 추석을 쇠러 내려갔다. 추석 전날 저녁상을 물린 다음 며느리가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온 케이크를 꺼내 할머니 앞에 놓고 양촛불을 밝혔다. ‘나 모르게 저건 또 언제 준비했대?’ 박씨는 며느리가 하는 일은 뭐든 마음에 들지 않아 기어이 한마디 했다. “얘, 너는 할머니 생신도 아닌데 무슨 케이크를 준비했니? 그리고 지금 부엌에서 송편을 찌고 있는데 그걸 맛봐야지 케이크를 내놓으면 어떡하니?” 그러나 어른들 모두 새 며느리의 케이크를 반기고 칭찬했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낸 다음 성묘를 갔을 때도 그랬다. 선대 산소가 모두 뒷동산에 있어서 온 가족이 소풍을 가듯 나들이를 해 성묘를 마친 다음 그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음복했다.

제주로 쓴 술을 큰댁 아주버니서부터 둘째·셋째·넷째 형제들과 큰조카·작은조카들까지 차례로 돌아가며 음복잔을 받았다. 그렇게 한차례 술잔이 돌고 난 다음 둘째집인 박씨의 새 며느리가 큰아주버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 집 대장님이신 제일 큰아버님, 저도 한잔 주세요.”

그러자 큰아버지가 잔을 채워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너도 성묘하느라 애썼는데 한잔해라.” 며느리가 그 잔을 받아들고, 아직 자기 잔을 들고 있는 셋째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셋째아버님, 우리 ‘짠’ 해요.” 그리고 건배하듯 놋쇠 술잔을 셋째아버지 잔과 부딪쳤다.

새 며느리의 붙임성에 다들 귀엽고 예쁘다고 웃었지만 시어머니인 박씨만은 웃지 않았다. 며느리가 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싫어서 다시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니, 너는 그게 무슨 버릇이니? 여기 누워 계시는 할머니 가운데 어느 분이 그러셨겠니?” 그러자 막내 시동생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여기 할머니 시대에는 할머니 시대의 법도가 있었고, 우리 시대엔 또 우리 시대대로 상하 친근함이 있는 거죠. 아마 여기 누워 계시는 할머니 가운데도 그 시대대로 어른들께 유쾌한 사랑을 받으신 분이 계실 거예요.”

추석 명절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박씨는 아들이 운전하는 자동차의 뒷자리에 남편과 함께 나란히 앉아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며느리의 뒷모습을 보는 게 천불 나는 듯했다. 그 눈치를 챘는지 옆자리 남편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좀 이해해요. 당신 마음속의 뭔가가 며느리를 자꾸 밉게 보도록 만드는 게 아닌지 돌아보면서 말이에요.”

이순원<소설가>

 



이순원 소설가는?

1957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와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동인문학상·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그 여름의 꽃게> <얼굴> <은비령>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첫사랑> <순수> <삿포로의 여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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