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이솝우화] 더불어 잘사는 지혜

입력 : 2018-03-14 00:00 수정 : 2018-03-14 14:39
일러스트=이철원

21세기 이솝우화 (3)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가게들

손님 끄려고 가격경쟁하면 먼저 망하는 곳과 나중에 망하는 곳만 있을 뿐

무한경쟁 나서기보단 상생하는 법 생각해봐야
 


들판에서 사자와 곰이 만났다. 둘 다 배가 고파 먹잇감을 찾으러 나왔다. 마침 거기에 발을 다쳐서 걸음을 제대로 떼지 못하는 양이 있었다. 옳거니!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도 없었다. 사자와 곰은 동시에 먹잇감에게로 다가갔다. 혼자라면 방해받지 않고 전부를 차지할 수 있는데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사자와 곰의 마음속에 이미 혼자 차지하겠다는 욕심이 들어간 다음이라 절반씩 나눠 갖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먹잇감을 가운데 놓고 싸울 수밖에 없다. 누가 먼저 봤느냐, 이 구역이 누구 땅이냐 하는 걸 따질 상황도 아니었다. 오직 힘 대 힘이었다. 싸워서 이기면 양 한마리를 전부 차지하고, 지면 뿔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

경쟁심까지 합쳐져 사자와 곰은 죽기 살기로 싸웠다. 너무도 격렬하게 싸워 나중에는 눈앞의 먹이조차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둘 다 심한 부상을 입게 됐다.

그때 저쪽 언덕 너머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여우가 나타나 힘들이지 않고 재빨리 먹잇감을 채서 달아났다. 그제서야 사자와 곰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생각해봐도 참 어리석구나. 이렇게 죽도록 싸워서 얻은 것 하나 없고, 결국 여우 좋은 일만 시켰으니.”

이솝우화 속의 사자와 곰 얘기만이 아니다. 어느 거리에 장사가 제법 되는 국숫집이 있었다. 멸치국물에 내는 잔치국수를 기본으로 하고 여름에는 열무김치, 겨울엔 배추김치와 함께 비벼내는 비빔국수를 팔았다. 맛도 있고 양도 적지 않은 데다가 가격도 적당해 그 거리뿐 아니라 인근 동네에까지 제법 소문이 났다. 메뉴도 까다롭지 않고 단출해 40대 부부가 설거지를 돕는 50대 아주머니 한사람을 두고 일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골목 입구에 새로 국숫집이 들어섰다. 간판도 크게 만들어 달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세명이나 일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반겼던 것은 새로 연 국숫집 가격이었다. 4500~5000원짜리부터 더 비싸게는 6000원 하는 국수도 있었지만 가장 기본을 이루는 잔치국수가 2900원이었다. 손님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국수가 별로 당기지 않은 사람들도 싼값을 보고 점심때마다 그 가게를 찾았다. 저녁에도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골목 안에서 먼저 장사하던 국숫집으로서는 갑자기 강력한 경쟁자를 만난 셈이었다. 주종목이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뿐인데 골목 입구에 새로 문을 연 가게가 저렇게 나오니 우선 잔치국수 값만이라도 거기에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가격으로 내려도 사람들은 그동안 마치 속은 값에 국수를 먹었다는 듯 골목 입구 가게로만 몰려들었다. 가게 평판도 금세 나빠졌다. 이제까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장사를 해온 악덕상인이 되고 만 꼴이었다.

새로 문을 연 가게는 입구에 ‘착한 가격 2900원’이라고 써놓았다. 드나드는 사람들도 ‘착한 가격 2900원’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다들 ‘이 가격으로 원가나 제대로 건질 수 있을까’ 의아해했다. 그걸 설명해준 사람은 동네 부동산 중개소 주인이었다.

“사실 저건 착한 가격이 아니라 남도 죽이고 나도 죽는 살인 가격이지요. 국수 2900원에 얼마나 남겠어요. 원가 빼고 한그릇당 500원씩 남는다고 쳐요. 종업원이 세명인데 한달 600만원 이상 인건비가 나갈 겁니다. 거기에 주인 몫을 빼고도 가겟세·전기세·가스비에다 그밖의 비용을 맞추자면 매일 1000그릇을 팔아야 하는데, 저 규모에서는 불가능하지요.”

그런데도 무한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일단 경쟁 가게부터 죽이기 위해서다. 동네 여러 업종의 사정을 잘 아는 부동산 주인은 지금으로서는 ‘먼저 망하는 집과 나중에 망하는 집’이 있을 뿐이지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한다고 했다. 한가게가 사라지면 다시 비슷한 유형의 경쟁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걸로 덕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한동안 싼 가격에 국수 먹는 사람들뿐인데 그런다고 그 돈이 살림살이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장사를 하다보면, 또 경쟁을 하다보면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사자와 곰이 된다. 대학가에서 한시간에 1000원 하던 게임방 가격이 경쟁 가게가 생기면 곧바로 두시간에 1000원으로 떨어진다. 마주 보고 문을 연 노래방들도 마찬가지다.

음식점이든 게임방이든 동네마다 흔하게 써 붙인 상식 이하의 착한 가격이 정말 착한 기능을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순원<소설가>
 


 


이순원 소설가는…

1957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와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동인문학상·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그 여름의 꽃게> <얼굴> <은비령>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첫사랑> <순수> <삿포로의 여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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